만약 고등학생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무조건 법학을 전공해 법조계로 뛰어들었을 것이다. 물론 회계사도 상법을 다루기 때문에 전혀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으니, 경영학을 전공한 나로서는 당시에 어쩌면 본능적인 선택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런 내 취향이 반영됐는지 영화나 드라마를 고를 때면 변호사와 검사가 등장하는 법정물을 굉장히 선호하는 편이다.
4회까지 시청한 드라마 '왜 오수재인가'는 논리전개가 살짝 빈약하긴 하지만, 이모저모 재밌게 감상할만한 포인트들이 많다. 특히 주인공 캐릭터의 성격을 선인지 악인지 모호하게 만든 점은 비슷한 법정물인 넷플릭스 '하이에나'와 유사해 흥미롭다. 물론 '하이에나'는 그 와중에 코미디적인 요소가 훨씬 부각된 반면, '왜 오수재인가'는 로맨스에 훨씬 많은 비중을 실었기에 분위기는 상당히 다른 편이다.
드라마 '왜 오수재인가'는 SBS 금토 드라마이며, 저녁 10시부터 방송된다. 참고로 이 시간대는 트렌디한 정극을 많이 방영하는 동시에 평균 이상의 퀄리티를 갖춘 드라마들이 주로 편성되는 편이다. 총 16부작으로 제작됐으며, 웨이브에서도 시청이 가능하다. 현재까지의 반응은 상당히 좋은 편이며, 시청률도 마의 10%를 넘겼다. 이로서 스토리가 웬만큼 산으로 가지 않는 이상 흥행은 거의 확실해졌다고 보면 된다. 실제로 스토리가 전혀 늘어지지 않고, 촘촘하게 연출되어 있어, 아마 나도 끝까지 시청하지 않을까 싶다.
드라마 왜 오수재인가 등장인물
① 냉혹한 오수재 대표 변호사, 로스쿨 교수
사실 나는 서현진 배우를 잘 모른다. 아마도 그녀의 대표작인 드라마 '또 오해영'을 아직 못 본 탓이 크지 않을까 싶다. 그냥 아이돌 출신의 연기 잘하는 배우 정도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이번 드라마 '왜 오수재인가'에서는 그 존재감과 몰입감이 상상 이상이었다. 서현진의 진정성 있는 연기가 스토리 전반을 장악하면서, 완급조절을 확실히 하고 있다. 가장 놀라웠던 점은 놀랄 만큼 좋은 그녀의 딕션(diction)이었다.
법조인이라는 설정이라 명확하게 대사를 전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워낙 딕션이 좋아서 그런지 귀에 대사를 딱딱 때려 박는 듯한 느낌이었다. '목숨 걸고 정의를 외치는 인간의 약점이 뭔지 아세요? 정의롭지 않은 속내를 들키는 거죠.'라는 촌철살인(寸鐵殺人) 같은 대사를 들을 때는 깊이 공감됐고, '그렇게 모든 게 딸리는 제가 여기까지 올라왔을 땐, 목숨 걸고 올라온 거고! 그런 저를 건드리시면, 다치세요. 아시겠어요?'라고 위협했을 때는 내 간담이 서늘해졌다. 최근에 내가 생각했던 딕션이 제일 좋았던 배우는 신혜선 배우였는데, 그 이상이 아니었나 싶다.
서현진이 주로 드라마에 출연하다 보니, 짧은 시간 안에 감정을 폭발해야 되는 영화에 잘 어울릴까 싶었은데, 최근에 개봉한 영화 '카시오페아' 역시 호평을 받고 있다고 하니, 애초에 기본기가 정말 좋은 배우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참고로 오수재라는 캐릭터명이 특이해 무슨 특별한 뜻이 있을까 싶었는데, 그녀의 큰 오빠와 작은 오빠의 이름이 각각 오천재와 오영재인 것을 보니, 뭔가 똑똑하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 지어졌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② 정의로운 로스쿨 학생, 공찬
앞서 언급한 것처럼 기본적으로 법정물이긴 하지만, 로맨스가 많이 첨가됐다. 그래서 로스쿨 학생 역을 맡은 공찬 역의 황인엽 배우와 서현진의 케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들의 호흡이 좋으면, 로맨스의 비중이 확대될 것 같은데, 아직까지는 딱히 설렌다는 느낌이 확 들진 않는다. 로펌의 대표까지 승진했다가 한순간에 로스쿨 교수로 좌천된 오수재는 운명처럼 그녀가 국선 변호사 시절에 알았던 피고인 공찬과 만나게 된다.
자신을 끝까지 믿어주는 오수재 덕분에 법조인으로서의 꿈을 갖게 된 공찬은 자신의 과거 신분을 숨기고, 그녀와 관계를 쌓아가기 시작한다. 사실 황정엽은 최근에 봤던 넷플릭스 '안나라 수마나라'에서 돋보이는 연기를 보여주면서 주목하게 됐다. 아직은 감정과잉인 그의 연기가 살짝 거슬릴 때도 있지만, 연기에 진심인 그가 경험만 더 쌓으면, 좋은 배우가 될 수 있을거라 확신한다. '안나라 수마나라'는 개인적으로 내 인생 드라마다. 기회가 된다면 꼭 한번 시청하는 것을 추천한다.
③ 겉과 속이 다른 최태국 회장
이제는 연기에 관록이 실린 허준호 배우가 최태국 회장 역을 맡았다. 연기가 너무 소름 돋아서 앞으로 악당 끝판왕의 역할을 이경영 배우와 함께 나누게 되지 않을까 싶다. (이미 대배우가 된 그에게 솔직히 이 이상의 무슨 평가가 더 필요할까?) 오수재가 속한 로펌의 회장이며, 그녀 덕분에 로펌을 일류로 키울 수 있었다. 큰 아들에게 승계를 진행하기 위해 오수재 파트너 변호사를 대표 변호사로 승진시켰다가 곧바로 로스쿨 교수로 좌천시켜 버린다. 허준호의 무게감 있는 연기 덕분에 드라마가 마냥 가벼워지는 대신 확실한 무게감을 갖게 됐다.
이미 인터넷에는 에피소드마다 사건의 배후가 누구인지, 사건의 증거가 뭔지 추리하는 예측이 난무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드라마 '왜 오수재인가'가 6월에 시작하는 드라마들 중에서는 제일 재밌지 않을까 생각한다. 마냥 가볍지도, 마냥 무겁지도 않으니, 많은 연령층에서 시청할 수 있는 호불호가 크지 않은 드라마다. 킬링타임 용으로 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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