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지상파 방송국들을 보면, 확실히 엄청난 위기에 놓여있긴 한가보다.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타 방송국의 프로그램명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방송사고로 간주할 정도로 기싸움이 대단했지만, 이제는 아예 대놓고 밈(meme)으로 활용하는 사례마저 생겨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SBS의 간판예능인 '런닝맨'을 들 수 있다.
김종국의 주도하에 동료인 유재석과 하하가 고정출연하는 MBC 예능 '놀면뭐하니'가 거의 매주 언급될 뿐만 아니라, '런닝맨'의 담당PD인 보필PD는 아예 한술 더 떠 하하의 캐릭터를 '놀면뭐하니'에서는 열심히 하고, '런닝맨'에서는 살짝 삐대는 것을 기믹(gimmick)처럼 활용하고 있다. 심지어 지석진이 참여했던 '놀면뭐하니'에서의 음원 프로젝트가 신드롬 수준의 성공을 거두자, 신곡을 '런닝맨'에서 발표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를 바라보는 시청자들은 뭔가 신기한 느낌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제는 부캐나 멀티 유니버스라는 개념 자체가 흔해짐에 따라 '무한도전'의 정신적 계승자인 '놀면뭐하니'의 세계관이 '런닝맨'으로 확대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당연하지만, 유재석과 하하의 공로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이 둘은 시청자의 취향에 따라 최애 방송인이 아닐 수는 있어도 최소한 대놓고 싫어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스캔들 청정지역이다. 하지만 담당PD들의 결단과 상상력이 없었다면, 실천이 어려웠을 거라는 점을 묵과해서는 안된다.
스펙대결 : 런닝맨 보필PD vs 놀면뭐하니 창훈PD
현재 '런닝맨'과 '놀면뭐하니'가 공식적인 콜라보를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런닝맨'의 보필PD와 '놀면뭐하니'의 창훈PD가 유재석을 통해 간접적이지만, 통화로 한차례 대화가 오가면서 시작됐다. 두 프로그램 모두 PD의 인지도가 출연진만큼이나 높다는 특징이 있다. 참고로 담당PD가 프로그램의 캐릭터처럼 활용되기 시작한 원조는 KBS '1박2일' 시즌1의 나영석PD다.
① 암산1단, 주산1단 vs 암산대회 출신
사실 처음에 유재석이 창훈PD의 호구조사를 시작할 때만 해도 별다른 기대감이 없었다. 하지만 유재석이 게임에 대한 패러다임을 신체에서 두뇌로 전환하면서부터 꿀잼이 시작됐다. 솔직히 유재석 입장에서는 힘으로 하면, 창훈PD가 나이가 있는 만큼, 젊은 보필PD에게 상대가 안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심지어 쿵짝이 잘맞는 하하가 '보필이가 머리도 좋아'라며 너스레를 떨자, 막내 이미주가 창훈PD에게 '머리 좋으세요?'라고 대놓고 물어본다.
이에 창훈PD는 암산1단과 주산1단이라고 밝히는데, 여기서부터 뭔가 웃겼던 것 같다. 일단 암산에 단이라는게 있었나 싶었고, 요새 주산을 누가 배워라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찾아봤는데, 정말 암산과 주산1단이 있었다. 한국주산암산수학연구회에서 암산과 주산을 급수에 맞춰서 자격증을 발행하고 있었다.) 근데 나중에 보필PD도 지기 싫었는지, 자기는 어렸을때 암산대회에 나갔다며, 은근슬쩍 자랑하는 바람에, 라이벌 구도가 형성됐다.
② 연세대학교 97학번 vs 고려대학교 08학번
여기에 예능신이 강림했는지 운명같은 설정이 계속됐다. 두 PD가 각각 한국의 대표적인 라이벌 학교로 불리는 연세대와 고려대 출신이었다. 보필PD는 고대를, 창훈PD는 연대를 졸업했다. 다만 학번을 보니 둘의 나이차이가 상당히 났다. 출생연도만 보면, 창훈PD는 아마 재수를 했거나 빠른 년생일 가능성이 높다. 08학번인 보필PD에게 97학번은 실제로 교수님이나 강사로 마주쳤을 확률이 높다.
③ 1977년 백사띠(?) vs 1989년생 뱀띠
여기에 둘이 동갑이었다. 정확히는 띠동갑이었는데, 보필PD가 뱀띠라고 밝히자, 창훈PD의 남다른 개그감이 여기서 터졌는데, 하얀뱀을 뜻하는 백사띠라며 어필한다. 이에 출연진들이 PD에게 추잡스럽다고 놀리는데, 진짜 한참을 웃었다. (실제 백호, 청룡, 백사, 황금돼지 같은 띠는 사주에서 유별하게 귀한 띠로 여겨지긴 한다.) 일반적으로는 띠동갑 매치가 재밌긴 어려운데, 창훈PD가 워낙 유약한 캐릭터로 유명해서 재밌을 것 같다. 참고로 창훈PD는 예전에 '무한도전'에서 박명수로 살아보기 편에서 나왔었다.
④ 문과(신문방송학과) vs 이과(컴퓨터공학과)
여기에 화룡점정으로 창훈PD는 신방과를, 보필PD는 컴공과를 졸업한 것이 밝혀지면서, 문과 vs 이과의 대결구도가 만들어졌다. 현실에서는 연대 신방과의 입결이 고대 컴공과에 비해 입결이 살짝 더 높긴 하지만, 거의 무의미할 정도로 둘 다 학창시절 공부를 열심히 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그만큼 치열한 두뇌싸움이 펼쳐질거라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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