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얘기해서 영화 '발신제한'은 주변 사람들에게 주저없이 추천할 수 있는 웰메이드 영화다. 특히 별다른 기대없이 영화를 봤다면, 기대 이상으로 훨씬 재밌을 거라 확신한다. 영화의 초반부는 마치 영화 '스피드' 같은 긴박감이 있다. 두 자녀를 태운 차량에 설치된 정체모를 폭발물 때문에 아무도 내릴 수 없다는 상황이라는 설정 자체가 굉장히 흥미롭다. 차량에서 나갈 수없기 때문에 해운대에서 경찰에게 포위됐을 때는 영화 '폰부스'가 생각났다.
영화 발신제한 출연진, 결말
솔직히 영화 '발신제한'은 조우진의, 조우진에 의한, 조우진을 위한 영화라 봐도 과언이 아니다. 거의 원맨쇼라고 되는데, 이 원맨쇼가 전혀 지루하지 않았던 이유는 순전히 배우가 가진 간절함 때문이 아닐까 싶다. 조우진 배우가 첫 주연을 맡은 작품인 만큼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한 것 같다. 다만, 워낙 임팩트 있는 조연으로서의 역할을 자주 봐서 그런지 원톱 주인공으로서의 포스는 살짝 떨어지는 느낌이다. (물론 이성민 배우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는 주연으로서의 필모가 쌓이다 보면, 자연스레 해결된다.)
이에 비해 범인 진우 역을 맡은 지창욱 배우는 확실히 주인공 같은 포스가 있었다. 최대한 어려움에 찌든 사람으로 분장을 해 특유의 잘생김(?)을 봉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목을 집중시키는 특별한 힘이 있다. 물론 지금 버전도 상당히 괜찮긴 하지만, 만약 조우진과 지창우 배우가 각자의 역할을 바꿔 맡았다면, 영화의 퀄리티와 흥행이 어떤 식으로 달라졌을지 궁금하다.
빌런 같지 않은 빌런
요새는 왜 이렇게 악당들에게 특별한 서사를 만들어주지 못해 안달이 났는지 모르겠다. 많은 악당들이 꼭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처럼 포장하는 바람에 주제의식이 모호해지거나 이제는 신물이 나는 한국식 신파처럼 변질되는 경우가 많다. 오락영화에서 악당은 그냥 나쁜 사람이라서 이런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도 괜찮다. 차라리 조커나 베놈같이 악에 대한 차별적인 아이덴티티를 고민한다면, 좀 더 매력적인 빌런 캐릭터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싶은데, 너무 쉬운 길을 선택하는 것 같다.
몰입이 안되는 서사
서로 다른 사람이 연출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영화 초반의 퀄리티와 중후반의 퀄리티가 너무 갈린다. 초반부는 부산이라는 도시에서 펼쳐지는 카체이싱이 긴박감있게 느껴졌는데, 중반부터는 각본의 설정과 개연성이 너무 떨어지다 보니 루즈해진다. 서사의 디테일이 정교하지 않아 중간중간 몰입감이 떨어지는 것도 너무 아쉽다.
더불어 언젠가부터 갈라치기 식으로 사회 구성원들을 분열하려는 듯한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 안타깝다. ① 남성과 여성, ② 부자와 서민(=강남과 강북) 등과 같은 프레임을 만들어 자꾸만 결과론적인 평등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너무 많은 부작용이 생기고 있다. 폭발물을 설치한 범인인 진우(지창우)가 택한 정의를 구현하는 방식은 협박후 횡령이었다. 저축은행의 불완전 상품판매에 당한 진우의 여자친구와 ② 횡령의 피해자들 모두 똑같은 피해자다. PB센터에서 관리받고 있는 부자들의 돈은 뜯어도 된다는 식의 발상은 매우 위험하다.
돈이 있는 사람들은 (심지어 횡령일지라도) 손해를 봐도 되고, 서민들은 절대 손해보면 안된다는 식의 접근은 결과론인 평등을 지향할 때 발생하는 문제다. 물론 횡령한 돈을 피해자 모임에서 관리하는 통장에 넣었다 식의 명분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범죄 자체를 정당화시킬 순 없다. 즉, 부자들을 무조건적인 악으로 규정해버리는 프레임과 함께 가난한 사람들은 무조건 착하다는 착각을 일반화시켜서는 안된다.
하지만 영화는 결국 한국식 신파를 선택했다. 범인(지창우)이 펼친 동귀어진에서 살아남은 이성규(조우진)가 자신이 몸담았던 은행을 향해 불완전 판매에 대한 복수를 펼쳐가는 것으로 결론을 내버린 것이다. 사실 인과응보인 것 같아 기분 좋은 결말이었지만, 뭔가 뻔해서 아쉽긴 했다. 네티즌들의 평점은 대체로 평범한 편이다. (네이버 영화 7.62점, 다음 영화 5.3점)
아역들의 연기가 너무 좋았는데, 특히 딸 이혜인 역을 맡은 이재인 배우의 연기가 놀라울 정도로 돋보였다. 이 정도면 그냥 생활연기 수준을 넘어선 것 같은데, 필모를 살펴보니, 이미 여러 영화에서 다양한 역할을 맡으며, 나름 충무로에서 떠오르는 신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요새 20대 여배우들이 기근인 상황에서 굉장히 기대가 됐다. 더불어 오랜만에 김지호 배우가 영화에 출연했는데, 역시나 반가웠다. 아쉽게도 조연이라 씬 자체는 많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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