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돈 룩 업'은 흥미로운 소재로 만든 웰메이드 상업영화다. 개인적으로 정말 시간가는 줄 모르고 봤다. 아마 블랙코미디나 정치, 심리에 관심있다면, 누구나 재밌게 즐길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혹시라도 시청이 주저된다면, 지난 2020년 미국대선을 돌아보자. 만약, 자신이 지난 미국대선을 흥미롭게 즐겼다면, 무조건 강추다. 물론 깊이있는 풍자를 기대했던 사람들에게는 아쉬운 지점들이 있긴 하지만, 애초에 블랙코미디 자체가 마이너한 영역이기 때문에 대중성을 고려하면 SNL 수준인 이 정도가 딱 적당한 것 같다.
사실 이 영화는 세가지 이슈로 화제가 됐다. ① 정말 실화같은 이야기라는 점과 함께 ② 엄청난 초호화 캐스팅을 자랑하고 있으며, 소소하지만 ③ 한국이 자주 언급된다는 점 때문이다. 단순히 지구를 파괴시킬 수 있을 만큼의 거대한 혜성이 날아오고 있다는 점이 실화 같다기보다는 정치와 언론, 그리고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바라보는 이슈에 대한 반응이 굉장히 리얼하다.
물론 실제로 행성이 충돌해서 공룡이 멸망했다는 연구보고가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행성충돌설이 아예 신빙성 없다고 할 순 없다. 아마 '돈 룩 업'의 감독인 애덤 맥케이의 이전 작품인 영화 '빅쇼트'가 실화를 다뤘다는 점과 함께 감독 자체가 실화를 따분한 다큐멘터리가 아닌 상업영화로 재포장하는데 특별한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좀 더 실화처럼 다가오지 않았을까 싶다.
넷플릭스 돈 룩 업 줄거리, 출연진 소개
미시간주립대의 천문학과 대학원생인 케이트 디비아스키(제니퍼 로렌스)와 그녀의 지도교수인 랜달 민디 박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지름이 대략 10km에 달하는 혜성이 6개월 14일 뒤에 지구와 충돌할 것임을 발견한다. (참고로 최고봉인 에베레스트의 높이가 8,849m이니, 이것보다 큰 규모다.) 그들은 이를 각종 상급 연구기관에 보고했고, 결국 이들은 백악관에 초청돼 대통령께 직접 설명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통령 제이니 올리언(메릴 스트립)과 그녀의 아들인 비서실장 제이슨 올리언(조나 힐)은 행성충돌이 정치적으로 별다른 도움이 안된다는 이유로 흘려듣는다. 심지어 이들은 민디 박사와 케이트가 유명 대학교 출신이 아니라는 점과 실제 발견자인 케이트가 아직 박사가 아니라는 점, 충돌확률이 엄밀하게는 100%가 아니라는 점 등을 근거로, 이를 잠재적 중대사건으로 축소시켜 버린다. (민디 박사의 계산에 따르면 행성의 충돌확률은 99.78%이었다. 정치인들아 현실에서는 정말 이런 말장난하지 말자!)
절박한 마음에 어쩔 수 없이 언론에 폭로하기로 결정한 민디 박사와 케이트는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프로그램인 '더 데일리 립'에 출연한다. 하지만 과학적인 사실을 마치 가벼운 예능처럼 다루는 모습에 혐오를 느낀 케이트는 생방송 도중 나가버리고, 끝까지 남았던 민디 박사는 뜻하지 않게 잘생긴 외모가 화제가 되면서 유명인사가 돼버린다. (이런 게 인생인가?)
영화는 이 와중에 연예인의 만남과 결별소식이 지구의 종말을 이끌 수 있는 행성충돌 소식보다 훨씬 중요하게 다뤄지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정말 놀랄만큼 리얼했다. 아리아나 그란데의 연기는 그냥 SNL이라고 생각하면 봐줄만한 수준이었고, 대신 Just look up이라는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부분은 정말 멋있다. 노래를 단순한 영화적 장치라고 보기엔 너무 쓸데없이 고퀄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굉장했다.
대통령은 대법관 임명과정에서 각종 추문에 시달리며 정치적인 위기에 처하자, 행성충돌을 기회삼아 영웅적인 이미지로 이를 돌파하려 한다. 그래서 핵미사일을 발사시켜 행성이 지구에 충돌하기 전에 우주에서 폭발시키려는 계획을 세우지만, 마지막 순간에 그녀의 가장 큰 정치적 후원자인 피터 이셔웰(마크 라이언스)이 행성을 경제적으로 활용하자고 설득하면서, 이를 전격적으로 중단시켜 버린다. (피터는 행성에 32조 달러 규모의 광물이 있을거라 추정했다.)
이후 미국은 행성충돌과 관련된 이슈로 양진영으로 나뉘면서 야당은 하늘을 보라는 look up이라는 구호를 외쳤고, 대통령이 포함된 여당은 이를 음모론 정도로 치부해버리고 don't look up이라 외친다. 영화는 결국 양비론에 소모된 우리들이 희생자라는 사실을 되새겨 준다. 어떠한 정치적인 이슈나 경제적인 이슈도 지구의 종말 (혹은 종말을 초래할 수 있을 정도의 자연재해) 앞에서는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격랑의 6개월 14일 동안 유명인사로 떠오른 민디 박사는 '더 데일리 립'의 진행자인 브리(케이트 블란쳇)와 바람이 나기도 하지만, 결국 종말 앞에서는 그 어떤 것도 필요없다는 것을 깨닫고 가족의 곁으로 돌아온다. 마지막 순간에 가족들과 한 식탁에 함께 모여 식사를 하는데 행복해 보였고, 행성충돌의 후폭풍으로 느껴지는 진동에 두렵지만, 그럴수록 가족의 손을 더 꼭 잡는 모습이 가슴에 와닿았다.
사실 모든 주연배우들의 연기가 좋았지만, 그중에서도 메릴 스트립의 연기는 정말 소름끼칠 정도로 진짜 대단했다. 그녀의 연기를 통해 도널드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의 모습을 동시에 봤다면 과장일까? 특히 영화 속 자신의 후원자가 소리치며 그녀를 부를 때 깜짝 놀라 뛰쳐나가는 장면은 블랙코미디의 정수를 보여준 게 아닌가 싶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제니퍼 로렌스는 어느 순간 믿보배 수준으로 떠올랐기 때문에 대체로 기대에 부합하는 수준의 연기를 했다. 제일 인상적인 장면을 하나 꼽자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이제 정말 행성충돌까지 며칠 남지 않은 상태에서 '더 데일리 립'에 다시 출연해 '미안한데, 모든 대화를 재치있고, 매력적이고 호감있게 할 수는 없는 거예요. 어쩔 땐 할 말을 제대로 전해야 하고 듣기도 해야 된다'며 폭주하는 장면은 뭔가 깊은 울림이 있었다.
의외로 놓친 분들이 많은데, 비서실장 역을 맡은 조나 힐은 영화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가장 가까운 친구인 도니로 등장한 그 녀석이 맞다. 그때의 모습이 너무 강렬해서 그런지 이번에 맡은 망나니 같은 비서실장의 모습은 그냥 도니의 연장선상처럼 느껴졌다.
사실 넷플릭스 '돈 룩 업'은 평소 즐겨찾는 에블린님의 블로그 포스팅을 보면서, 이 영화 참 재밌겠다 싶어 기억해뒀다가 지난 주말에 봤다. 참고로 에블린님의 영화리뷰는 영화에 대한 남다른 시선을 즐기시는 분들께 즐거운 놀이터가 될 수 있을거라 생각해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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