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오래간만에 16편의 에피소드가 전혀 길다고 느껴지지 않는 드라마를 봤다. 요새 전문적인 분야를 다룬 드라마가 많이 늘어나긴 했지만, 대체로 수박 겉핥기식으로 접근한 탓에 굉장히 아쉬웠는데, '스토브리그'는 좀 남달랐던 것 같다. 실제 야구계에서 발생할법할 사건들을 현실감있게 다뤄서 그런지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원래 스포츠 드라마라는 장르 자체가 애초에 인기는 없다. 실제로 성공한 작품들이 뭐있나 고민해보면, 언뜻 생각이 안날 정도다. 이는 제작사들 입장에서 로맨스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많은 제작비가 들어가는 탓에 가성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작품은 지난 2016년 MBC 드라마 극본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수상작임에도 불구하고, 무려 4년동안이나 편성에서 계속 밀렸다고 한다. 이후 실제방영은 SBS에서 2019년 12월 13일부터 2020년 2월 14일까지 했다.
이신화 작가의 입봉작인 '스토브리그'는 거의 1년동안 집필됐으며, 실제로 작품의 깊이를 봤을 때, 아마도 작가가 거의 영혼을 갈아가며 관련업계를 공부했을 거라 추정된다. 이쯤되니 이신화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대될 수밖에 없는데, 찾아보니 좀 더 대중적인 로맨스 오피스물이 될거라고 한다. 사실 생각해보면, '스토브리그' 역시 본격적인 스포츠 드라마라기보다는 오피스물에 가깝다.
솔직히 작가가 굉장히 똑똑한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다. 만약 실제 야구경기 자체에 집중했다면, 야구에 관심없는 시청자들은 애초에 관심도 없을 것이며, 야구팬들은 당연히 드라마가 아닌 현실 야구중계를 봤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정규시즌이 끝난 이후의 비시즌 이야기를 다루는 동시에, 구단이라는 회사에서 일하는 샐러리맨들의 일상을 그려내니, 야구에 별 관심이 없는 나조차도 흠뻑 빠져들게 만들었다. 다만, 흥미가 있을 만한 소재들을 모두 다뤘기 때문에 시즌2는 좀 힘들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지난 2021년 여름에 진행한 인터뷰에서 시즌2가 진행될 수 있음을 밝혔기 때문에, 가능성은 매우 높은 편이다. 시즌2 역시 야구를 소재로 한 16부작을 기획할 예정이며, 백승수가 계속 드림즈 단장을 맡을거라 했다. 여기서 좀 재밌는 포인트가 있다면, 시즌2는 드림즈의 프론트에 관한 얘기가 아닌 다른 구단에 관한 얘기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시즌1의 주역들은 에피소드마다 짬짬이 반갑게 등장하는 수준에 그칠 수 있다.
스토브리그 에피소드 소개
'스토브리그'는 보통 메인 에피소드 1개를 2화에 걸쳐 다루는 와중에, 1~2개의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함께 진행되도록 배치해, 스토리가 정말 박진감있게 진행된다. 원래 20회로 제작할 스토리를 16회로 압축시켜 방영한 만큼, 쉬어가는 회차가 전혀 없을 정도로 꽉 찬 느낌이다. 아래 에피소드 목록들을 보면 알겠지만, 솔직히 앞으로 야구를 소재로 한 드라마에서 이 이상의 에피소드들을 다룰 수 있을까 싶긴 하다.
· 1회 : 코치진 파벌싸움, 방출자 명단, 프랜차이즈 스타의 갑질
· 2회 : 선수 트레이드(1차)
· 3회 : 신인 드래프트
· 4회 : 프로팀 스카우트 비리, 외국인 용병영입
· 5회 : 병역파문
· 6회 : 장애인 채용
· 7회 : 선수단 연봉협상
· 8회 : 언론조작, 채용비리
· 9회 : 2차 드래프트
· 10회 : 선수협 갈등(불공평한 비시즌 개인훈련)
· 11회 : 해외전지훈련(국내훈련)
· 12회 : 입스(yips), 직원들의 동기부여와 성과
· 13회 : 약물스캔들
· 14회 : 선수 트레이드(2차), 승부조작
· 15회 : 이면계약, 구단해체
· 16회 : 구단매각, 한국시리즈 진출
개인적으로 제일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6회 장애인을 구단의 전력분석관으로 채용하는 과정에서 운영팀장 이세영(박은빈)이 '우리는 차이를 가지고 차별을 하지 않겠다.'는 말을 했을 때였는데, 정말 깊이 와닿았던 것 같다.
스토브리그 등장인물 총정리
앞서 언급한 것처럼 '스토브리그'는 정말 놀랍게도 모든 에피소드들이 하나같이 감동적이거나 고민해볼 만한 지점이 있다. 물론 후반부로 가면 갈수록, 각종 작은 에피소드들이 혼재된 탓에 스토리 전개가 다소 작위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퀄리티 자체는 대체로 무난하다.
이야기는 주인공인 백승수(남궁민)가 아직 야구단 드림즈의 단장으로 취임하기 전부터 시작되는데, 백승수의 이력이 특이하다. 단장으로서 씨름, 아이스하키, 핸드볼팀을 이끌다 우승까지 시킨 뒤, 팀을 해산시킨 것이다. 당연히 현실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이력이며, (그래도 작가와 감독이 양심은 있는지) 드라마에 등장하는 주변인물들조차 놀라운 이력으로 받아들이긴 한다.
남궁민이 주연배우를 맡은 드라마 작품들은 대체로 어른들을 위한 동화같은 이야기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김과장'이나 '닥터 프리즈너' 같은 드라마들은 선(善)이 악을 참교육하는 과정을 신나게 그린 탓에 시청자들이 스트레스가 풀리는 맛에 몰입해서 본다. 물론 남궁민 역시 배우로서 욕심이 많은지, 단순히 오피스물에만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작품에서 다양한 역할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에 계속 파격적인 변신을 하고 있는 배우로 기억된다.
'스토브리그'의 중반부터 스토리에 힘을 싣고 활약하는 재송그룹 상무(드림즈 사장) 권경민 역을 맡은 오정세의 연기가 진짜 어마어마할 정도로 파격적이다. 한국판 조커를 연상시키는 듯한 모습에 숨죽이고 봤던 장면들이 참 많았다. 또한 드림즈의 운영팀장 이세영 역을 맡은 박은빈 역시 거의 생활연기를 보여주며, 남궁민과 찰떡을 이뤘다. (개인적으로 앞으로가 정말 기대되는 여배우다.) 드림즈 운영팀의 막내 한재희 역을 맡은 조병규 역시 드라마의 감초같은 역할을 딱 적당히 잘했다.
놀랍게도 누구하나 연기구멍처럼 느껴지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다는 점은 정말 특이할만하다. 많은 드라마들이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아이돌 출신 연기자를 1명 정도 끼워넣는 사례가 많은데, '스토브리그'는 그렇지 않았다. 사실상 모든 배우들이 각자의 역할을 모두 100% 이상 해냈다고 생각한다.
영화 모럴센스 출연진, 명대사 TOP 5
넷플릭스 모럴센스는 호불호가 많이 탈 것 같은 마니악한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대중적인 장르인 로맨틱 코미디와 결합하면서 접근성을 높였다. 따라서 본격적인 '부먹'을 기대했던 이 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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