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임퍼즐'은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뭔가 좀 아쉽다. 정말 괜찮은 수작이 될 수도 있었는데, 연출과 캐스팅이 조금 아쉬웠다. 일단 소재는 너무 괜찮았다. 범죄심리학자인 한승민(윤계상) 교수가 오랜 기간 준비한 범죄를 저질러 감옥에 자진해 들어가 본인이 계획했던 목적을 달성하는 과정까지는 흡사 미드 '프리즌 브레이크'가 연상될 정도로 깊이가 있어 보였다. 또한 사회적인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이단종교가 어떤 식으로 개개인의 삶을 갉아먹는지 잘 조명한 점 역시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차원에서 좋았다.
크라임 퍼즐 관전 포인트 TOP 3
① 기대에 못미친 OTT 오리지널 콘텐츠
하지만 스토리의 디테일이 너무 떨어져 현실성이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무리한 스토리 전개를 마무리 짓기 위해 뜬금없는 액션신을 자주 등장시킨 점은 정말 아쉽다. 물론 애초에 다큐가 아닌 드라마를 일일이 고증한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하니, 이 부분은 그래도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만 OTT의 미덕을 전혀 살리지 못한 점만큼은 두고두고 아쉽다. '크라임퍼즐'은 KT의 OTT 시즌(Seezn)이 제작한 자체 오리지널 콘텐츠로서 상당한 제작비를 들여 만든 대작이다. OTT에서 제작하고 방영한 만큼 표현의 제약이 없었는데, 너무 아쉽게도 그냥 쓸데없이 잔인하다는 느낌만 들었다. 잔인한 장면을 몇개 더 보여줬다고 표현의 한계를 뛰어넘는 게 아니다. 신선한 소재를 좀 더 드라마틱하게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잃은 것이다.
예를 들어 70살은 족히 들어보이는 사이비 종교의 교주가 자신의 성녀(聖女)로서 손주딸뻘인 유희(고아성) 경위를 그녀가 아직 어렸을 때부터 안배했다는 점은 뭔가 현실에서도 일어날 법해서 소름 끼쳤지만, 이를 활용해 어떤 흥미로운 사건을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에 김 빠진 사이다를 마신 느낌이다.
또한 고아성이 전혀 성녀같아 보이지 않았다는 점 역시 아쉽다. 개인적으로 고아성의 연기는 늘 무난한 정도인 것 같다. (마스크가 개성 있다고 해서 무조건 연기가 좋은 게 아니다.) 몰입을 못할 정도로 이상한 것은 아닌데, '크라임퍼즐'의 여주인공으로서는 많이 아쉬운 수준인 것 같다. 사실 진짜 역대급으로 망친 캐스팅은 배우 송선미다. 그녀가 맡은 역할인 박정하 이사장은 드라마에서 사실상 끝판왕에 준하는 악당인데, 정말 역대급 발연기를 보여줬다.
② 송선미의 발연기
원래 송선미라는 배우가 이렇게나 연기를 못했나 싶은데, 이번 작품에서 만큼은 차마 눈뜨고 못볼 정도로 심각했다. 뭔가 나름 한국판 조커를 노린 것 같은데, 그냥 웃겼다. 중2병 걸린 청소년 같이 허세 어린 그녀의 연기를 볼 때마다 진짜 진심으로 많이 웃었다. 감독에게 묻고 싶다. 송선미의 연기를 봤을 때, 정말 위화감이 1도 안 느껴졌나? 나는 처음에 송선미의 연기를 보고, 장르가 원래 코믹 범죄 스릴러였나 싶었을 정도였다. 애니메이션 '피카추'에 등장하는 로켓단 같이 그냥 귀여운 악당 느낌이랄까?
다른 작품들에서는 이 정도로 못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애초에 송선미가 스스로 소화할 수 없는 역을 맡은 것이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만약 해당 역할을 배우 김성령이나 고현정, 김옥빈 중에 하나가 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정말 카리스마 넘치는 악당이 됐을 텐데, 너무 아쉽다. 반면, 윤계상은 이제 정말 배우 같은 포스와 느낌이 난다. 진지하게 배역에 몰입하는 느낌도 들고, 지금도 훌륭하지만, 몇년 뒤에는 어떻게 성장할지 기대된다.
③ 행동을 통해 심리를 유추하는 재미
MBTI에서 S(감각)을 갖춘 사람들은 이 드라마가 무조건 재밌을거라 생각한다. 애초에 범죄심리학과 프로파일링(profiling)이라는 분야 자체가 세밀한 관찰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윤계상이 이끌어 내는 추리들이 모두 굉장히 합리적이라 느껴질 것이다. 아래 대사는 극중에서 사이비 종교의 2인자이자 시장인 악당이 기자들에게 했던 발언이다.
부친을 살해한 범인, 반드시 잡아내 엄벌에 처할 겁니다. 그자가 누구든, 어디에 있든, 절대 용서치 않을 것입니다.
이 발언을 듣고 윤계상은 시장이 범인임을 확신하며, '누구든'과 '누구든지'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의 차이를 설명하는데 정말 공감이 됐었다. '누구든'은 '나와 가까운 사람이라도'라는 뜻이라는 것을 알고나니, 그 차이가 선명하게 구분되지 않나? 드라마 곳곳에 이런 재미가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평소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꿀잼처럼 느껴질거라 확신한다. 그런 점에서 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역시 동일한 맥락에 있다.
크라임퍼즐 등장인물, 결말
이야기는 앞서 언급한 범죄심리학자 한승민(윤계상) 교수와 연인인 유희(고아성) 경위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이들이 속한 경찰측 인물로는 김판호(윤경호) 팀장과 배성필(우강민) 형사, 박수빈(서지혜) 형사가 있는데, 연기가 다들 괜찮았다. 특히 막내형사이자 교주의 딸로 열연한 서지혜의 마지막 광기 어린 연기는 정말 인상적이었다. 결론적으로 경찰팀(5명) 내에 이단종교 측과 내통한 사람이 2명이나 되기 때문에 이기기 힘든 싸움이었지만, 결국은 교도소측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교주를 죽이며 영화는 끝난다.
실제로 교주를 사살한 것은 마지막에 다시 변심한 김판호 팀장이지만, 사실 한승민이 해결했다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마지막까지 경찰 내 배신자가 누굴까 계속 고민을 많이 했다. 팀장 아니면 막내형사일거라 생각은 했지만, 이 둘이 동시에 배신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한승민 교수가 빠르게 교도소에 들어갔기 때문에, 교도소내 인물들도 굉장히 비중이 많은데, 연기가 다들 준수했지만, 어디선가 봤던 그런 클리셰(cliché)의 반복인지라 딱히 매력적이진 않았다.
이야기 자체가 그리 복잡한 편은 아니지만, 등장인물들이 많기 때문에 여러가지 이야기가 뒤섞였을 뿐만 아니라,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들이 무차별적으로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복잡하다고 느껴질 수 있다. 그래도 설명 자체를 친절하게 해주는 편이기 때문에 전혀 머리를 쓰며 볼 필요없는 킬링타임용 드라마다. 만약 의미없는 회상씬이나 불필요한 설명들을 걷어내고, 10부작 대신 6부작 정도로 제작했으면 훨씬 더 깔끔하지 않았을까 싶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