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0년 9월 16일, LG화학이 배터리사업부문(LG에너지솔루션)의 분할계획을 발표하면서 엄청난 화제가 됐습니다. 사실 배터리사업부문 분할 자체는 개인투자자들을 포함한 모든 주주 분들이 환영할만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LG화학이 보유하고 있는 차량용 2차전지에 대한 가치를 재평가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분할방법이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만약 회사가 물적분할이 아닌 인적분할을 한다고 발표했다면, 당연히 이런 거센 저항과 마주치지 않았을 것입니다. (참골 앞으로의 내용은 몰입감을 위해 시간순서대로 전개됩니다.)
인적분할 물적분할 차이점
도대체 물적분할이 뭐고, 인적분할이 뭐길래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일까요? 인적분할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분할입니다. 아메바가 각자의 자아를 가지고 둘로 나눠지듯이 회사 자체를 순수하게 둘로 쪼갠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즉, 기존 회사와 쪼개져 나온 회사가 서로 전혀 관계없는 독립적인 회사가 되는 것입니다. LG화학이 인적분할을 진행할 경우에는 기존 LG화학 주주들은 분할비율에 맞춰 LG에너지솔루션 주식을 받게 됩니다. 물론 대신 그만큼 현재 보유하고 있는 LG화학 주식수(혹은 주식가치)는 줄어들게 됩니다.
회사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물적분할은 인적분할과 결 자체가 전혀 다릅니다. 쪼갠 회사인 LG에너지솔루션의 지분을 LG화학 측이 모두 보유함으로써 자회사로 지배하게 됩니다. 즉, 이론적으로는 여전히 LG화학과 LG에너지솔루션이 한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기업가치 역시 이전과 동일합니다.
문제는 LG에너지솔루션이 당장에는 비상장 자회사로 나오지만, 현재 2021년 10월에는 기업공개(IPO)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점입니다. 이렇게 되면 LG화학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LG에너지솔루션의 지분은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LG에너지솔루션을 지배하는데 문제되지 않을 만큼만 구주매각과 신규공모를 할 것이기 때문에, 지배력 자체는 변화가 없습니다.
회사측에서는 LG에너지솔루션이 상장한다 하더라도, LG화학이 모회사로서 계속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주가에는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여기서 이론과 현실의 간극이 발생합니다. 보통 자회사의 실적은 모회사의 주가에 할인되어 반영되기 때문에 향후 LG에너지솔루션의 주가가 급등한다 하더라도, 분할 후 LG화학의 주가에 강력한 영향을 주기는 어렵습니다. 이를 보통 모회사 디스카운트라고 합니다.
결론적으로 LG화학이 보유하고 있는 차량용 2차전지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투자한 주주의 경우, 전혀 다른 회사에 투자한 꼴이 되거나 혹은 간접투자를 하게 된 셈이 돼버린 것입니다. 이미 한국거래소 측에서는 이와 관련해서 추후 LG에너지솔루션이 상장될 경우, K-뉴딜지수에서 LG화학을 제외할 것임을 사전인증까지 한 상황입니다.
회사는 왜 물적분할을 할까?
그렇다면 회사는 개인투자자들의 이같은 강렬한 반발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체, 물적분할을 선택했던 것일까요? 아마 검토하는 와중에 분명 예측했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현재 LG화학의 배터리사업부문은 수주받은 물량을 빠르게 소화하기 위한 추가적인 설비투자자금이 절실한 상황입니다. 그동안 화학사업부문이 이를 계속 지원해줬지만, 이제는 더이상 여력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나마 지난 2020년 2분기부터 배터리사업부문이 흑자전환에 성공했다는 점이 긍정적으로 보이며, 당장에 필요한 대규모 투자자금은 상장을 통해 확보할 계획인 것 같습니다.
한편에서는 정말 투자자금이 문제라면, 유상증자를 하면 되지 않겠냐고 반문할 수 있는데, 대주주인 LG 입장에서는 본인도 유상증자에 참여해야 LG화학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는데, 현재 구광모 LG그룹회장이 구본무 선대회장으로 부터 증여받은 주식에 대한 세금 때문에 자금상황이 넉넉지 않은 상황입니다. 회사측에서는 주요일정으로 오는 2020년 10월 30일에 임시주주총회를 열어 분할에 대한 최종결의를 마치고, 1달여 뒤인 12월초에 창립을 확정지을 예정이라고 합니다.
물적분할의 안좋은 기억
일부 투자자분들은 예전에 발생했던 비슷한 사례가 기억나실 겁니다. (솔직히 비슷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똑같다고 봐도 될 정도입니다.) 지난 2016년 2월, 부품개발업체 에코프로가 2차전지소재 사업부문을 물적분할해서 비상장 자회사(에코프로비엠)를 설립한 뒤, 2019년 3월에 이를 코스닥에 상장시켰습니다. 이후 주가흐름은 구간별로 다르게 해석할 순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에코프로가 에코프로비엠의 주가상승을 따라잡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현시점의 시가총액 역시 자회사인 에코프로비엠의 경우 7조 930억으로 모회사인 에코프로의 시총 1조 7800억원에 비해 약 4배 정도 크게 형성됐습니다.
2016년 2월 이전에 에코프로에 투자했던 분들은 대부분 2차전지소재의 성장성을 보고 투자했던 사람들입니다. 당연히 패닉셀이 단기간 이어졌지만, 다행히 이후 주가가 회복되면서 그나마 쉽게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2020년 10월 12일, LG화학의 주가는 680,000원대로 아직 물적분할 발표전인 전고점 732,000원을 회복하진 못했지만, 패닉셀이 발생했던 단기저점 588,000원으로부터 나름 반등하고 있습니다.
LG에너지솔루션의 분할은 누가 봐도 LG화학의 주가에 단기적으로는 악재입니다. (물론 대주주의 입장에서는 최대한 투자자금을 모아 사업을 키워야 되기 때문에 당연히 물적분할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나마 정말 다행인 것은 최소한 1년 정도는 LG에너지솔루션의 실적이 LG화학의 연결재무제표에 고스란히 잡히기 때문에, 나름 탈출(?)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줬고, 실제로 많은 분들이 탈출에 성공했습니다.
겉과 속이 전혀 다른 증권사들
솔직히 이제는 애널리스트의 보고서를 어디까지 믿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증권사는 소속 애널리스트가 내놓은 리포트를 통해 해당 종목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을 밝힌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정보가 부족한 개인투자자들은 증권사의 보고서를 보며, 투자에 참고합니다. 그런데 매번 악재가 발생할 때마다, 리포트에서는 그럴듯한 이유를 들어 홀딩해도 괜찮다고 하거나 심지어 펀더멘탈은 전혀 손상되지 않았으니 저가매수의 기회로 바라봐야 된다고 발표하면서, 뒤에서는 본격적인 매도를 함으로써 개인투자자에게 계속 물량 떠넘기기를 했습니다.
매번 이런 식의 표리부동(表裏不同)한 증권사의 행태를 접할 때마다 이게 사기랑 뭐가 다를까 싶습니다. 애널리스트들은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건지, 아님 대놓고 대주주의 이익을 대변하는 건지, 이런 식의 대응을 볼 때마다 기분이 안좋습니다. 물론 증권사 역시 이익을 추구하는 회사로서 특정 기업과 안좋은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 굉장히 부담스러울 수 있습니다. 특히나 대기업은 여러모로 증권사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솔직한 의견이 담긴 매도보고서를 내기 정말 힘들거라 예상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소신있게 외칠 줄 아는 패기있는 증권사와 애널리스트가 시장에서 성공하길 기도합니다.)
물적분할이 승인되는 과정
2020년 10월 28일, 국민연금이 회사가 제시한 LG에너지솔루션의 물적분할에 관한 안건에서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힘에 따라, 개인투자자 입장에서는 물적분할을 막을 수 있는 희망이 생겨났습니다. 국민연금이 밝힌 입장문을 살펴보면, 개인투자자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 대체로 비슷합니다. 요점은 이번 분할로 인해 주주가치가 훼손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전에도 언급했지만 한국에서는 모회사 디스카운트가 엄연히 존재합니다. LG에너지솔루션이 상장하게 된다면, 사업에서 아무리 뛰어난 성과를 기록한다 한들, 지배회사인 LG화학에 미치는 영향은 당연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회사측에서는 10월 30일 임시주주총회에서의 표결을 대비해, 주주달래기용으로 LG화학의 배당성향을 상향하겠다는 발표를 했는데, 현재로서는 이같은 행동이 오히려 발목을 잡아버린 셈이 됐습니다. 주주가치가 훼손됐음을 자인한 꼴이 돼버렸기 때문입니다.
LG화학의 지분을 5% 이상 보유한 주요 주주들을 살펴보면, 특수관계인인 LG연암문화재단의 지분을 포함한 LG가 30.09%, 국민연금은 10.28%입니다. 즉, 기관투자자와 외국인, 개인투자자가 보유한 지분이 대략 60% 정도입니다. 이 중에서 캐스팅보트를 쥔 측은 바로 외국인입니다. 주주명부가 확정됐던 10월 5일에 LG화학을 보유하고 있던 외국인의 지분율을 정확히 파악하진 못했는데, 대략 38% 전후로 판단됩니다.
결론적으로 외국인을 제외한 기관투자자와 개인투자자의 비중은 대략 20% 정도밖에 안됩니다. 정확한 물량계산이 안되지만, 기관투자자의 비중은 약 8% 정도이며, 기관투자자들은 리포트 등을 통해 물적분할을 지지하는 의견을 내놓은 것으로 보아, 이번 임시주총에서 찬성표를 던질 확률이 높습니다.
물적분할이 임시주주총회에서 승인되기 위해서는 ⓛ 발행주식 총수의 3분의 1 이상, ② 주총출석주주 3분의 2 이상이 동의해야 됩니다. 일단 ⓛ 발행주식 총수의 3분의 1 이상은 LG와 기관투자자, 국민연금 등이 투표할 예정이기 때문에,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문제는 ② 주총출석주주 3분의 2 이상의 동의입니다. 현재 LG입장에서는 외국인을 제외하면, 정확히 주총출석주주 3분의 2를 딱 확보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상황이 다소 애매하긴 하지만, 누락되는 표가 없다고 가정해보면, 역시나 회사가 이길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물적분할 승인, 모회사의 주가흐름
생각보다는 훨씬 압도적으로 표 차이로 사측이 승리함에 따라, 물적분할은 기존 안대로 진행되게 되었습니다. 이번 임시주주총회의 투표 참석률은 77.5%이며, 이중 82.3%가 물적분할을 찬성했다고 합니다. 이번 물적분할을 저지하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2가지라고 생각합니다. ① 이미 상당수의 개인투자자들이 사측의 물적분할 계획발표 이후 패닉셀을 해버렸기 때문에 투표에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② 캐스팅보트를 쥔 외국인이 결국 물적분할을 지지했습니다. 외국인 중에는 검은머리 외국인들도 많기에, 이들의 공통적인 투자심리를 추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외국인들은 LG라는 대기업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광고발주)으로 부터, 기관들에 비해 자유롭다는 점에서, 본인들의 이익에 추종해 투표했을거라 생각됩니다.
실제 물적분할이 승인된 이후, LG화학의 주가는 단기적으로 하락했지만, 장기적으로는 결국 다시 회복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LG화학이 2차전지 소재주로 거듭나겠다는 발표가 결정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배터리사업부문을 제외하고 나면, LG화학은 단순 석유화학회사 그 이상의 가치를 부여하기 어렵습니다. (그나마 첨단소재사업부문은 성장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주목할만합니다.) 대신 LG에너지솔루션이 상장된다면, 지난 2020년에 있었던 SK바이오팜 상장은 저리가라 할 정도의 엄청난 반향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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