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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이슈/정치

안철수 단일화 역사 (+연대순 총정리)

by 여의도 제갈량 2024.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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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0년대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누가 뭐래도 안철수 의원이다. 지금이야 국민의힘 소속이지만, 사실 그는 보수를 대표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오히려 정치 자체를 진보에서 시작했다. 물론 진보진영에 머무는 와중에도 그가 보인 신념은 중도에 가깝긴 했다. 안철수의 단일화 역사를 연대순으로 알아보자.

 

안철수

 

안철수 페이스북, 인스타 총정리

정체성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진보 진영의 입장에서 안철수는 보수 쪽으로 중도 확장성을 가진 인물이었다. (반대로 보수 진영의 입장에서 유승민 의원은 진보 쪽으로 중도 확장성을 가진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 보니, 의도치 않게 탈당과 창당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실제로 안철수는 합당을 포함해 총 6번의 창당을 했다. 대한민국 정치사에 이런 인물이 또다시 나올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 안철수 : https://www.facebook.com/ahncs111

· 안철수 인스타 : https://www.instagram.com/ahncheolsoo

· 문재인 : https://www.facebook.com/moonbyun1

· 문재인 인스타 : https://www.instagram.com/moonjaein

· 오세훈 : https://www.facebook.com/ohsehoon4u

· 오세훈 인스타 : https://www.instagram.com/ohsehoon4u

· 윤석열 : https://www.facebook.com/sukyeol.yoon

· 윤석열 인스타 : https://www.instagram.com/sukyeol.yoon

 

안철수 단일화 역사, 정치 역경 총정리

① 첫번째 단일화 : 2011년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

2011년 8월 오세훈 서울시장이 무상급식과 관련해 주민투표를 제안했지만, 투표율이 미달됨에 따라 시장직을 자진 사퇴함에 따라, 공석인 서울시장을 채우기 위한 재보궐 선거가 같은 해 10월에 펼쳐졌다. 당시 한나라당은 나경원 의원이, 민주당은 한명숙 전총리가 출마를 준비했다. 하지만 안철수와 박원순 변호사가 출마를 선언함에 따라 분위기가 급반전됐다. 특히 압도적인 지지율을 보였던 안철수는 끝까지 완주만 하면, 당선이 확실해 보였다.

 

첫번째 단일화 : 박원순, 안철수

 

하지만 야당후보 단일화에 공감해서 그런지, 박원순에게 기회를 양보한다. 과감했던 첫번째 양보는 안철수가 대중에게 대인배처럼 인식되기에 충분했으며, 단번에 차기 대통령감으로 부상할 수 있었다. 이후 한명숙 역시 단일화에 합의하면서, 무명의 변호사였던 박원순은 기적적으로 서울시장에 당선된다.

 

② 두번째 단일화 :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

기존 정치에 대한 불신을 바탕으로 새정치를 외치던 안철수에 대한 관심과 기대는 엄청났다. 실제로 그는 유력 대권주자였으며,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 하지만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워낙 강력했기에 야권 단일화가 이슈로 떠올랐고, 선거 직전에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단일화에 합의한다.

 

두번째 단일화 : 문재인, 안철수

 

단, 이때의 단일화 과정은 이전에 비해 순조롭지 않았다. 단일화를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지원 없이 해외로 곧장 출국했기 때문이다. 결국 안철수 지지자들의 표를 제대로 흡수하지 못한 문재인은 박근혜에게 패배하고 만다. 개인적으로 안철수가 정말 대통령이 되고 싶었다면, 이때 어떤 식으로든 야당의 단일화 후보가 됐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애초부터 무소속으로 시작할 게 아니라 민주당의 경선에 뛰어드는 것도 방법이었다.

 

실제로 많은 선거 전문가들이 좌파색이 짙은 문재인 보다는 중도로서 실용적인 성향이 강한 안철수가 표결집에 훨씬 유리하다는 분석을 했다. 결과론적인 얘기라 별 의미 없긴 한데, 이때가 아마도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마지막 기회가 아니었을까 싶다.

 

이후 안철수는 2013년 4월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노원병)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으며, 2014년에는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의 공동대표가 된다. 이때 함께 했던 공동대표가 바로 윤석열 정권에서 장관급 인사로 활동 중인 김한길 위원장이다. (참고로 새정치민주연합은 2015년 12월에 더불어민주당으로 당명을 개정한다.) 진보 진영 내 공식적인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했음에도 정치색 자체가 맞지 않아서 인지 당내에서 친문계와 갈등을 지속하다 결국 탈당하고 만다.

 

2016년 1월 반문계 의원들과 함께 국민의당을 창당했으며, 같은 해 4월에 치러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재선(노원병)에 성공한다. 뿐만 아니라 무려 38석의 국회의원을 배출해 내면서, 국민의당을 제3당으로 안착시켰다. 대한민국 정치사 통틀어 오직 김총필 총재가 이끌었던 자민련(자유민주연합) 만이 전국구 규모의 제3당으로 자리매김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실로 놀라운 성과라 할 수 있다.

 

2017년 3월 박근혜가 탄핵되고, 5월에 제19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다. 이때 국민의당 후보로 출마한 안철수는 21.41%를 기록하며, 3위를 차지했다. (당시 대선은 문재인이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를 꺾고 당선된다.) 대선패배의 후폭풍으로 당세가 기울자, 이를 타개하기 위해 2018년 2월에 유승민 당대표가 이끄는 바른정당과 합당해 바른미래당을 창당한다. 바른미래당 소속으로 같은 해 6월에 치러진 제7회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에 도전하지만, 박원순은 물론 김문수 전지사에게도 패배한다.

 

안철수 브랜드가 이전 같지 않음이 증명된 선거였고, 이를 계기로 안철수는 잠정은퇴를 선언한다. 대선주자를 잃은 바른미래당은 결국 친유승민계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보수당(2020년 1월)과 친안철수계를 중심으로 한 국민의당(2020년 2월)으로 분당된다. 이후 안철수는 2020년 4월에 치러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본인은 물론 지역구 후보를 아무도 내지 않았지만, 정당등표율에 따라 배정되는 비례대표를 3명이나 내면서, 콘크리트 같은 고정 지지층이 여전히 존재함을 확인한다.

 

③ 세번째 단일화 : 2021년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

박원순은 서울시장에 3연임(35대, 36대, 37대)을 해냈지만, 성추행 혐의에 휩싸이며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이 자리를 채우기 위한 2021년 4월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서 안철수가 나섰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는 박영선 전의원이, 국민의힘에서는 오세훈이 출마했다. 야당을 중심으로 후보단일화가 추진됐는데, 여론조사에서 밀린 안철수가 결국 사퇴한다. 사실상 이때부터 안철수는 철수와 단일화의 아이콘으로 회자되기 시작했다.

 

세번째 단일화 : 오세훈, 안철수

 

참고로 오세훈은 박영선을 꺾고 당선됐으며, 이후 2022년 제8회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연임에 성공한다. 결과적으로 오세훈은 서울시장에 총 4번(33대, 34대, 38대, 39대)이나 당선됐다.

 

④ 네번째 단일화 : 2022년 대통령 선거

그래도 세번째 단일화는 다가올 2022년 3월 치러질 제20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노렸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상당히 많았다. 하지만 국민의당이 워낙 열세에 처했던 상황이었기에 당선 가능성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는 상황이었다. 정권 재창출을 노린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이재명 후보가, 정권탈환을 목표로 하는 국민의힘에서는 윤석열 후보가 출마했으며, 엄청난 박빙을 이어갔다.

 

네번째 단일화 : 윤석열, 안철수

 

국민의당 소속으로 출마한 안철수는 야권 단일화 이슈에 공동정부 운영을 약속받고, 윤석열과 단일화에 합의한다. 이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인수위원장을 맡았으며, 2022년 4월에 국민의당을 국민의힘에 흡수합병시켰다. 더불어 같은 해 6월에 치러진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성남시 분당갑)에서 승리한다. 보수의 상징으로 화려하게 데뷔한 셈이다. 하지만 2023년 제3차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낙마하며 동력을 잃고 말았다.

 

2024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성남시 분당갑)에서 승리하며, 중량감 있는 4선 중진이 됐다. 높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유력 대권주자 중 하나로 여전히 손꼽히고 있으며, 최근에는 대통령실과 각을 세우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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