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대표하는 게임회사 하면, 당연히 3N(엔씨소프트, 넥슨, 넷마블)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3회사의 시가총액은 2021년 8월 26일 기준으로 각각 15조 7630억원, 1.88조엔(약 20조100억원), 10조 9591억원에 달할 정도로 그 규모가 어마어마합니다. (참고로 넥슨은 일본 주식시장에 상장되어 있습니다.)
각 회사들의 대표작들을 살펴보면, 아무리 게임에 관심이 없는 분들도 한번쯤은 들어봤을 정도로 대작들이 많습니다. 엔씨소프트는 리니지, 넥슨은 바람의나라, 메이플스토리, 던전앤파이터, 카트라이더, 넷마블은 모두의마블 등이 있습니다. 일본증시에 상장된 넥슨을 직접 투자하기 어렵고, 넷마블은 최근 투자회사로 변신하고 있는 과도기에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3N 중에 투자할 수 있으면서도, 게임에 올인하는 회사는 엔씨소프트 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문제는 엔씨소프트가 슬슬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 엔씨소프트는 리니지 원툴(one tool)의 게임회사입니다. 대표작들을 보면, 리니지, 리니지2, 리니지M, 리니지2M이며, 심지어 그나마 기대되는 작품도 하반기에 출시될 예정인 리니지W입니다. 리니지 IP 하나를 가지고 정말 사골국까지 끓일 기세입니다. 1998년에 런칭된 리니지를 즐기던 유저들이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는 30대~40대가 된 시점인 2017년에는 모바일로 즐길 수 있는 리니지M을, 2019년에는 리니지2M을 내놓으면서,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매출까지 스케일업 했습니다.
리니지M 문양 롤백사건
문제는 2021년 들어서 충성고객인 린저씨(리니지+아저씨)들이 대거 엔씨소프트를 손절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사태의 시작은 2021년 3월에 있었던 리니지M 문양 롤백사건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리니지를 하진 않지만, 투자자로서 해당 사건의 전말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엔씨소프트가 초심을 잃고 사실상 또 하나의 남양유업이 되었음에 확신을 가지게 됐습니다.
리니지는 기본적으로 PVP(player verse player) 게임이며, 사전에 합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유저의 캐릭터를 공격할 수 있는 PK(player killing) 시스템을 갖췄습니다. 유저들은 혈맹이라 불리는 길드에 모여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Lineage라는 뜻 자체가 혈통, 가문, 부족입니다.) 이 과정에서 강력한 세력을 이룬 혈맹이 몬스터를 사냥할 수 있는 사냥터를 독식(통제)하거나 아이템에 매기는 세금을 너무 과도하게 매기면서 각종 문제들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바츠해방전쟁이라 불리는 게임내 봉기가 발생했을 정도로 리니지는 높은 몰입감과 서사를 가진 게임이었습니다.
하지만 회사가 과금요소를 과도하게 투입하면서부터, 게임의 본질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는 유저들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캐릭터를 키웠냐가 중요했지만, 현재는 페이투윈(pay to win)이 보편화되면서 과금을 얼마나 많이 했느냐에 따라서 캐릭터의 능력치가 변하게 되었습니다. (즉, 노력보다는 자금력이 훨씬 더 중요한 게임이 돼버린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리니지는 원래 그런 게임이다. 그래픽 이미지에 불과한 집행검(공식명칭: 진명황의 집행검)이 2,500만원에서 3억원 사이에 거래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며 항변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맞습니다. 실제로 집행검은 강화 정도에 따라 해당 가격에 거래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엔씨소프트가 아이템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게임내 인플레이션을 귀신같이 잘 조절했다는 점도 함께 고려해야 됩니다. 즉, 유저들은 내가 이 이미지를 3억원주고 구입하더라도 나중에 제값받고 팔 자신이 있었던 것입니다.
암튼 그렇게 엄청난 과금요소에 숨막혀하던 유저들에게 리니지M 문양 롤백사건은 회사를 더이상 믿을 수 없게 만든 계기가 돼버렸습니다. (엔씨소프트에 상당한 비중으로 투자하고 계신 분들이라면 해당 사건에 대해 반드시 깊이있게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회사가 고객들인 유저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시 얘기하지만, 리니지가 없는 엔씨소프트는 사실상 껍데기나 다름없습니다.)
간단히 설명하면, 문양에는 30개의 단계가 있습니다. 문양강화를 통해 한번에 1~3단계(랜덤)씩 이동할 수 있으며, 최대 20번까지 시도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강화는 한번 할 때마다 상당히 큰 비용이 필요한데, 이렇게 강화하더라도 최악의 경우에는 20번을 시도해서 20단계까지 밖에 가지 못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이럴 경우에는 다시 처음부터 도전할 수 있는 리셋을 할 수 있는데, 비용은 33,000원이며, 이전 강화간에 사용했던 모든 재화가 소멸됩니다. 보통 30단계까지 채우는데 아주 운이 좋은 경우에는 2천만원 밖에(?) 안들지만, 많게는 5천만원 까지 들기도 합니다.
이렇게 워낙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문양이었기에 엄청나게 많은 과금을 하는 일명 고래유저들 중심으로 문양강화가 이뤄졌으며, 중소과금 유저들은 제대로 시도하지 못한체 포기하는 상황이 연출됐습니다. 회사측에서는 이런 문양을 무려 6개나 만들었습니다.
이후에 패치를 통해 문양강화 단계저장 시스템을 만들었으며, 이를 통해 유저들은 원하는 단계로 되돌아갈 수 있게 됐습니다. 중소과금 유저들은 이때다 싶어 상대적으로 훨씬 저렴한 비용을 통해 30단계에 성공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고래유저들 입장에서는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며 회사 측에 불만을 제기했고, 회사 측에서는 결국 패치시점 이전으로 모든 것을 롤백(roll back)시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실수는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회사의 진정한 병크는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문양강화를 위해 과금한 비용을 현금으로 되돌려주고, 헛고생한 유저들에게 보상을 해줬어야 맞는데, 게임내 아이템으로 해당 비용을 환급시켜버린 것입니다. 그나마 현금과 비슷한 효과가 있는 다이아는 겨우 30%, 나머지 70%는 소모성 아이템으로 줘버린 것입니다. (이 나머지 70% 소모성 아이템은 교환을 통해 문양강화에 다시 도전할 수 있으므로, 사실상 기만에 가까웠습니다.)
애초에 문양강화 단계저장 패치가 없었다면, 문양강화를 위해 비용을 사용하지 않았을 중소과금 유저들이니 당연히 화가 날 수밖에 없었고, 이는 트럭시위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이와중에 패치기간동안 무려 1억 6천만원 정도를 문양강화에 사용한 유저가 본사에 무려 5번이나 찾아갔지만, 담당자를 결국 만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이에 해당 유저는 주차장 입구를 차량으로 막아버리는 방식으로 시위를 했고, 회사측에서는 번개같이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결국 울분에 찬 유저가 자신이 겪은 모든 일들을 유튜브에 폭로했고, 엔씨소프트의 민심은 정말 심각해질 정도로 악화됐습니다.
결국 회사는 소모성 아이템으로 지급해준 70%도 다이아로 지급하는 안으로 보상책을 바꿨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또 실수를 합니다. 예를 들어 7,000 다이아를 돌려줘야 하는데, 10배인 70,000 다이아를 지급해버린 사례가 쏟아져 나온 것입니다. 이는 결국 단시간에 게임내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일으켰고, 최소한 아이템의 가치만큼은 잘 유지시켜 줄 것이라는 믿음마저 와장창 무너져버렸습니다. 사실 일련의 사태를 알아볼 때까지만 해도, 엔씨소프트가 덩치는 커졌지만, 아직 위기대응능력은 아마추어 같다고 생각했는데, 이후에 벌어지는 사건들을 보니 그마저도 안되는 것 같습니다.
이슈 1 : 엔씨소프트는 또 하나의 남양유업?!
이 부분은 사실 2가지 관점에서 같이 살펴봐야 됩니다. 엔씨소프트가 비록 고객들과의 소통은 미숙하더라도 ① 게임 하나만큼은 정말 기가 막히게 만들어내는 기술력을 갖추고 있느냐입니다. 그래서 2021년 상반기에 출시되는 트릭스터M과 블레이드앤소울2의 출시를 정말 관심있게 살펴봤는데, 솔직히 정말 많이 실망했습니다. BM(business model), 즉 과금체계가 아예 리니지랑 대놓고 똑같고, 그냥 세계관과 그래픽만 다릅니다. 그래서인지 트릭스터M의 별명은 귀여운 리니지이고, 블레이드앤소울2는 무협판 리니지 혹은 그냥 리니지3M 입니다. 혹자는 리니지를 통해 벌어들인 돈으로 기술개발이 아닌 과금개발을 했다는 강도높은 비판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사실 과금이 좀 심한 것은 요새 잘나가고 있는 카카오게임즈의 오딘도 비슷합니다. 그런데 왜 유독 엔씨소프트 얘기만 나오면 많은 유저들이 쌍심지에 눈을 켜고 비판을 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② 엔씨소프트가 유저들을 기만하기 때문입니다. 아프리카 게임 BJ나 게임 유튜버들이 자조섞인 목소리로 자신들을 개돼지로 비하하는 것이 그냥 농담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 회사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최악이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절대 이렇게 할 수 없습니다.)
불과 며칠전에 유명 게임 BJ의 개인방송에 출연한 엔씨소프트의 관계자가 블레이드앤소울2에는 '아인시스템 없습니다. 변신 없습니다. 장비뽑기 없습니다.' 등을 시전하면서, 많은 유저들을 기대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엔씨소프트는 또다시 뒤통수쳤습니다. 엄밀하게 해당 이름으로 된 시스템은 없었지만, 아인은 영기라는 이름으로, 변신은 소울이라는 이름으로 동일하거나 비슷한 기능을 포함시켜 버린 것입니다. 솔직히 할 말이 없었습니다. 회사가 며칠 뒤면 바로 들통날 거짓말을 그냥 서슴없이 하는 이유가 정말로 유저들을 아무것도 판단하지 못하는 개돼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리니지를 전혀 안하는 분들은 아인이나 변신, 장비뽑기 같은 말이 무슨 말인가 싶은데, 그냥 모두 핵과금으로 연결되는 요소라고 알아두시길 바랍니다. (너무 깊이 알 필요는 없습니다.) 이 사건 외에도 파보면, 정말 끝도 없는 사건사고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트릭스터M 런칭때 이미 변신이 없다고 했으나, 패션이라는 이름으로 동일한 과금상품을 런칭해서 욕먹었고, 심지어 경품행사때는 1등 상품이었던 노트북의 당첨자를 모두 밝힌 상황에서 사행성(?)을 조장한다는 시덥지 않은 이유로 회사가 일방적으로 취소시켜 버린 사건은 정말 경악스러울 따름입니다.
중국도 아니고, 정말 이런 일이 있었을까 싶어 저도 처음에는 설마 했는데, 정말로 모든 것이 팩트입니다. 따라서 저는 투자자로서 엔씨소프트가 사실상 게임업계의 남양유업이 돼버린 상황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니지M과 리니지2M은 여전히 매출순위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매출의 대부분을 지탱하는 고래유저들이 여전히 이런저런 이유로 리니지를 계속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중소과금 유저들이 줄어든 상황에서 고래유저들이 과금했던 이유를 생각해보면 앞날은 굉장히 암울합니다.
더 암울한 것은 엔씨소프트가 리니지 IP 이외에 성공시킨 게임이 사실상 블레이드앤소울 하나인데, 현재 후속작이 완벽하게 폭망했다는 점에서 장기적인 성장성이 의심됩니다. 현재 블레이드앤소울2를 욕하는 영상들이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고 있으며, 반대로 프로모션으로 블레이드앤소울2를 진행하는 BJ와 유튜버들의 영상에는 싫어요와 댓글테러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리니지W 출시
엔씨소프트는 성난 주주들을 달랜다는 목적으로 자사주 매입을 발표했지만, 솔직히 이제는 소액주주들도 매입한 자사주를 소각하지 않는 이상 주주가치 제고에 그 어떤 도움도 안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반대로 이렇게 매입한 자사주는 대주주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활용될 수 있습니다.) 대신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리니지W를 발빠르게 런칭한 것은 상당히 괜찮았던 판단 같습니다. 물론 반드시 역대급 흥행에 성공해야 된다는 부담감이 있긴 하지만, 현재 분위기는 꽤나 괜찮은 편입니다.
마케팅에서도 변화가 보입니다. 고객을 제대로 타겟팅할 수 없는 인터넷 플랫폼에 광고를 띄우는 대신 유명 게임 BJ와 유튜버들에게 엄청난 프로모션을 내건 상태입니다. 심지어 예전 같으면 엔씨소프트에 비판적인 톤을 유지하던 인플루언서들을 적극적으로 배제했을 텐데, 이번에는 유명하기만 하면 그야말로 바짝 엎드렸습니다. 당연히 인플루언서들도 태세전환(?)한 상태이므로, 초기 흥행은 무조건 성공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이들이 리니지W가 어떤 게임인지 알아보고 그만두는 찍먹이 아닌 제대로 과금하는 부먹을 선언했기 때문입니다. 즉, 회사는 이들을 통해 린저씨들을 집결시키겠다는 결단을 내린 것 같습니다.
기본적으로 리니지류의 게임은 과금의 부담 때문에 동시에 여러개를 할 수 없습니다. 당연히 리니지W를 시작하면, 리니지M과 리니지2M의 매출은 꼬꾸라지게 됩니다. 이런 매출잠식이 일어남에도 불구하고 리니지W가 기대되는 이유는 대만과 러시아 때문입니다. 성향상 이들 국가에서는 리니지W가 흥행할 가능성이 높으며, 실제로 흥행한다면, 주가는 다시 반등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슈 2 : 인건비 상승
2021년 연초에는 IT업계 전반적인 임금상승이 발생했습니다. 특히 게임업계의 임금상승률이 놀라울 정도입니다. 넥슨, 넷마블을 포함해 게임빌, 컴투스, 스마일게이트 등이 일괄적으로 800만원을 상승시켰고, 현재 새로운 시총 1위인 크래프톤(24조 1801억원)은 무려 2,000만원이나 상승시켰습니다. 이에 업계 1위인 엔씨소프트 역시 1,000만원을 인상했습니다.
막말로 인건비는 올리기 쉽지만, 반대로 깎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에서 재무적으로 영구적인 충격이 예상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게임업계는 단순히 일회성 비용으로 주는 인센티브가 아닌 고정비 성격의 연봉인상이라는 초강수를 사용한 것일까요?
코로나가 확산되면서 산업 전반적으로 성격이 변화되고 있으며, 쿠팡, 직방, 배달의민족과 같은 신생업체들은 물론 기존 대기업들인 네이버, 카카오, SK텔레콤 등도 관련 신규사업 진출 때문에 다수의 개발자들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이외에도 코인업체라든가 은행이나 증권사 같은 금융권 등에서도 개발자들의 수요가 엄청나기 때문에 현재는 공급이 수요를 못쫓아가고 있습니다. 반면 게임업계는 애초에 다른 산업과 비교했을 때, 늘 신규기술을 습득하고 적용시켜야 되는 부담이 있기 때문에, 압박감이 상당히 큰 것으로 보이며, 이에 많은 개발자들이 어느 정도 커리어를 쌓은 상황에서는 다른 업계로 이직하려는 모습도 보이고 있습니다.
사실 엔씨소프트는 연봉인상 발표전에 코로나 사태에 따른 격려금 200만원과 세뱃돈이라는 명목으로 100만원을 줄 때만 해도, 이런 식으로 개발자들을 보호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공격적으로 인재를 보호하기 위해 움직인다는 점은 오히려 긍정적으로 보입니다.
이슈 3 : 중국, 게임은 정신적 아편
문제는 엎친데 덮친 격으로 현재 외부환경도 만만치 않다는 점입니다. 최근 중국 관영매체가 온라인 게임은 정신적 아편이라며, 중국 빅테크의 선봉장에 서있는 텐센트를 꼭 집었어 원색적인 비난에 나섰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중국 관영매체들은 정부의 언론통제를 따르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중국정부의 의견이라고 봐도 괜찮습니다. 논평에 따르면 텐센트의 게임인 왕자영요(王者荣耀)가 청소년들에게 정서적으로 안좋은 효과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참고로 왕자영요는 중국판 리그 오브 레전드(League of Legends)로 현재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게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산업이나 스포츠도 한세대를 파괴하는 방식으로 발전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는 의견으로 논평을 마무리했으니 당시 텐센트 입장에서는 엄청난 멘붕이었을 것 같습니다. 텐센트는 논평이 발표되자마자, 즉각적으로 미성년자의 경우, 게임시간을 평일 1시간, 주말 2시간으로 더욱 타이트하게 단속하고, 12세 미만은 게임내 유료결재를 금지시키겠다는 자율규제안을 발표했습니다. 중국의 게임 셧다운과 관련된 법안을 살펴보면, 미성년자의 경우, 평일은 1시간 30분, 주말은 3시간까지 허용하므로, 텐센트의 자율규제안은 훨씬 더 강화된 조치였습니다.
아니 왜 이렇게까지 텐센트가 납작 엎드려 대응할까 싶은데, 이는 중국의 역사를 어느 정도 이해하면 단번에 이해됩니다. 애초에 중국은 아편이라는 단어 자체에 굉장한 트라우마가 있는 나라입니다. 중국인들에게 아편전쟁은 역사적으로 가장 굴욕적인 패배를 당했던 사건으로 이를 기점으로 홍콩을 영국에 잃기도 했습니다. 그런 단어를 끄집어내면서까지 비판했다는 것은 사태의 위중함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아마 텐센트는 이런 행간의 의미를 읽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니라 다를까 인민일보 역시 일부 온라인게임과 인터넷방송이 미성년자의 정신건강을 해친다는 논평을 내며, 한발 더 나아가 세수혜택을 없애자는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이를 통해 '일부를 희생할지라도, 전체를 위해 정책을 흔들림없이 이어나가겠다.'는 중국정부의 의지를 은연중에 보여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에 텐센트는 아예 12세 미만은 게임참여를 전면금지하는 안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홍콩증시에 상장된 텐센트는 지난 2021년 2월 7일 전고점인 $755 부근에서, 8월 15일에는 연저점인 $422까지 떨어졌으며, 현재는 다시 소폭 반등해서 다시 $478까지 올라온 상황입니다. 삼성전자보다 시가총액이 큰 중국 시총 1위 종목이 이렇게나 변동성이 클 수 있다는 사실에 경악스럽습니다. 이런 중국정부의 움직임은 당연히 한국 게임업체에게는 악재로 반영되었으며, 그렇잖아도 판호가 나오지 않아 중국시장에 게임을 출시하지 못하고 있던 상황에서 당분간은 아예 진출이 불가능할 것임을 시사하는 사건이므로, 단기 성장성은 둔화될거라 예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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