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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영화

영화 감기 리뷰 (+상상을 뛰어넘는 현실)

by 여의도 제갈량 2023.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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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0년에 중국발 코로나가 확산하면서, 개인적으로 전염병과 관련된 영화와 다큐멘터리들을 많이 찾아봤다. 평일에 리스트를 모아줬다가 주말마다 몰아보기를 두어달 반복했던 것 같다. 물론 이렇게 몰아봤다고 해서, 전염병에 관한 의학지식이 풍부해진 것은 아니지만, 감독들이 상상했던 팬데믹 상황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미리 체험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었다.

 

드라마틱한 극의 전개를 위해 서사를 다소 무리하게 끌고 갔던 콘테츠들이 많았는데, 의외로 당시 상황과 비교해 봤을 때 딱히 무리가 없어 보였을 정도로, 현실은 이미 영화적인 상상력을 훨씬 뛰어넘어 갔었다. 가장 현실감 넘쳤던 작품은 지난 2013년도 8월에 개봉했던 영화 '감기'(The flu)였다. 2020년 기준으로 무려 7년이나 앞선 영화였지만, 코로나 대유행이 비슷한 방식으로 확산됐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보니, 소름이 많이 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영화의 완성도는 아쉬운 편이다. 특히 주인공역을 맡은 장혁이 한 소녀를 여러 차례 위기로부터 구해내는 것이 메인 스토리인데,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보호하는지에 대한 이유가 밝혀지지 않아 몰입이 안됐다. 물론 장혁이 구조대원으로서 직업의식이 투철하고, 소녀의 엄마인 수애에게 첫눈에 반했다는 설정이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라는 의문이 절로 들었던 것 같다. (물론 긴급상황에선 아무도 구조대원인걸 모른다며, 빨리 도망치자는 수애의 말에 '내가 알잖아요. 내가..'라는 장혁의 대답은 정말 큰 울림이 있었다.)

 

응급구조요원 장혁

 

이외에 위기에 처한 사람들이 얼마나 추악해질 수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지향해야 될 정부의 모습에 관해서도 밀도 깊게 고민해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따라서 결론적으로 아직 '감기'를 보지 않았다면, 꼭 한번 시청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줄거리와 함께 영화 속 정부가 팬데믹을 맞서 어떤 식으로 대응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다.

 

감염내과의사 수애

 

영화 감기 줄거리, 솔직리뷰

컨테이너를 통해 한무리의 동남아인들이 한국으로 밀입국을 시도했다. 하필 이들 중 한명이 바이러스의 감염자였기에, 컨테이너는 바이러스의 배양실이 되어, 단 한명의 생존자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사망에 이르렀다. 유일한 생존자는 이후 서울 근교에 위치한 분당으로 가는데, 그곳에서 한 소녀의 도움을 받게 된다. 이 소녀는 감염내과 의사인 수애의 딸이다. (참고로 생존자는 바이러스를 이겨냈으므로 항체를 지니게 된다.)

 

유일한 생존자와 딸의 만남

 

장혁은 분당소방서 소속 응급구조대원으로 사고가 난 수애를 구해주는 과정에서 첫눈에 반하며, 운명처럼 그녀와 엮기게 된다. 한편 분당을 중심으로 바이러스가 확산됨에 따라 분당은 봉쇄당하며, 시민들은 수용캠프에 격리되는데, 이즈음 수애는 딸이 바이러스에 감염됐음을 눈치채게 된다. 당시 캠프에는 감염자를 제대로 치료해주지 않는다는 루머가 돌았기 때문에 수애는 딸의 감염여부를 주변에 알리지 않았으며, 장혁은 이를 도와 별도의 공간에 격리되는 위기에서 몇차례 구해준다.

 

분당봉쇄

 

컨테이너의 생존자에게 항체가 있음을 확신한 수애는 급한 마음에 임상절차도 거치지 않고, 딸에게 생존자의 혈청(血淸)을 주입시켰다. (딸이 오늘내일한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엄마로서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절절한 마음은 이해가 됐다.) 이후, 수용캠프 내에서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정부에 화가 난 시민들이 통제를 벗어나 서울로 진입을 시도한다. 마지막 희망이나 다름없던 컨테이너의 생존자는 이송 도중에 사망하지만, 혈청을 받아 항체가 생긴 수애의 딸을 통해 치료제와 백신을 개발할 수 있는 단서를 찾으며, 상황은 종결된다.

 

서울로 진입을 시도하는 시민들

 

혈장치료제에 관해 어느 정도 지식이 있다면, 영화의 전개가 쉽게 이해된다. 기본적으로 바이러스에서 회복된 환자의 혈장에는 항체가 있다. 극 중에서 수애가 딸에게 직접 혈장을 주사하는 방식을 혈장치료라고 하는데, 이 같은 치료방식은 대량생산이 어렵다는 한계가 있지만, 급할 때 분명 효과가 있는 치료법 임에 틀림없다.

 

물론 별도의 임상실험을 거치지 않았기에 쇼크사의 위험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절대 해서는 안되는 행동이다.) 참고로 혈청은 혈장에서 혈액응고물질 등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뜻하므로, 그냥 혈장으로 받아들여도 괜찮다. 반면 혈장치료제는 바이러스에서 회복된 환자의 혈장에서 면역과 지혈 등에 관여하는 단백질을 고순도로 분류해 만들기 때문에 대량생산이 가능하다.

 

온몸으로 엄마를 보호하는 딸

 

사실 영화는 정치인들이 어떤 식으로 의사결정을 하는지, 그리고 위기상황에 닥쳤을 때 나타나는 다양한 리더십을 보여주는데 집중하고 있다. 따라서 팬데믹 상황에서 영화 속의 정부가 어떤 식으로 대처하는지 알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영화 감기 속 정부의 팬데믹 대응방법

① 1단계 : 대책회의

정말 한심한 모습을 보여준다. 지방정부의 각 주체들이 중구난방 각자의 입장만을 되풀이한다. 팬데믹의 각종 전조가 속속 나타나는 상황에서 대책회의를 통해 내놓은 결론은 놀랍게도 추가적인 확대회의였다. 초기대응에 완전히 실패했고, 재난상황에서 어떠한 대응 매뉴얼이 없음을 확인할 수 있다.

 

총리 vs 대통령

 

② 2단계 : 도시봉쇄 및 시설격리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은 정부는 국가재난대책본부를 설치해 감염확산을 관리하기 시작한다. 총리는 위기상황에서 국민들이 절대 침착하지 못할 것이라 간주하고, 격리를 선조치한 뒤 나중에 발표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솔직히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봉쇄한다는 발표를 먼저 하면 확산이 전국으로 확대될 수 있는 우려가 있는 반면, 봉쇄를 사전에 공지 없이 진행하면 국민의 기본권이 무시되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PCR 검사를 받는 장혁

 

군대가 투입되어 분당지역 봉쇄에 들어갔고, 사람들을 격리장소에 집결시켰다. 이 과정에서 감염자와 감염의심환자들을 동시에 수용하는 무리수를 둔다. 이렇게 되면 격리장소가 또 하나의 컨테이너가 되어, 바이러스를 집중적으로 배양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입소하는 과정에서 PCR 검사를 통해 감염자를 분류하는 과정을 거치긴 했지만, 결과를 즉각적으로 확인할 수 없기에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감염자와 비감염자가 한데 뒤엉키는 상황이 발생했다.

 

③ 3단계 : 치료제와 백신개발

감염자들을 격리시설로 모으는 한편, 컨테이너의 생존자가 보유하고 있는 항체를 이용해 각종 치료제와 백신개발에 착수했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변종 H5N1 바이러스는 조류독감으로 잘 알려진 조류 인플루엔자(Avian Influenza)의 변이 바이러스로 추정된다.

 

코로나 이전에도 팬데믹급 공포를 확산시킨 바이러스로는 2009년 신종플루(=돼지독감)와 2014년 조류 인플루엔자(=조류독감)가 있었다. 그나마 신종플루와 조류 인플루엔자는 타미플루(Tamiflu)라는 걸출한 치료제가 있었기에 빠르게 종식시킬 수 있었다. (참고로 돼지독감과 조류독감은 서로 비슷한 A형 인플루엔자의 아형이다. 아형은 바이러스의 주요 구성요소인 H와 N의 조합방식에 따라 나뉘는 구체적인 타입을 뜻한다.) 그래서 영화에서 수애가 요새 인플루엔자가 유행하니, 타미플루도 투약해 보라는 대사를 한 것이다.

 

사실 조류독감은 2014년이 돼서야 한국에서 유행했지만, 중국과 베트남 등지에서는 2003년부터 꾸준히 발발했다. 따라서 감독은 이를 모티브로 영화를 제작한 것 같다. 조류 인플루엔자가 사람에게도 감염을 일으킬 수 있는지 궁금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조류독감은 대인접촉으로 인한 감염이 불가능하지만, 변이가 일어난 바이러스는 그 가능성이 열려 있으며, 실제 사례도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④ 4단계 : 감염자 속출과 통제이탈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격리장소에서의 각종 문제가 인터넷을 통해 외부로 전파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해당 지역의 인터넷 기지국마저 폐쇄시키는 초강수를 둔다. 이에 언론에서는 시설격리된 분당시민의 인권에 관해 우려를 표명했지만, 정부는 위기상황임을 강조하며, PCR 검사 이후 음성으로 판정된 사람들은 48시간 이후에 귀가조치시키겠다는 약속을 했다.

 

상상을 뛰어넘는 정부의 대처

 

문제는 이러한 약속이 전혀 지켜지지 않았을뿐더러 양성으로 나온 사람들을 치료하겠다며 별도의 격리공간으로 보냈는데, 이후 어떠한 피드백도 주지 않아 사람들의 불안감이 더욱 커져갔다. 결국 사소한 사건들로 인해 별다른 치료법이 없을 뿐만 아니라 죽은 감염자들을 소각시키고 있음을 알게 된 사람들이 결국 통제에서 벗어나 서울로 향한다. 정부가 국민들에게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고,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⑤ 5단계 : 폭격시도와 수습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나라를 위한 결정을 내리겠다는 총리는 분당지역을 폭격하겠다는 미국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차인표가 연기한 대통령이 수도방위사령부를 통해 이를 저지한다. (실제로 대한민국 국군을 통솔하는 작전통제권은 평시와 전시로 나뉘어 관리된다. 평시에는 한국의 합참의장이 이를 가지지만, 전쟁과 같은 데프콘 3가 발령 나면 작전통제권이 주한미군 사령관에게 넘어간다. 하지만 수방사만큼은 작전권 이양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사실과 상상을 넘나들던 영화에서 이 부분만큼은 현실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영화에서 가장 감동적이었던 장면은 정부가 위기에 처한 시민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Those people, they are my people.'이라며, 적극적으로 자신이 모든 것을 책임지겠다는 차인표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원하는 대통령이 바로 이런 책임감 있는 대통령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킬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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