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는 언제나 기회를 동반한다. 지난 2020년에 예상치 못했던 중국발 코로나로 인해 주가가 폭락하는 재앙과 기회가 동시에 찾아왔지만, 준비하지 못했던 사람들은 좋은 기회들을 모두 놓치고 자산증식에 실패했다. 이에 역사적으로 중요했던 이벤트들은 미리 공부해 두면, 언젠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중에서도 제일 중요했던 이벤트는 바로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가 아닐까 싶다.
아시아의 네마리 용(싱가폴, 대만, 홍콩)으로 성장을 거듭하던 한국은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와 함께 1996년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에 가입해 명실상부한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섰다. 당시만 해도 기업들이 성장에 대해 얼마나 낙관적이었는지, 대학교 졸업생들이 입사원서를 제출하기만 해도 채용했으며, 심지어 다른 회사 면접에 참석하지 못하도록 돈을 쥐어 가며 합숙연수를 진행하기도 했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은 크게 3가지 이야기가 펼쳐진다. ① 한국은행의 통화정책팀 팀장을 맡은 김혜수 배우를 통해 1997년 당시 한국정부가 국제통화기금 IMF(International Monetary Fund)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배경을 자연스레 쫓아간다. 이 과정에서 어려운 금융용어가 난무해 영화가 자칫 딱딱해질 수 있었지만, ② 그릇업체를 운영하는 중소기업의 사장을 연기한 허준호 배우를 통해, 해당 이슈가 현실에 어떤 식으로 적용되는지 보여준다. ③ 유아인 배우는 영화 '빅쇼트'에 나왔던 마이클 버리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1997년 외환위기가 발생한 이유
한국의 지난 1997년 외환위기에 관해서는 다양한 음모론들이 있는데, 영화 '국가부도의 날'에 언급된 내용들 중에서 최대한 팩트 위주로 살펴보겠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1990년대의 한국은 성장을 거듭하고 있었다. 지금 보면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의 수치인데, 당시에는 연간 경제성장률이 무려 9.6%(1995년), 7.9%(1996년)까지 달성하기도 했다. 이에 자신감을 얻은 기업들의 공격적인 경영과 선을 넘어선 문어발식 확장이 발생하기도 했다.
기업들이 수익성 없는 사업일지라도 무리하게 추진했던 이유는 너무 손쉽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은행은 대출을 심사할 때 별도의 사업성 검토를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대기업이라면 심사 없이 대출해주기도 했다. 당시의 기업은 정말 탐욕스러웠다. 거대한 자금이 필요한 경우에는 정치권을 로비해 은행에 압력을 넣었을 정도였다. 이를 감독해야 될 감독원 역시 이때는 선후배들로 이뤄진 좁은 금융권 내에서 소신 있게 일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즉, 기업, 은행, 정치권, 감독원이 동시에 도덕적 해이(moral hazard)에 빠졌던 것이다. 이런 일련의 병크들이 모여 시중 은행에는 단기부채가 급증했다. 문제는 은행의 막무가내식 대출로 인해 돈이 말랐을 뿐만 아니라, 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했던 기업들이 만기가 왔을 때 이자는커녕, 원금도 갚지 못해 부도를 선언하는 경우가 늘어갔다는 것이다. 그 전조를 보였던 사태가 바로 한보철강과 기아차의 부도였다. 이들의 부도는 결국 재계 서열 14위와 8위를 차지하고 있던 한보그룹과 기아그룹을 무너뜨렸다.
이 과정을 지켜보던 해외투자자들은 정부의 위기대처능력에 의구심을 표하며, 빌려줬던 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당시 정부는 세계 여러 나라들로부터 차관(借款)을 많이 빌렸다. 기존에는 한국경제의 성장에 확신한 외국인 투자자들이 만기연장을 계속 허락했지만, 1997년부터는 만기연장을 거부하는 사례가 늘어갔다. 특히 1997년 연말에 들어서는 동시다발적으로 상환을 요청함에 따라 달러의 반출이 가속화됐다. 당연히 한국증시에 투자됐던 주식들도 대거 매도해 현금을 달러로 바꿔 반출했다.
S&P와 무디스는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B- 등급까지 떨어뜨렸는데, 이는 쓰레기나 다름없는 정크본드(junk bond) 바로 윗단계 수준이었다. 신용등급이 떨어지니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환율이었는데, 가파르게 올라 사상 처음으로 2,000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국가의 신용등급이 환율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당시에 환율이 급격하게 올랐던 이유는 원화의 가치가 급락했기 때문이다. IMF 금융구제 직전까지만 해도 800원으로 $1을 구할 수 있었지만, 원화가치가 하락하면서 2,000원을 줘야 $1을 구할 수 있게 됐다.
이렇게 떨어지는 원화가치를 방어하기 위해 정부는 외환보유고에 있던 달러를 추가적으로 투입했는데, 이는 결국 달러의 유출로 이어져 악순환이 반복됐다. 가장 큰 문제는 이렇게 외환보유고가 계속 고갈돼서 일정금액 이하가 될 경우, 정부가 수출과 수입과정에서 그 어떤 것도 보증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는 것이다. 이 상태가 바로 국가부도, 디폴트(default)다.
이런 외환위기에 대한 징후를 발견한 정부는 어떻게 대응해야 될까? 이를 국민들에게 솔직하게 알림과 동시에 고심해 준비한 대책을 함께 내놓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 국민들이 정부를 믿고, 함께 내놓은 대책에 맞춰 각종 기업활동에 적용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기업의 오너라면, 당장의 매출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추후에 부도날 수 있는 어음을 받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당시의 정부관료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위기임을 숨겼고, 이 때문에 불필요한 피해가 많이 발생하고 말았다.
결국 정부는 IMF에 돈을 빌려오기로 결정했다. IMF는 단순히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은행이 아니다. 돈을 빌려주는 대가로 무리한 조건을 내걸기도 하는데, 경제주권의 상당 부분을 빼앗기도 한다. 돈을 빌려오는 과정마저 쉽지 않았다. 1997년은 김영삼 정권의 마지막 해였으며, 12월에 대통령 선거를 앞둔 상황이었기 때문에, IMF 측에서는 당시 지지율 상위 3등까지의 대선후보 각서를 받아오는 것이 구제금융의 선결조건으로 포함하기도 했다. 이후 6가지 조건이 제시됐는데, 해당 조건은 아래와 같다.
ⓐ 금리인상 (12.5%→30%)
ⓑ 외국인에게 자본시장 개방 (7%→50%)
ⓒ 외환보유고와 금융기관에 대한 정보공개와 심사
ⓓ 금융기관 구조조정
ⓔ 기업경영 및 지배구조개선
ⓕ 노동시장 유연화
ⓐ 금리를 단번에 2배 이상 인상하면, 엄청나게 많은 기업들이 도산할 것이며, ⓑ 이들 기업들을 외국인들이 쉽게 줍줍할 수 있게 된다. ⓒ 원하는 기업을 고르는 과정에서 필요한 정보를 제공받으며, ⓓ 인수합병 간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금융기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 추후에 자신들이 투자한 자금을 쉽게 엑시트 할 수 있도록 지배구조와 관련된 법률 역시 손봤으며, ⓕ 비용을 단번에 절감할 수 있는 인건비를 합법적으로 줄일 수 있도록 대량해고와 쉬운 해고가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역사에서 가정은 무의미하다고 하지만, 사실 당시에 반드시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해야만 했는지에 관해서는 여전히 많은 이견들이 존재한다. 극단적으로는 채무상환을 일시적으로 연기하는 모라토리움(moratorium)을 선언하고, 국가부도를 내는 방법으로 다른 나라들과 협상해 추가적인 차관을 확보하는 방법도 검토됐다고 한다. (솔직히 돈을 빌려준 채권자 입장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영영 돈을 돌려받을 수 없다는 공포이기 때문에 궁지에 몰린 채무자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기도 하다.)
한국은 IMF을 통해 $550억의 지원금을 받아 외환위기를 극복했다. 특히, 지난 2021년 8월에는 지난 IMF체제 하에서 발행했던 채권들을 모두 갚아 마무리했는데, 많은 나라들이 IMF의 지원을 받아도 쉽사리 위기를 극복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뜻깊다고 할 수 있다. (당초 2027년 8월까지 갚을 것을 계획했지만, 무 6년이나 앞당겨 빚을 청산한 것이다.) 이런 해피엔딩의 결말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는 내내 먹먹한 감정이 들었다. 아마도 영화가 현실의 아픔을 극적으로 잘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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