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라면 1997년 IMF사태와 2008년 금융위기를 반드시 공부해야 되며, 이중에 금융위기에 해당하는 서브프라임 모기지(subprime mortgage) 사태는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전 세계 경제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만큼, 어렵더라도 최대한 이해해야 된다.
결론부터 얘기해서 영화 '빅쇼트'는 절대 재밌거나 친절한 영화가 아니다. 솔직히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시청한다면, 그 어떤 것도 배우지 못한 채 그냥 주인공들의 감정선만 쫓아가다 허무하게 끝날 수 있다. 물론 관객들을 배려해 마고 로비(Margot Robbie), 셀레나 고메즈(Selena Gomez) 같은 셀럽들이 최대한 쉽게 개념을 설명하지만, 절대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금융사건을 몰입감 있게 빠져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영화 '빅쇼트'는 그 나름의 가치가 있다.
아래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솔직히 경영학을 전공한 사람들도 무슨 말인지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따라서 영화를 시청하기 전에 해당 포스팅을 미리 보는 것을 추천하며, 이미 봤다면 포스팅을 읽어본 뒤에 다시 한번 시청하는 것을 추천한다. 완전히 새롭게 느껴질 거라 확신한다. 영화는 크게 3명의 시점에서 진행된다. 첫번째는 헤지펀드 '사이언 캐피탈' 설립자, 마이클 버리(Michael Burry)다. 마이클 버리는 실존인물이며, 본래 신경외과의사 출신이라 영화에서는 닥터라 불린다.
두번째는 마찬가지로 헤지펀드 '프런트 포인트'의 설립자, 마크 바움(Mark Baum)이다. 가공의 인물이지만, 실존인물인 스티브 아이스먼(Steve Eisman)을 모태로 창작된 인물로 알려졌다. 마지막은 월가의 젊은 투자자들인 찰리 겔러(Charlie Geller)와 제이미 시플리(Jamie Shipley)다. 이들은 함께 헤지펀드 '브라운 필드'를 공동 설립한다.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 총정리
집값이 10억인 아파트를 구매하고 싶은데, 지금 수중에 1억밖에 없다고 가정해 보자. 대개는 모자란 9억을 준비하기 위해 은행에 대출을 요청한다. 그럼 은행은 대출을 요청한 사람의 신용과 직업 등을 확인해 채무를 이행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적당한 이자율과 상환기간을 책정해 대출금을 지급한다. 만약, 채무자가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할 경우에는 채권자인 은행이 해당 아파트를 압류하는데, 집을 담보로 대출을 일으켰다 해서, 주택담보대출(mortgage loan)이라 부른다.
애초에 미국은 집값이 너무 비싼지라, 대부분 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을 일으켜 집을 구매한다. 이후 채무자가 약정된 이자와 원금을 상환기간 동안 갚으면 모두에게 해피엔딩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사실 무슨 문제가 있을까 싶은데, 이제부터 은행의 탐욕이 들어가기 시작한다. 사실 은행 입장에서는 채무자가 원금과 이자를 상환하면 이자수익이 발생되고, 상환하지 못하더라도 아파트를 압류할 수 있기 때문에 안전한 거래를 한 셈이다. 심지어 아파트값이 상승하는 시기에는 내심 채무자가 돈을 갚지 못하는 것을 바라기도 한다.
그래서 은행은 신용평가 절차를 간소화해 매우 공격적으로 주택담보대출을 남발했다. 2008년 금융위기가 발생하기 직전 미국의 상황을 살펴보면, 노숙자나 업소에서 종사하는 사람들도 손쉽게 대출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강아지 이름으로도 대출에 성공했을 정도였다. 참고로 미국에서는 신용등급이 좋은 사람에게는 프라임(prime) 등급을, 신용이 안좋은 사람들에게는 서브프라임(subprime) 등급을 매긴다.
이렇게 계속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다 보니, 빌려줄 수 있는 돈이 부족하게 됐다. 그래서 채무자와 주택담보대출계약을 맺었던 계약서를 팔아 자금을 추가적으로 확보했다. 계약서가 9억원을 보증한다면, 대략 9억원의 가치가 있다고 본 것이다. 이 계약서들을 매입한 중개회사는 자금을 유동화시킬 수 있는 채권으로 변신시키는데, 이게 바로 주택저당증권, MBS(Mortgage Backed Securities)다. 은행 입장에서는 계약서를 사줄 수 있는 중개회사만 있다면, 무한정으로 자금을 확보할 수 있었기에, 더욱 공격적으로 대출을 남발할 수 있었다.
MBS를 통해서 더 많은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었지만, 은행들의 욕심은 끝이 없었다. 기존 MBS 채권은 프라임 등급의 계약서만을 가지고 만들었기 때문에, 여전히 남아있는 서브프라임의 계약서들을 어떻게 활용할까 고민하던 찰나에 투자은행(증권회사)이 기발한 제안을 하는데, 그게 바로 부채담보부채권, CDO(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였다. 투자은행은 기존 중개회사가 발행했던 MBS들을 다수 확보해 프라임 등급의 계약서와 서브프라임 등급의 계약서를 섞어 CDO를 발행했다.
CDO 채권은 절대 신용등급이 높을 수 없었다. 근본이 되는 주택담보대출 계약서들 중에는 프라임 등급의 우량 채무자도 있지만, 채무불이행의 가능성이 매우 높은 서브프라임 등급의 채무자도 다수 섞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금융시장에서 AAA등급으로 판매됐다. 영화에서는 이를 식당에서 3일 동안 팔지 못한 생선들을 모아 만든 해물스튜에 비유했다. 인기가 없어 팔지 못한 생선들이지만, 이들을 모아 새로운 음식(CDO)을 만들면 제값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CDO는 안정적인 고수익 채권으로 홍보되며, 시장에서 히트했다.
이쯤 되면 논리적인 사람들은 손쉽게 상상이 될 것이다. 누구나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되면, 단기적으로는 아파트의 공급이 부족하므로 가격이 급등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결국 1인 1주택에 도달하므로 집값은 결국 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은행과 MBS를 발행한 중개회사들 역시 바보가 아니다. 수요공급의 원리를 통해 추후 아파트 가격이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빌려준 원금을 회수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예측이 내부적으로 속속 나왔다.
이런 찝찝한 우려가 커질 무렵, 투자은행들은 CDO의 공매도 격이라 할 수 있는 신용부도스와프, CDS(Credit Default Swap)를 출시했다. CDS는 만약 채무자가 주택담보대출금을 못갚게 되면, 대신 CDS를 발행한 투자은행이 채무를 갚아줄 테니, 일정 금액의 보험료(premium)를 내는 상품이다. 이렇게 되면, 중개회사의 입장에서는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는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을 뿐만 아니라 압류한 아파트를 경매를 통해 처분하는 업무마저 생략할 수 있어, 적은 비용(보험료)으로 고정비를 줄일 수 있게 된다.
주택시장이 붕괴할 것에 확신을 갖은 마이클 버리는 투자은행을 찾아가 CDS에 투자했으며, 엄청난 투자수익을 기록해 지금의 명성을 얻었다. 사실 우리는 이미 결론을 알고 있기 때문에, 마이클 버리가 굉장히 손쉽게 수익을 얻었다고 착각할 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녹지 않았다. CDS에 투자한 시점부터 폭락이 발생하기 전까지 엄청한 수수료(=보험료)를 지불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마크 바움은 영화에서 시종일관 굉장히 시니컬하지만 도덕적인 투자자로 그려지는데, 워낙 비통해하는 모습이 많이 나와 마치 투자에 실패한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던데, 마이클 버리와 마찬가지로 CDS를 엄청나게 보유하고 있었기에 역시나 천문학적인 수익을 거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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