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을 깊이 있게 공부한다는 게 사실 말처럼 쉽진 않다. 평소 경제, 경영에 관심 없었던 사람들 입장에서는 살펴봐야 될 범위가 굉장히 넓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에게는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한 방법으로 주식을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 예능을 먼저 보라고 얘기한다. 어려운 금융개념도 말랑말랑한 스토리와 함께 버물어지면, 아무래도 조금은 손쉽게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금융과 관련된 영화나 드라마는 뒤늦게라도 꼭 챙겨보는 편이다. 지난 2018년에 개봉했던 영화 '돈'은 솔직히 기대에 비해 실망했던 영화들 중에 하나다. 금융과 관계된 영화라고 하기엔, 주요 사건들에 대한 설명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스토리의 개연성마저 떨어져 등장인물들이 이유 없이 급발진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결론적으로 매력적인 소재와 배우들의 열연에 비해 시나리오가 엉망이라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노래로 치면 편곡을 다시 해야 되는 상황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증권회사에 취직을 희망하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볼만한 영화임에 틀림없다. 주식브로커의 일상을 생동감 있게 잘 표현했기 때문이다. 실제 이번 영화를 준비한 박누리 감독은 1년간에 걸쳐 여의도로 직접 출퇴근하며 시나리오를 집필했다. 공들인 만큼 리얼리티만큼은 잘 살린 것 같다. 물론 영화적 과장이 분명 있겠지만, 주식브로커 입장에서는 갑이라 할 수 있는 펀드매니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노력하는 모습이 정말 그럴듯했다.
영화 돈, 줄거리와 결말
업계 1위 증권사에 입사한 주식브로커 조일현(류준열)은 나름 열심히 일하지만, 낮은 성과 때문에 회사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증권맨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이에 같은 팀의 선배가 속칭, 번호표(유지태)라 불리는 작전설계자를 소개해줬고, 이를 계기로 조일현은 승승장구하게 된다. 단, 번호표가 조일현에게 제안하는 방법들 모두가 어느 정도 불법적인 요소가 섞여있기 때문에 이를 계기로 금융감독원의 추적을 받게 된다. (참고로 많은 주식브로커들이 줄서서 기다린다는 의미로 번호표라 불린다.)
금융감독원 소속의 한지철(조우진)은 번호표 일당을 잡으려 하지만, 매번 번호표가 꼬리를 자르는 바람에 계속 헛물을 켜고 있다. 조일현은 추후에 문제가 될 것 같은 사람들을 잔인하게 제거하는 번호표의 냉혹함에 불안해하면서도 엄청난 보상금과 높아지는 회사 내의 평판 때문에 계속 협력한다. 하지만 입사동기의 아버지가 경영하던 회사를 공매도로 공격해 폐업시키자는 번호표의 마지막 작전에는 반대하며, 그동안의 모든 정보들을 검찰에게 넘겨준다. 그렇게 번호표는 검거되며, 영화는 끝이 난다.
① 배우들의 열연
이야기의 개연성이 떨어져서 그렇지, 배우들의 열연은 볼만하다. 특히 조일현 역을 맡은 류준열 배우가 정말 돋보였다. 찌질할 때는 확실하게 찌질하고, 비열할 때는 정말 비열한 모습을 보여주며, 정말 천상 연기자라는 생각을 했다. 번호표 역을 맡은 유지태 역시 무게감 있는 모습으로 끝판왕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줬고, 선한 인상이 묘하게 대비되며 정말 나쁜 사람처럼 느껴졌다.
이외에도 자주 보던 조연들이 모두 제 몫을 잘해주며, 전반적인 연기 자체는 거부감이 없었다. 영화 '돈'은 주식브로커의 일상을 계속 보여주며 리얼리티를 강조했는데, 조연들이 마치 드라마 '미생'처럼 각자 맡은 회사원 역할을 잘해줬다. 다시 말하지만, 영화 '돈'의 문제는 배우가 아닌 시나리오다.
② 현실에서도 일어날 법한 주식작전의 사례
극 중에서 번호표는 주인공 조일현에게 총 3번의 작전을 제안한다. 3번 모두 논리적으로 발생이 가능하긴 하지만, 실제로는 범죄에 해당된다. ㉮ 번호표가 다른 증권사에서 스프레드(spread) 거래를 담당하는 직원을 섭외해 고의로 대량 매도하는 실수를 사주한다. 조일현은 이 물량을 대거 매입한 뒤, 해당 증권사에게 고가로 재매수하게 만들었다. 실수를 저지른 직원은 번호표에게 거액을 보상으로 받은 뒤 해외로 도주했으며, 해당 증권사는 결국 파산한다.
㉯ 5명의 증권사 직원들을 섭외해 거액의 프로그램 매매를 하는 것이 작전인데, 세부적인 내용이 전혀 설명되지 않아 어떤 내용인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 시크널테크라는 회사에 미리 대량의 공매도를 친 뒤, 공장에 화재를 일으켜 주가를 인위적으로 떨어뜨리는 것이다. 솔직히 첫번째 작전은 너무 극단적이라 실현가능성이 낮아 보이지만, 세번째 작전은 정말 현실에서도 일어날 법해 소름이 돋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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