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올빼미' 이후 한국영화가 침체기에 돌입했다고 주장하기에, 그럼 '올빼미'는 괜찮겠다 싶어서 찾아봤다. 결론부터 말해, 확실히 고민을 많이 한 작품이 맞는 것 같다. 역사덕후들이 덕질하기에 괜찮으면서도, 대중들이 좋아할 만한 상업적인 요소들도 갖추고 있다. 간만에 웰메이드 영화를 보니 감회가 남다르다. 최근에 어쩌다 보니, 억지로 끝까지 봤던 작품들이 많았는데, 영화 '올빼미'는 처음부터 끝까지 초집중한 상태에서 시청했다.
일단 스토리가 기가 막히다. 조선의 제16대 임금인 인조는 자신의 아들 소현세자를 독살해 죽였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데, 이 독살설을 영화의 모티브로 가져온 만큼 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 입장에서는 흥미진진할 수밖에 없다. 거기에 누구 하나 구멍 없는 배우들의 라인업 역시 좋았다. 특히 웃음기를 싹뺀 유해진 배우의 연기는 보는 내내 섬뜩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영화 올빼미 출연진, 스토리, 결말
① 천경수, 만식
천경수(류준열)는 앞을 못보는 맹인 침술사다. 엄밀히 말해, 그는 일반적인 맹인들과 달리 밤에는 주변이 어느 정도 보이는 주맹증(↔야맹증)을 앓고 있다. 즉, 낮에는 다른 맹인들과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못보지만, 밤에는 시력이 조금 회복된다. 모두가 그를 맹인이라 방심하는 상황과 약간의 시력이 조합되니 엄청난 의외성이 생겼다. 어의인 이형익이 천경수를 궁궐의 내의원에 채용했다. 진료 상대가 여성일 경우, 앞을 볼 수 있는 이형익이 맨몸에 침을 놓을 수 없으므로 맹인인 천경수가 이를 대신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훗날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형익은 소현세자를 독살할 때 이를 눈치채지 못하게 하기 위해 맹인을 채용했다고 한다. 물론 천경수의 실력 자체가 워낙 찐이다 보니, 뭔가 계획된 채용처럼 보이진 않았다. 소현세자가 자신이 앞을 볼 수 있음을 알아차렸음에도, 이를 문제 삼지 않고 오히려 확대경까지 선물해 주었기에, 진심으로 감사함을 느낀다. 자신과 똑같이 평생 동안 부모님을 만나지 못했던 원손에 대한 측은지심 때문에 이형익의 범죄를 폭로하지만, 그 배후에는 놀랍게도 인조가 있었다.
만식(박명훈)은 천경수의 유일한 동료라 할 수 있다. 천경수가 처음 내의원에 들어왔을 때 그를 따뜻하게 맞이해 준 사람은 만식이 유일했다. 허당미가 넘치는 개그 캐릭터라 극 중 긴장감을 완화시켜 준다.
② 인조, 소용 조씨, 이형익
비정한 아버지 인조(유해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청나라가 일으킨 병자호란과 삼전도의 굴욕을 알아야 된다. 청과의 전쟁에 패배해 27번이나 머리를 땅에 찧어 사죄해야만 했던 인조의 입장에선 걸핏하면 청의 입장을 대변하는 소현세자가 탐탁지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전쟁의 패배로 인해 소현세자를 어쩔 수 없이 청나라에 인질로 보내야 했는데, 당시에는 비극으로 평가받았지만, 8년이나 지나고 나니,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존재가 당시의 굴욕을 기억나게 하는 매개체가 돼버렸다.
소현세자가 청의 지원을 받아 언제든 자신을 밀어내고, 임금으로 등극할지 모른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다. 분명 주변(소용 조씨)에서도 열심히 부채질했을 테니, 어쩌면 단순한 가능성이 아닌 확신으로 느껴졌을지 모른다. 그래서 소현세자를 죽이지만, 이제는 청과 화친을 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영의정 최대감이 난리다. 결국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임금의 자리를 겨우 보전한다. 4년 뒤 천경수를 만나는데, 소현세자와 동일한 병명인 학질로 사망한다. (이는 천경수가 인조를 독살했음을 암시한다.)
소용 조씨(안은진)는 소현세자가 청나라로 떠난 사이 인조의 후궁이 되어 왕자를 낳는다. 당연히 조선으로 돌아온 소현세자가 눈엣가시처럼 느껴졌을 것이며, 공범이 되어 그를 죽이는 범행에 가담한다.
임금을 돌보는 의사인 어의 이형익(최무성)은 청나라에서 인질로 잡혀있는 동안 건강이 악화된 소현세자도 함께 돌본다. 인조의 명에 따라 소현세자에게 직접 독침을 꽂아 살해한 뒤, 학질로 죽었다고 둘러댄다. 하지만 소현세자가 칠공분혈(七孔噴血)하며 즉사한 현장에 있었던 천경수는 이형익이 실수로 남긴 독침을 확보해 이를 인조에게 보고한다. 추후 독침을 두고 천경수와 몸싸움하던 와중에 독침에 눈 찔려 사망한다.
③ 소현세자, 강빈, 원손
소현세자(김성철)는 인조에게 악감정을 가지고 있던 청의 황제에게 간곡한 부탁을 거듭해 아버지를 지켰다. 서양의 문물을 받아드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는 청의 신문물을 가지고, 병약해진 몸을 추스르러 조선에 돌아왔지만, 싸늘해진 아버지의 모습에 당황한다. 결국 인조는 소현세자를 못마땅해하며, 결국 죽이고 만다.
강빈(조윤서)은 소현세자의 아내로 함께 청나라에서 고생하다 돌아왔다. 자신의 아들인 원손과는 무려 8년 만에 재회하며, 이제는 행복해질 일만 남았나 싶었지만, 남편이 학질로 죽고 만다. 소현세자와의 의리를 지키러 자신이 목격한 것을 알리러 온 천경수를 믿고 인조에게 보고하지만, 도리어 임금을 독살하려 했다는 누명을 뒤집어쓰고 감옥에 갇히게 된다. 결국 사약을 먹고 죽었다.
원손(이주원)은 병자호란이라는 비극이 낳은 아이다. 8년 만에 다시 만난 아버지는 학질로 죽고, 어머니는 옥에 갇혀 죽으면서, 결국 오줌을 지려버리고 만다. (그렇다. 원손은 10살이지만, 아직 대소변을 잘 가리지 못한다.) 아버지 소현세자를 독살하라고 지시한 서찰의 글씨체를 보고, 인조가 왼손으로 썼다는 걸 간파하지만, 이미 대세가 기울었는지 최대감은 인조의 손을 들어주고 만다. 원손은 제주도로 귀향을 떠나 유배지에서 죽는다.
④ 최대감
최대감(조성하)의 모티브는 최명길로 보인다. 그는 철저한 실리주의자로서 광해군을 몰아내고, 인조를 임금으로 세운 인조반정을 일으켰다. (즉, 인조 본인도 반역을 통해 임금이 됐기 때문에 아들인 소현세자 역시 여차하면 반역을 일으킬 수 있다는 두려움에 휩싸였던 것이다.) 최명길은 당시 조선이 섬기던 명이 망해가고,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통해 청에게 패배하자 화친을 적극적으로 주장한 주화파(主和派)의 거두였다.
그렇기에 청의 신문물을 받아드려 조선을 어떻게든 발전시켜야 된다는 소현세자를 굉장히 좋게 봤던 것 같다. 인조는 자신이 소현세자의 죽음과 관계있다는 사실을 최대감이 눈치채자, 소용 조씨를 통해 낳은 아들은 후계자에서 제외시키고, 최대감이 지명한 사람에게 대를 잇겠다고 약속하며 자리를 보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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