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폭영화는 범죄영화의 하위장르로서,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인기가 정말 많았던 장르다. 낭만주먹을 소재로 다룬 만큼 충성과 의리를 중요시하지만, 뒤통수치는 빌런 같은 내부의 조직원이 반드시 등장한다. 클리셰부터 세계관까지 너무 비슷하다 못해 똑같아서 이제는 관객들이 지루함을 느끼는 대표적인 장르다. 물론 시대상이 많이 변한 것도 한몫했다. 낭만주먹에 관한 이야기가 마치 동화 속에서나 존재할 법하게 사회가 비정해지고 냉정해진 탓도 크다.
영화 뜨거운 피 솔직후기
물론 같은 소재와 장르일지라도 ① 뭔가 새로운 변주가 있거나 ② 장르를 그야말로 완벽하게 구현한다면, 관객들이 새롭게 즐길 수 있는 포인트를 찾는다. 결과부터 얘기하면, 영화 '뜨거운 피'는 뭔가 좀 아쉽다. 이전에 소개한 영화 '강릉'보다는 현실감 있게 접근하긴 했지만, 따지고 보면 어디선가 봤었던 느낌을 지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원작소설이 따로 존재하는 탓에 스토리 자체만 보면 튼튼한 편이다. 하지만 600여 쪽에 달하는 소설을 겨우 2시간 분량으로 각색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굉장히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다수 등장하지만, 이를 제대로 살려내지 못했다. 예를 들어 꺼림칙한 대사를 반복해 뭔가 한방을 선사할 것 같았던 캐릭터인 홍사채(윤제문)는 아무것도 안하고 허무하게 끝난다. 주인공을 자신과 함께 동업하기 위해 온갖 말로 구슬리는 양동(김해곤)도 별다른 임팩트를 보여주진 못했다. 아무리 감독이 연출을 잘하고, 후반작업에 엄청난 공을 들일지라도 러닝타임이라는 한계는 뚜렷하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차라리 같은 이야기를 드라마로 제작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그런 아쉬운 마음은 5월 26일에 개봉하는 '뜨거운 피, 디 오리지널'을 통해,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 미공개됐던 22분 분량이 추가된 확장편인 만큼,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좀 더 적극적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쉽게도 현재까지는 넷플릭스에서 시청이 불가능하다.
영화 뜨거운 피 평점
2019년에 촬영이 종료된 영화 '뜨거운 피'는 이런저런 이유로 극장에서의 상영이 오랫동안 딜레이 됐다. 아마도 코로나 때문에 상영을 연기한 탓에 크겠지만, 이런 식으로 창고영화로 묵혀진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배우들의 연기가 워낙 훌륭해서 영화에 몰입해 재밌게 즐기긴 했지만, 뭔가 한방이 없기 때문에 영화 '신세계' 같이 명화로 기억되긴 힘들 것 같다. 어쨌든 나름 재밌는 탓에 평점 자체는 괜찮은 편이다. (네이버 영화 7.02점, 다음 영화 6.2점)
영화 뜨거운 피 출연진
노태우 정부가 1990년에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전국에 산재한 조폭들을 소탕에 나섰다. 영화 '뜨거운 피'는 1993년에 펼쳐진 부산조폭들에 관한 이야기다. 즉, 외부적으로 조폭들이 생존하기 어려운 상황을 겪으며, 굉장히 각박해진 상황임을 암시한다. 그래서 그런지, 구암(가상의 도시)에 있는 조그만 항구를 두고, 목숨을 걸고 경쟁해야 되는 상황이 펼쳐졌던 것이다.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날것의 감정이 충돌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인간 본성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① 만리장 호텔의 에이스, 희수
기본적으로 이 영화는 배우들의 연기력이 압도적으로 좋다. 정우 배우에 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구암이 손바닥만한 곳이긴 하지만, 이곳에서 최고의 주먹으로 누구에게나 인정받을 만큼 명성을 쌓긴 쉽지 않다. 희수(정우)는 구영감이 지배하는 만리장 호텔을 실질적으로 관리하고 있으며, 동시에 항구도 함께 돌본다. 희수는 나이 40을 먹도록 성실히 구영감 밑에서 궂은일을 다하며 일했지만, 손에 쥐는 것이 별로 없는 탓에 결국 독립을 결정한다. 독립하는 과정에서 파트너로 양동(김해곤)을 선택하는데, 이것은 치명적인 실수가 된다.
종국에는 구암을 지배하는 왕이 되지만, 이 과정이 쉽지 않으며, 엄청난 감정이 소비된다. 영화는 희수가 왕이 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감정을 가감없이 나열한다. 지속적으로 머뭇거리면 진다는 것을 강조하며, 좀 더 비열해질 수 있도록 각성시킨다. 다만, 희수라는 캐릭터를 너무 이상적으로 그렸기 때문에, 나쁜영화라고 평가하는 평론가들도 많아 보인다. (개인적으로 부모의 입장이 되면, 아이들이 이런 영화를 보며, 낭만주먹이라는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대상에 대한 환상을 가질까봐 걱정이 될 것 같다.)
② 만리장 호텔의 사장, 손영감
손영감(김갑수)은 그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다. 모진 세월을 견뎌내며, 구암을 장악한데는 다 이유가 있다. 얼핏 보면 그냥 동네의 평범한 노인네 같지만, 그는 누구보다 잔인하고 복잡한 계산을 살아온 연륜을 바탕으로 빠르게 판단한다. 희수를 진심으로 아끼기에 티키타카가 오가는 케미가 좋다. 김갑수 배우가 연기를 워낙 잘하기 때문에 유약한듯 냉정한 손영감의 이중적인 캐릭터를 너무도 잘 그렸다.
③ 밑바닥까지 갔기에 두려움을 모르는 용강
사람들은 대화가 통하지 않는 미친 사람들을 의외로 제일 무서워한다. 왜냐면 미친 사람들은 득실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예 예측이 안된다. 영화 속 용강(최무성)은 마치 그런 사람처럼 등장한다. 실제로 불완전함에서 오는 그의 광기 어린 에너지는 조커 저리가라 할 정도로 섬뜩했다. 개인적으로 영화에서 연기를 가장 잘한 단 한명을 꼽으라면, 무조건 최무성 배우를 꼽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땀은 뜨겁지만, 그 땀이 식으면, 땀만큼 차가운게 또 없다는 그의 대사가 너무 공감됐다.
④ 뜨거운 피를 가진 아미
주연급 존재감을 지닌 아미(이홍내)는 영화의 제목을 캐릭터의 성격에 그대로 반영했다. 누구보다 인정받길 원하기 때문에 뜨겁게 행동한다. 하지만 순수한 면을 동시에 지니고 있어, 어른들이라면 누구나 이 친구가 변해서 바르게 살길 원할 것 같다. 희수에게 아버지라 불러도 되냐고 물어볼 때는 나도 모르게 뭉클했다. 순수하지만, 열정에 찬 폭주 기관차 같은 모습을 정말 잘 표현했다. 앞으로가 기대된다.
⑤ 영도파의 이인자, 철진
철진(지승현)은 만리장과 경쟁하는 영도파의 이인자다. 희수와는 특이하게 30년지기 친구이며, 서로를 깊이있게 존중하는 듯하다. 딱히 열등감 때문이 아닌 조직의 이익 때문에 희수를 배신한다는 점이 기존의 클리셰를 깨긴 했다. 어쨌든 스스로가 살기 위해 절친을 철저하게 비열한 방법으로 배신한 것은 오히려 현실적이라 몰입감이 있었다. 극 중에서는 주요 빌런으로 열일하지만, 의외로 존재감과 임팩트는 그리 크지 않았다. 그냥 무난한 수준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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