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본 영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내 기준에 대체로 괜찮은 웰메이드 영화였다. 이 정도면 생각해볼 만한 지점도 많고, 상징과 그 숨겨진 의미를 쫓아가는 재미도 상당했던 것 같다. 다만, 수위가 역대급으로 파격적인 데다, 그 비중마저 너무 많아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갈리고 있다. (네이버 영화 5.88점, 다음 영화 5.2점) 솔직히 이런 장면들의 비중을 조금 줄이고 서사에 집중했다면, 대중적으로 흥행에 훨씬 성공하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주인공들의 관계가 강압적으로 시작됐다는 점과 서로의 존재 자체가 파괴적인 동시에 숨겨왔던 욕망을 해결해줄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정사씬 자체를 다소 파괴적으로 그렸던 감독의 의도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어쨌든 영화는 대중과 호흡해야 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 같다. 선정적인 장면들이 많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냥 싸구려 영화처럼 취급하는 후기들이 많다는 것 자체가 관객들이 감독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라고 봐야 된다.
아마 본격적인 영화를 개봉하기 직전에 펼쳐진 홍보전에서 무려 영화 '색계'와 '화양연화'를 견주는 바람에 뭔가 꼴이 많이 우습게 된 측면도 있는 것 같다. 영화를 보는 내내 김기덕 감독이 생각날 정도로 분위기가 비슷했는데, 알고보니 연출을 맡은 장철수 감독 자체가 애초에 김기덕 감독의 조연출 출신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김기독 감독의 아류라고 볼 수만은 없는 것이 전작인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에서는 딱히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들을 보고 나면, 대체로 기분이 묘하게 나쁘다. 스토리 자체는 납득이 되는데, 가슴에서 뭔지 모를 거부감이 느껴진다. 그가 연출한 대부분의 영화들에는 폭력적인 남성과 주체성을 잃은 여성이 등장하는데, 요새는 주도적인 여성들이 워낙 많아져서 그런지 몰입이 안된다. 하지만 이를 매번 공식처럼 적용하니, 그냥 김기덕 감독만의 자기복제 혹은 클리셰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놀랍게도 그것을 정반대로 뒤틀었기 때문에 되레 신선했다.
영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출연진
장교가 되기 위해 누구보다 헌신적으로 일하는 사단장 취사병 신무광(연우진)과 오랜 기간 여성으로서 사랑을 받지 못한 사단장의 아내인 류수련(지안)의 은밀한 로맨스가 영화의 주된 소재다. 요새는 워낙 이런 류의 소재들이 많아서 그런지, 설정 자체는 고리타분해 보이지만, 이야기가 생각보단 긴장감 있게 전개됐다.
주인공 역을 맡은 연우진 배우와 지안 배우가 고생을 정말 많이 했을 것 같다. 특히, 연우진의 탁월한 연기가 영화를 멱살잡고 캐리했다고 생각한다. 친절하지 않은 스토리 전개 탓에 이해가 안될 때도 있는데, 그럴 때는 그냥 연우진만 바라보면 된다. 그의 감정선을 쫓아가다 보면, 어느새 이야기가 끝나있을 정도로 몰입감 자체는 대단했다. 참고로 신무광(연우진)은 농민의 집안이라는 비루한 출신성분 때문에 처가로부터 차별과 압박을 받아왔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목숨걸고 군인으로서 복무에 충실했었다.
실제로 사단장 부인의 노골적인 유혹에도 처음에는 무너지지 않았을 정도로 가족을 생각했지만, 결국 처가측 가족들이 원하는 간부승진에 대한 압박에 못이겨 도리어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자신을 사회적인 지위로 평가하지 않고, 한 사람의 남자로서 순수하게 봐준 사단장 부인에게 사랑을 느껴버린 것이다.
영화 속 '인민을 위해 봉사하라' 팻말에는 다양한 의미가 있다. 처음에는 ① 사단장의 분신같은 존재로 여겨져 신주단지 모시듯 정성스럽게 모셔졌지만, 팻말이 제자리에서 벗어나 있을 때는 처소인 2층으로 올라오라고 그녀가 명령한 뒤로부터는 ② 그녀에게는 욕망을 분출하는 신호로, ③ 그에게는 위정자들의 부당한 명령처럼 느껴진다. 물론 시간이 흘러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 뒤로부터는 ④ 그녀에 대한 아련한 기억이 담겨있는 추억이 돼버렸다. 그러다 보니, 잠시 고향에 내려갔을 때 팻말에 집착한 것이다.
참고로 인민을 위해 봉사하라는 표현 자체는 중국의 모택동이 했던 위인민복무(爲人民服務)에서 나왔다. 영화 속 진무광과 류수련에게 있어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인민이었으며, 복무하라는 것은 쾌락을 주는 행위를 뜻한다. 애초에 영화의 원작인 소설은 지난 2005년에 출시됐으며, 중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마치 1970년대 북한을 연상시킨다.) 중국에서는 금서취급을 받고 있을 정도로 사회적으로 이슈가 많이 됐던 책이다.
이러한 사단장 부인 류수련 역할을 맡은 지안의 연기 역시 나쁘지 않았다. 다만, 권위적인 사단장 부인을 연기하기 위해 톤을 억지로 굵게 낸 것이 거슬리긴 하다. 인터뷰나 제작보고회 등의 영상을 보면 목소리 톤이 평소에도 낮은 편이긴 하지만, 절대 어색하진 않다. 그렇다면 연기에 힘이 많이 들어갔기 때문에 어색해진 거라고 보면 되는데, 경험이 더 쌓이면 해결할 수 있다. (나이에 비해 작품수는 그리 많지 않던 것으로 보아 뭔가 우여곡절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앞으로는 잘됐으면 좋겠다.)
그녀의 남편인 사단장(조성하)은 남자로서의 기능을 잃은 상태다. 그러다 보니, 류수련은 오랜 기간 여성으로서 사랑받지 못했다. 심지어 오랜 기간 자택에만 머물러야 되다보니, 삶 자체가 무미건조해졌을 뿐만 아니라 성격도 차갑고 메마르게 변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신무광과의 관계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밝고 장난기 많은 모습도 보여주는데, 이런 밀도깊은 감정의 변화는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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