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파에서는 다룰 수 없는 주제를 과감하게 시도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웹예능의 강점이다. 이런 파격으로 인해 실제 괜찮은 퀄리티의 프로그램들이 많이 나왔는데, 그중에서도 '머니게임'과 '공범', '가짜사나이' 등은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켰을 정도로 이슈가 됐다. 이들 대형 프로젝트들과 어깨를 겨룰 만큼 기대를 모왔던 프로그램이 바로 격투기 예능을 표방한 '파이트클럽'이었다.
결론적으로 시청한 소감을 말하면, 솔직히 대작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나름 재미가 있었다. 꿀잼 포인트가 될 수 있었던 치열한 심리전이 일어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딱히 출연자들 간의 갈등이 일어나지 않아 기대보다는 밍밍해지긴 했지만, 선수가 아닌 일반인에 가까운 사람들의 싸움을 보는 것 자체가 흥미롭긴 했다. '파이트클럽'은 애초에 6박 7일을 계획한 프로그램이었지만, 출연자들이 빨리 퇴소해야겠다고 각성함에 따라 실제로는 2박 3일 만에 속전속결로 끝나고 말았다. 참고로 아래 순서는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출연자별로 퇴소한 순서대로 나열했다.
웹예능 파이트클럽 결과 총정리
① 14번(조준) 퇴소, 13번(이동원) 퇴소
준수한 외모의 14번 참가자 조준은 헬스 유튜버다. 조각같이 다듬어진 압도적인 몸 때문에 굉장히 위협적으로 느껴졌지만, 실전 싸움에서는 의외로 강하지 못했던 것 같다. 싸움을 진행하는 와중에 과호흡 증상이 와서 가장 처음으로 퇴소했다. 첫싸움의 포문을 열었고 승리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는데, 현재는 유튜브 운영을 잠정적으로 중단한 것 같아 아쉽다.
13번 참가자인 이동원은 수많은 밈(meme)이 만들어졌을 정도로 본의 아니게 코믹 캐릭터가 됐다. 제안할 게 있다면서, 싸움을 회피하는 모습이 어떻게든 컨디션이 정상일 때 대진해보고 싶다는 의지를 가진 것처럼 보일 수 있었지만, 결국에는 약한 모습을 보인 겁쟁이처럼 평가받았다. 결국 첫번째 패배를 장식한 뒤 가장 처음 자진으로 퇴소했다. 다만, 킥복싱을 연마한 만큼 실력 자체가 아예 없다고는 절대 볼 수 없다.
② 1번(설영호) 첫번째 우승, 4번(이준모) 퇴소
'파이트클럽'의 최대 수혜자를 꼽으라면, 단연 1번 참가자 설영호다. 능글능글 맞은 모습을 보이며, 뭔가 허풍쟁이 같은 인상이었지만, 실제로는 전략가 다운 면모를 보였다. 애초에 한번 한번의 싸움이 굉장히 지치는 일이기 생각해 최소한의 싸움을 통해 빠르게 우승하고 퇴소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으며, 실제로 이를 실천했다. 명예 같은 것은 개나 줘버리는 듯한 태도 때문에 굉장히 실리적일 뿐만 아니라 자기객관화가 잘된 사람처럼 보였다. 실제로 그의 이런 전략은 남아있는 참가자들에게 영감을 줬다.
4번 참가자인 이준모는 주짓수를 연마한 뮤지션이다. 건장한 체격과 다부진 인상 때문에 기대가 많았는데, 예상치 못했던 부상 때문에 너무 빠르게 퇴소하게 됐다. 뭔가 아쉽다.
③ 10번(로스) 퇴소, 7번(손지훈) 퇴소
10번 참가자 로스는 출연자들 중에서 최연장자(35세)다. 당연히 체력적으로 다소 열세인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매번 열심히 참가하는 모습 때문에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상대방에 져주는 방식으로 상금을 몰아주며 끝내는 것이 아니라 자진퇴소를 결정함에 따라 마지막까지 자존심을 지키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견이 있긴 하지만, 나름 설득력 있었던 것 같다.
레슬링을 익한 7번 참가자 손지훈은 강력한 우승후보였지만, 역시나 부상으로 자진퇴소하고 말았다. 복싱 기반의 2번 참가자(이길수)와 치른 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줘, 실전 싸움에서는 역시 레슬링이 최고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했다. 만두귀를 가진 사람을 무조건 피해야 된다는 속설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④ 11번(정진섭) 두번째 우승, 8번(이청수) 세번째 우승
11번 참가자 정진섭은 두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프로그램에서는 뭔가 야비한 캐릭터처럼 비쳤지만, 사실 그가 한 말 중에 딱히 틀린 말은 없었던 것 같다. 너무 날카로운 진실이라 받아들이기 어려웠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랄까? 참고로 참가자들 전원이 일반인이긴 하지만, 다들 무술을 익힌 이력이 있다. 정진섭은 MMA(mixed martial arts) 종합격투를 수련했으며, 엄청난 맷집을 바탕으로 승리를 이끌어냈다.
11번 참가자(정진섭)에 이어 세번째 우승을 차지한 8번 참가자 이청수는 합기도와 MMA를 연마했다. 최연소(21세) 참가자인 만큼 아직 경험이 많지 않지만, 타고난 격투센스가 있는 것 같다. 사실 그가 나머지 참가자들을 압살하며 상금을 축척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제작진이 의도한 바였겠지만, 1번 참가자(설영호)가 빠르게 우승한 것이 영향을 끼쳤다고 보면 된다. 그만큼 싸움이 엄청난 체력적인 소모를 요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⑤ 2번(이길수) 퇴소, 9번(이장한) 퇴소
13번 참가자(이동원)와 마찬가지로 2번 참가자 이길수는 본의 아니게 개그 캐릭터가 돼버렸다. 7번 참가자(손지훈)와의 대결은 실전싸움에서 가장 유용하다고 평가받는 복싱과 레슬링이 충돌하는 순간이었기 때문에 주목을 받았다. 11번 참가자(정진섭)와 친구 사이이기 때문에 서로를 조언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다만, 계속되는 패배로 인해 자존감이 무너지며, 자진퇴소하는 모습은 뭔가 많이 아쉬웠다.
9번 참가자 이장한은 킥복싱을 연마했다. 프로그램을 보면서 느낀 게 있다면, 실전격투에서 발차기가 의외로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파괴력이 크긴 하지만, 부러지기 십상이라 잔부상이 많기 때문에 연속으로 경기를 치러야 되는 '파이트클럽'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 스스로 퇴소했다.
⑥ 12번(이성원) 네번째 우승, 6번(차영훈)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참가자를 꼽으라면 역시나 12번 참가자 이성원이었다. 가장 많은 경기를 치른 것도 대단한데, 우승의 문턱에서 계속 패배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밑바닥부터 기어올라와 마지막 우승을 차지한 모습은 마치 영화의 한장면이었다. MMA를 수련한 만큼 기술도 좋지만, 포기하지 않는 불굴(不屈)의 정신력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줬던 것 같다. 동료이자 경쟁자였던 5번 참가자(송지훈)로부터 진심이 담긴 칭찬을 받기도 했다. 사실상 찐주인공이다.
10번 참가자(로스)와 함께 유일하게 30대(34세)였던 6번 참가자 차영훈은 MMA와 주짓수를 익혀 실전싸움에 굉장히 노련하면서도 강한 면모를 보였다. 12번 참가자(이성원)와의 대결은 누가 이겼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치열했지만, 마지막 고비를 넘기진 못했다.
⑦ 3번(고승범), 5번(송지훈)
3번 참가자 고승범은 무에타이를 익혔다. 출연 분량이 많지 않아 서사가 제대로 만들어지지 못해 주목받진 못했다. 하지만 자진퇴소가 엄청 많았던 와중에도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는 것은 그가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충분히 강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5번 참가자 송지훈은 첫출연부터 애니메이션 '나루토'에 나왔던 아카츠키 복장을 입는가 하면, 오타쿠들이 읽을법한 연애소설책을 읽는 등 기행을 펼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그의 계획된 연출이었다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졌기 때문에 나름 전략적인 행동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의롭고 소신 있는 모습 때문에 많은 이야기의 중심에 있었지만, 승률은 의외로 높지 않았다. 그래서 전투력 측정기 같은 모습이기도 했다. 방송적으로는 좋은 이미지를 많이 쌓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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