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콘텐츠/삼국지, 게임

촉나라 4대 명재상 촉한사영 (+제갈량, 장완, 비의, 동윤)

by 낭만쉼표 2023. 4. 25.
반응형

삼국 중에서 국력이 가장 뒤처졌던 촉나라가 나름 오랫동안 버틸 수 있었던 이유가 뭘까? 사실 초창기 촉나라는 마치 유망한 스타트업 회사와 비슷했기 때문에 온갖 인재들이 비전 하나만을 바라보고 들어왔다. 서주, 형주를 거쳐 익주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각 지역의 뛰어난 인재들을 싹 끌어모았는데, 그 숫자가 많았을 뿐만 아니라 이들 중에는 제갈량, 황충 등과 같이 역량이 사기급으로 뛰어난 자들도 있었다.

 

촉한사영

 

문제는 시간이 흘러 촉나라 초창기 인재들이 점차 자연사하면서 발생한다. 당시 2~3세기는 평균수명이 대략 40대 정도였으며, 60대까지 살면 장수한 케이스로 회자되던 시대였다. 촉나라의 영토는 익주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자연스레 인재수급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현상은 이릉대전에서 수많은 인재들을 잃으며, 더욱 가속화됐다.) 얼마나 인재수급에 문제가 있었던지 엄격하기로 유명했던 제갈량마저 면전에서 서로 대놓고 싸우는 위연과 양의를 함부로 처벌하기 어려웠을 정도였다.

 

제갈량, 위연, 양의, 유언, 유장

 

참고로 위나라는 무려 9개주(기주, 량주, 병주, 연주, 유주, 예주, 사례, 서주, 청주)를 지배했고, 오나라도 3개주(교주, 양주, 형주)를 다스리고 있었던 반면, 촉나라는 단 1개주(익주)만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쯤에서 당시 주목이나 주자사가 얼마나 높은 위치였는지 가늠할 수 있다. 익주자사 혹은 익주목이 곧 익주의 실질적인 지배자였던 것이다. 실제 유비에게 넘기기 전까지 대를 이어 익주를 다스리던 유언, 유장 부자의 직책은 각각 익주자사와 익주목이었다.

 

 

위나라 오자양장 총정리 (목 vs 자사 vs 태수)

어렸을 때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먼나라 이웃나라나 한국역사, 세계역사 전집을 끼고 살았다. 책을 보느라 밖에 놀러 나가지 않던 내가 걱정됐는지 어머니는 참다

solenedu.tistory.com

 

그럼에도 불구하고, 촉나라는 제갈량 사후에도 뒤를 잇는 괜찮은 정치인들이 무려 3명(장완, 비의, 동윤)이나 더 있었고, 이들이 있었기에 상당기간 더 버틸 수 있었다. 심지어 이들이 섬기던 군주은 암군(暗君)으로 유명했던 유선으로, 그를 보좌해 수십년이나 국가의 존위를 지속시켰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제갈량과 이들 3명을 통칭해 촉한사영(蜀漢四英) 혹은 촉한사상(蜀漢四相)이라 부른다.

 

제갈량을 제외한 나머지 3명이 비록 승상의 자리에 오르진 못했지만, 이는 이들 스스로가 제갈량을 존경해 승상의 자리를 공석으로 남겨놨을 뿐 사실상 동일한 권한과 책임을 가지고 있었다. 참고로 승상은 왕권이 약한 시기에는 국가의 중요한 사안들에 대한 결정권한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현 일본의 총리와 비슷한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촉나라는 크게 ① 내정과 외정이 통합됐던 시기와 ② 내정과 외정이 분리됐던 시기로 구분해야 된다. 이들 사상들이 활약하던 시기는 모두 승상이 내정(행정)과 외정(군사)을 도맡아 하던 시기로 제갈량(1대)과 장완(2대), 비의(3대)가 이를 수행했다. 동윤만이 비의(차기)의 뒤를 잇는 차차기로 활약하다 장완이 지병으로 사망하던 해에 같이 단명해 버렸다.

 

촉한사영(촉한사상) 소개

백리지재(百里之才)를 뛰어넘는 장완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유비가 방통이 봉추인지 모르고 지방의 작은 현령을 맡기고, 업무를 제대로 돌보지 않고 있다는 소문에 화를 내자, 제갈량이 방통은 나라를 다스릴 인재이지 백리를 다스릴 인재가 아니라고 간언 하는 장면을 기억할지 모르겠다. 사실 정사를 살펴보면 이는 방통이 아닌 장완과 관련된 에피소드다. 실제로 장완은 제갈량의 뒤를 이어 촉나라의 일인자가 됐지만, 유비 생전에는 빛을 발하지 못했다. 아마도 장완의 친척 중 한명인 반준이 관우를 죽이고 오나라에 항복했기 때문이 아닐까?

 

장완, 방통, 비의, 동윤, 곽유지

 

장완은 제갈량이 북벌에 전념할 수 있도록 내정을 잘 맡았기 때문에, 후계자로서 일찍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제갈량은 행정가와 야전지휘관으로서의 능력이 모두 훌륭했지만, 장완은 행정가로서의 능력만이 걸출했다. 그래서 본인이 직접 야전에서 전투를 지휘하기보다는 부하장수인 강유를 통해 간접적으로 북벌에 참여했다. 따라서 강유가 전투를 끝내고 나면, 장완이 대군을 이끌고 해당 지역을 점령해 촉나라로 전향시키는 방식을 주로 사용했다.

 

호방했던 비의 vs 엄격했던 동윤

비의와 동윤은 라이벌이자 동료로서 함께 잘 성장한 케이스이다. 둘은 성격적으로 상당히 다른 편이었는데, 비의가 호방하고 너그럽다면, 동윤은 꼼꼼하고 엄격했다. 이 차이가 상당히 극단적이라고 느껴졌는지, 제갈량은 그 둘 사이에 조화로운 성향의 곽유지를 넣어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도록 배려해다는 기록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비의와 동윤이 함께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은근슬쩍 곽유지도 함께 거론되는 경우가 많다.)

 

비의는 장완과 함께 제갈량이 실질적으로 후계자로 지목했던 2인 중 한사람으로 장완 사후에 그의 자리를 그대로 이어받아 문무통합 1인자로 등극한다. 하지만 역시나 행정가로서는 뛰어나지만, 야전사령관으로는 경험이 부족해 강유가 군권을 이끌어갈 수 있도록 배려를 많이 했다. 장완에 비해서는 북벌에 회의적이라 그런지, 비의가 실권을 장악한 이후부터는 주로 공격이 아닌 방어로 태세를 전환했다.

 

비의가 천재형에 가깝다면, 동윤은 노력형에 가깝다. 오나라의 손권은 사신으로 온 비의의 능력을 대번에 알아채고, 추후 틀림없이 촉나라의 높은 자리를 차지할 텐데, 그렇게 되면 오나라에 자주 오지 못할 것을 걱정하는 대목이 있다. 또한, 동윤이 비의의 자리를 이어받고 한달만에 해당 업무에 서서히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는 점을 보면, 확실히 비의가 능력적으로는 동윤보다 앞선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다만, 동윤이 건재할 당시에는 환관들이 득세하지 못했던 것을 보면, 군기반장으로서의 역할만큼은 누구보다 뛰어났던 것 같다.

 

제갈량, 장완, 동윤이 모두 격무에 시달리다 단명한 반면, 비의는 나름 풍류도 즐겼던 것 같다. 다만, 가장 큰 실책 2가지는 진지를 자신의 후계자로 삼았다는 점과 함께 너무 격의 없이 사람들과 지낸 탓에 연회에서 위나라 항장출신 장수인 곽순에게 살해당했다는 점이다.

 

촉나라 역대 승상 소개

촉나라는 앞선 3대 승상까지가 문무통합 1인자로 내정과 외정을 두루 관장했다면, 4대부터는 본격적으로 내정과 외정을 나눠 담당하기 시작했다. 내정에서의 1인자는 비의의 후계자인 진지이며, 외정에서의 1인자는 강유였다. 사실 진지는 능력적으로 한나라의 내정을 이끄는데 문제가 없었다. 다만, 그에게는 동윤과 같이 카리스마 있는 엄격한 동료가 없었기에, 환관들이 권력을 잡아가는 것을 막지 못했다. 물론 이 시기에는 유선이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직접 친정하려는 모습도 보여줬기에 불가역적이었다는 의견도 있다.

 

진지, 강유, 동궐, 번건, 제갈첨

 

진지가 살아있을 때는 환관들이 그나마 대놓고 득세하진 못했지만, 역시나 이전 승상들과 마찬가지로 단명해 버리고부터는 통제가 아예 안되기 시작했다. 환관들의 우두머리인 황호는 껄끄럽던 강유가 북벌 때문에 계속 전선에 머물자, 유선의 총애를 바탕으로 내정을 어지럽히기 시작했다. 진지의 뒤를 이어 5번째 승상을 맡은 내정 1인자는 동궐과 번건, 제갈첨이었다. 이는 혼자서 업무를 다 처리할 수 있을 정도의 인재가 촉나라에는 없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하다.

 

이때는 북벌 반대론자들이 득세하던 시기였다. 마치 덧셈(유지)을 겨우 하는 아이에게 곱셈(북벌)은 단순히 어려운 영역이 아닌 불가능한 영역으로 받아들인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심지어 이때는 초주가 대놓고 북벌을 반대하는 상소문을 올리기도 했으며, 군부 내에도 북벌 찬성론자들이 대부분 사망하고 장익, 요화 등과 같이 북벌 반대론자들이 고위직을 차지하며, 강유의 입지가 매우 좁아지던 시기였다. (그렇다고 장익과 요화가 북벌 간에 태업을 한건 아니다. 정말로 북벌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황호, 염우, 초주, 장익, 요화

 

심지어 동궐, 번건, 제갈첨은 강유 대신에 황호와 가까웠던 염우에게 외정을 맡기려는 시도를 했을 정도로 북벌 때문에 국운이 사그라들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신기하게도 황호와 친했던 유선이지만, 이 제안만큼은 받아들이지 않았고, 끝까지 강유를 신임했다. 이 부분 때문에 사실 유선도 비범한 사람인데, 역사적인 평가가 잘못됐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편에서는 강유의 탄핵을 동궐, 번건, 제갈첨이 기획한 고도의 정치적인 책략이었다고 주장한다. ㉮ 강유가 기존에 맡았던 량주자사에서 익주자사로 직을 옮김으로써, 외정이 아닌 내정으로 포지션을 옮겨 황호를 직접적으로 견제함과 동시에 ㉯ 북벌에 지친 촉나라도 한템포 쉬어가려는 목적이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강유는 오랜 기간 전쟁터에서 지낸 군인이지만, 애초에 관직의 시작을 문관으로 시작했으며, 제갈량 밑에서 내정도 함께 배웠던 경험이 있다는 점을 미뤄보면, 내정을 맡아도 평균이상은 했을 거라 본다.

 

또한 염우가 황호와 친했다곤 하지만, 황호를 대놓고 싫어하던 동궐, 번건, 제갈첨이 함께 입을 모아 추천했던걸 보면, 아예 능력이 없던 인물로 봐서는 안될 것 같다. 참고로 일러스트에서는 동궐이 마치 무장처럼 그려져 있지만, 문관에 가까운 선비였다. 반면 제갈량의 아들인 제갈첨은 많은 기록이 없긴 하지만, 그가 맡았던 직책들을 보면 지금처럼 장수로 그려지는 게 맞을 것 같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