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적인 잣대를 가지고 방송을 시청하려 하지만, 경연관련 프로그램은 나도 모르게 팬심이 생겨나서 그런지,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개인적으로 효린과 비비지의 무대가 압도적이라고 생각했고, 비비지가 2등이 아닌 3등을 했다는 사실이 아직도 안믿겨질 정도로 어느새 비비지에 대한 팬심(?)이 생겨버렸다. 지난 1화 방송에서는 효린과 비비지의 경연곡들만 나왔다. 두팀 모두 워낙 유명한 곡들이 많은데다, 그룹이 해체되고 각각 솔로와 유닛그룹으로 재데뷔했기 때문에 스토리텔링마저 강력했다.
이제 2화까지 방송되고, 순위가 가려졌기 때문에 퀸덤2의 1차 경연을 리뷰해본다. 그동안 엔터주를 투자하며, 관련 시장을 꾸준히 공부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K-POP 시장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파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음을 느꼈으며, 기술적으로 들어가면 정말 끝도 없는 것 같아서, 최대한 대중적인 뷰를 가지는 선에서 덕질(?)을 끝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과부터 얘기하면, 1차 경연은 효린이 1등을 했으며, 이어 우주소녀, 비비지, 케플러, 브레이브걸스가 순위를 차지했다. 이달의 소녀는 불참했다.
퀸덤2 1차 경연 결과 총정리
① 효린
일단 효린의 무대는 이견이 없으니 논외로 치자. 이미 다수의 경연 프로그램에서 노래와 춤, 심지어 랩의 경쟁력마저 증명한 효린은 사실상 누군가에게는 이미 조용필이자 이미자인 레전드 가수다. 그나마 틈이 있다면, 자만해서 무대를 제대로 준비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건데, 그마저도 1인 기획사 사장인 효린이 절박한 마음으로 무대를 준비하고 말았다. (혹은 효린이 애초에 성실한 천재일 가능성도 있다.) 이러니 당연히 레전드 무대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노래는 지금 20~30대라면 누구나 알법한 시스타의 대표곡인 'Touch my baby'였다. 솔로곡에 적합하도록 편곡을 새로 해서 예전 시스타 때와 비교해 봐도 딱히 빠지는 듯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화려한 꽃들을 많이 등장시켜, 마치 브라질에서 펼쳐지는 카니발 축제 같은 느낌이 났다. 참고로 현장에 참석한 청중평가단은 총 2표를 행사할 수 있으며, 중복투표가 불가능한 관계로 평소 자신이 응원하던 팀과 가장 무대를 잘한 팀을 선택할 확률이 높다. 효린이 1등을 할 수 있었던 가장 이유는 여기서 1표를 무더기로 받았기 때문이다.
② 비비지
비비지의 무대 역시 무대연출이나 안무, 노래, 오브제(왕관) 등에서 거의 완벽했다고 생각한다. 일단, 경연곡으로 선택한 '밤'과 '시간을 달려서' 자체가 누군가에게 아련한 느낌으로 남아 있는 명곡이다. 거기에 '시간을 달려서'의 마지막 안무를 의도적으로 바꾼 점등을 알고 나니, 여자친구 팬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눈물 날 수밖에 없는 무대라고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해체한 여자친구는 지난 2015년에 한 야외방송에서 수십차례 넘어지는 와중에도 무대를 어떻게든 마무리해 호평을 받았던 그룹이다. 당시 비가 와서 야외무대가 많이 미끄러웠는데, 아무리 넘어져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끝까지 안무를 해낸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뿐만 아니라, 옆에 있는 동료가 넘어지면 아무래도 나도 모르게 위축이 돼서, 동작이 작아지기 마련인데, 오히려 넘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원래의 안무대로 끝까지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줘서 훨씬 감동적이었다.
다만, 이번 퀸덤2에서는 의외로 출연진들에 의한 자체평가에서 한수아래로 무려 3표(효린, 케플러, 브레이브걸스)나 받았다. 일단 효린의 답변에 따르면, 두곡을 같이 불러 집중도가 떨어졌다고 했으며, 케플러와 브레이브걸스는 비비지의 무대에 이어 하필 효린의 무대가 이어져서 좀 묻힌감이 있었다고 했다. 개인적으로는 어느 정도 맞는 말인 것 같은데, 더 큰 이유로 치열한 2, 3, 4위 다툼에서 견제의 목적으로 선정했을 거라 생각한다. 실제로 한수아래의 표는 점수에 많은 영향을 줬다.
③ 케플러
관객들 앞에서 처음하는 무대라 그런지, Mnet 측에서 스토리텔링을 정말 많이 해줬다. 케플러는 Mnet에서 방송했던 '걸스플래닛 999: 소녀대전'의 순위경쟁에서 선발된 멤버들로 런칭한 아이돌 그룹이다. 예전 아이오아이, 아이즈원 사례를 미뤄봤을 때, 원래라면 무조건 흥행에 성공해야 됐을 그룹이다. 하지만 '프로듀스 101' 프로그램 자체의 공신력이 무너지면서, Mnet에서 실시하는 경연 프로그램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져, '걸스플래닛'은 시청률과 화제성에서 참패해버리고 말았다. 그렇다 보니, 국내에서 케플러의 인지도는 사실상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외팬들이 정말 많다. 멤버들 구성에서 외국인들이 많이 포함됐기 때문에, 해당 국가들의 시청자들이 대거 유입됐으며, 이번에 발표한 앨범 역시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했다. 따라서 해외팬들의 투표가 중요한 퀸덤2에서는 상당한 우위를 차지한 상태에서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치열한 경쟁을 통해 뽑힌 만큼 실력도 좋은 편이지만, 아직은 경험이 부족한 편이다. 그래서 다른 출연진들의 리액션을 보면, '패기 넘친다, 에너지 장난 아니다, 진짜 힘좋다.' 정도가 있었다.
④ 브레이브걸스
브레이브걸스는 지난 맞수지목에서 0표를 받았는데, 이번 한수위, 한수아래 선정에서도 표를 전혀 받지 못했다. 그만큼 다른 팀들 사이에서 경쟁자로 느껴지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브레이브걸스의 주요 팬층은 특이하게도 군대를 다녀온 20~30대 남성이다. 따라서 주로 10대~20대 여성이 주요 팬층인 다른 아이돌 그룹들과는 결 자체가 상당히 다르다. 브레이브걸스가 최근에 내놓은 노래들을 살펴보면, 시티팝이나 디스코 같은 살짝 나이가 있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장르들이 많다.
브레이브걸스 입장에서는 현장평가단의 비중이 60%나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이라는 점이 그나마 다행이다. 진짜 문제는 소속사에 있는 것 같다. 의상이나 안무를 보면, 솔직히 멋도 없고, 올드한 느낌부터 먼저 든다. 오프닝쇼에서 입었던 헐렁한 정장은 그냥 헛웃음이 나왔고, 1차 경연에서 등장한 형광봉을 들고 추는 안무는 고등학교 장기자랑 같은 느낌이 들었다. 브레이브걸스 때문에 퀸덤2를 시청하기로 마음먹었던 내 입장에서는 솔직히 안타까울 뿐이었다.
현장평가단 이외에 글로벌평가단 30%와 퀸덤 자체평가 10%가 있는데, 매번 경연 때마다 퀸덤 자체평가의 일환으로 한수위와 한수아래 투표가 진행된다. 물론 퀸덤 자체평가는 비중이 작긴 하지만, 의외로 순위경쟁에서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이번 1차 경연을 통해 드러났다. 참고로 한수위는 선택하지 않아도 되지만, 한수아래는 반드시 선택해야 된다는 조건이 있다. 프로그램에서 갈등은 스토리 전개를 극적으로 만들어주고, 팬덤 간에 경쟁을 일으켜 활발한 투표참여를 만든다는 점에서 MSG 같은 존재다.
사실 브레이브걸스 멤버들이 찍은 일상과 관련된 영상들을 보면, 모두들 비글미가 가득해 매력적이다. 다만, 멤버들 모두가 낯을 가리는 성격 탓인지 이런 경연 프로그램에서는 장점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 아마도 팬층을 넓히기 위해 퀸덤2를 출연한 것 같은데, 기본적인 실력이 좋은 만큼 분명 기회가 찾아올 거라 믿는다.
⑤ 우주소녀
악마의 편집 때문에 첫인상이 안좋았지만, 알고 보니 상당히 실력이 좋은 팀 같다. 멤버 개개인들의 실력이 좋고, 곡들도 상당히 좋은데, 의외로 흥행이 잘 안됐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숨은 명곡 맛집이라는 다소 안습인 별명도 있는 듯싶다. 사실 그룹이 유명했다면, 이 모든 곡들이 여자친구의 수많은 명곡들처럼 같이 유명해졌을 텐데, 아쉽긴 하다. 찾아보니, 괜찮은 노래들이 많다.
이번 1차 경연에서 우주소녀는 뭔가 쉽지 않았다. 준비했던 오브제(모래시계)가 중간에 깨져버려, 모래가 무대를 덮어버린 것이다. '하늘이 왜 우릴 안도와줄까? 왜 우린 되는 게 없을까? 죽을힘을 다하겠다고 여기에 나왔는데, 왜 우리에게 시련을 줄까?'라는 하소연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괜히 기분이 먹먹해졌는데, 결과적으로는 이런 시련들이 우주소녀의 성장에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다. 시련을 극복하는 영웅들의 스토리는 언제나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우주소녀의 리더가 '무대를 망쳤기 때문에 표를 달라고 할 면목도 없다'고 자책하는 장면이 가장 뭉클했다. 이렇게 스스로에게 가혹한 잣대를 들이밀고, 좀 더 완성도 높은 무대를 꾸미기 위해 노력하는 팀은 반드시 잘될 수밖에 없다. 우주소녀는 이제 회사와의 계약이 조만간 만료되는 시기에 이르렀기 때문에 뭔가를 보여줘야 될 타이밍이 됐고, 대중의 마음을 설득할 수 있는 실력은 있어 보인다. 딱 한번의 운이 필요할 뿐이다.
⑥ 이달의 소녀(Loona)
이달의 소녀(이달소) 역시 국내에서의 인지도는 안좋지만, 해외에서는 이미 어느 정도 성공한 아이돌 그룹이다. (해외에서는 Loona라는 그룹명을 사용한다.) 다만, 여기는 팀내 에이스라 할 수 있는 츄가 소속사와의 정산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는 것 같다. 만약 정산이 안되고 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건 확실히 소속사가 신속하게 처리해야 될 문제가 맞다. 열심히 일했는데, 아무런 보상이 없으면, 어떻게 버틸 수 있나?
솔직히 이달의 소녀라는 그룹 자체를 들어본 적이 없어서 실력을 잘 몰랐는데, 이번 무대를 보니, 상당히 괜찮아 보였다. 특히 비녀를 뽑아내는 듯한 장면은 그야말로 무대를 찢어버렸다. 1차 경연 때는 코로나의 여파로 어쩔 수 없이 불참했기에, 다가올 2차 경연은 기대가 된다. 한국의 경연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야구로 치면 메이저리그에, 축구로 치면 유럽리그에 진출한 것과 같이 위상과 실력이 급격하게 상승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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