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다. 이선균 배우 특유의 비장함이 유쾌함과 함께 잘 버물어진 듯한 느낌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초반에 남주인공 은용(이선균)이 몽골에 머무는 동안을 자세히 그렸는데, 이게 딱히 중요하지 않은 서사다 보니, 부자가 된 이후의 은용에 대한 어필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 시절에 대한 서사만큼은 탄탄히 쌓았기에 깊은 몰입감을 느꼈던 것 같다.
드라마 '법쩐'의 스토리는 '태양의 후예'를 집필했던 김원석 작가가 맡았으며, 총 12부작으로 제작됐다. (엄밀하게 말해 '태양의 후예'는 김은혜, 김원석 작가가 공동집필했다.) 딱히 다룰 사건도 없는데 굳이 스토리를 늘려가며 16부작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그만큼 12부작의 경우, 이야기 전개가 박진감 넘칠 뿐만 아니라 깔끔하다. OTT로는 넷플릭스가 아닌 웨이브에서 시청이 가능하다.
참고로 '법쩐'은 김원석 작가와 해당 작품을 자문한 사람 간에 분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지난 2019년 12월, 드라마의 자문을 맡았던 지씨의 주장에 따르면, 드라마의 구성과 설정 자체가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한 이야기이며, 단순한 자문을 넘어 상황 설정과 대사까지 도와줬다고 한다. 이후 2022년 초까지 작품이 드라마화되지 않자, 자신이 먼저 소설로 발표하려 했지만, 김원석 작가가 드라마가 끝난 뒤에 출간해 달라고 제안했다고 한다.
이후 드라마의 컨셉이 자신이 생각했던 검찰개혁이 아닌 복수극으로 변질하자, 자문료를 돌려줄 테니 작품에서 자신의 흔적을 지워달라고 했지만, 아무런 대응이 없었다고 한다. 제작진 측에서는 자문가가 '법쩐'의 대본을 바탕으로 소설을 출간하려 하자, 지식재산권 침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고, '해당 서적의 발행, 출간, 인쇄, 복제, 판매, 배포해서는 안된다'는 내용의 가처분 결정을 받았다고 한다. 자문가의 주장은 아무래도 주장에 불과한지라 자문료를 지급한 제작진의 주장이 일단은 훨씬 더 신뢰가 간다.
드라마 법쩐 출연진, 줄거리, 결말 총정리
① 은용, 은지희, 장태춘
은용은 부모님을 모두 잃었으며, 누나인 은지희와 의지하며 살아간다. 어렸을 때 소년원을 다녀오고, 궂은 일을 해야 됐지만, 박준경과 그녀의 엄마 윤혜린을 만나 가족과 같은 따뜻한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명동의 사채왕 명인주 밑에서 어떻게 돈을 굴리는지 배웠는데, 잔인한 그와는 오랫동안 일을 할 수 없겠다는 생각에 따로 독립한다. 그 과정이 쉽지 않았지만, 해외에서 절치부심으로 노력해 엄청난 부자로 성장한다. 이선균 배우의 연기가 정말 좋다. 따뜻하면서도 낭만적인 은용을 잘 표현했다.
은지희(서정연)는 밝고 명랑하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어떻게든 자식인 장태춘을 먹여 살리기 위해 다방과 술집에서 일하기도 한다. 덕분에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알콜성 치매 판정을 받았다. 치매 판정을 받은 날은 장태춘이 꿈꾸던 사법고시에 합격한 날이기도 해서 더욱 슬펐다.
장태춘(강유석)은 어려운 환경이긴 하지만, 엄마(은지희)와 삼촌(은용) 덕분에 삐뚤어지지 않고 잘 성장한다. 비록 지방대 법대에 가긴 했지만, 국내에서 가장 어려운 시험 중에 하나인 사법고시에 패스해 나쁜 놈들을 잡을 수 있는 검사로 성장한다. 출세에 대한 욕구가 강렬한 탓에 현재 머물고 있는 형사부가 아닌 특수부로 자리를 옮기고 싶어 한다.
② 윤혜린, 박준경
윤혜린(김미숙)은 상장사 블루넷의 대표다. 어른 같은 어른으로 은용을 편견 없이 바라봐준 유일한 사람이다. 아마도 그녀가 없었다면, 은용은 애진작에 불량한 사람이 돼버렸을지 모른다. 윤혜린이 소년원에 다녀온 은용에게 '우리 편이니까 내가 책임지겠다.'는 말은 나조차 뭉클했다. (다른 작품들을 통해 비슷한 서사를 이미 접했음에도 유독 감동적이었던 이유는 김미숙 배우의 아우라 때문이 아닐까 싶다.) 황기석과 명인주의 모략에 넘어간 윤혜린은 회사와 딸의 인생을 망쳤다는 자책감에 죽음을 선택한다.
박준경(문채원)은 곤경에 처한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선뜻 나설 정도로 정의롭다. 검사가 됐지만, 황기석의 꼬임에 넘어가 엄마를 죽음에 이르게 할 단초를 제공한다. 이후 자책감에 휩싸이며, 복수를 준비한다.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우리 편, 은용과 함께 한다. 작품 전반적으로 문채원 배우가 등장하는 장면이 많지 않아 아쉽다. 대체적으로 연기가 상당히 성숙해졌다는 느낌이 든다.
③ 황기석, 명인주, 이진호
황기석(박훈)은 특수부 부장검사다. 드라마에서는 명인주와 함께 강력한 빌런으로 등장하며, 박준경이 검사로 활동했던 당시에는 직속상사이기도 했다. 모략꾼으로 유명해 황셰프라고 불리며, 실력만큼은 확실하다. (각성한 황기석이 사실상 끝판왕이다.) 블루넷 윤혜린 대표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게 만든 원흉이다.
명동에서 기업사채를 하는 명인주(김홍파)는 명동신사라 불리지만, 사실은 고도로 계산된 사기를 치는 악질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급전이 필요한 대주주에게 주식담보대출을 제공할 때, 특약사항으로 특정금액 이하로 주가가 떨어지면 반대매매를 하겠다는 조항을 추가하는 것이다. 이때 대주주에게 빌려주는 돈은 반대매매를 통해 확보할 매도금보다 훨씬 적어야 된다. 이후 증권사와 짜고 공매도에 들어가며, 확보한 주식을 반대매매한다. (이해하기 어려운 공매도의 특징을 스토리에 잘 녹여냈다.)
이진호(원현준)는 은용의 몇 안되는 절친으로 소년원 동기다. 어렸을 때부터 함께 성장했으며, 명인주 밑에서 해결사 노릇을 한다. 머리가 좋은 편은 아니지만 싸움 실력만큼은 은용과 거의 비슷하다.
④ 홍한나, 남상일
홍한나(김혜화)는 은용이 세운 사모펀드를 실질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로비스트로 유명한 자신이 고객관리와 영업, 회사운영을 맡고, 은둔형인 은용이 실질적인 투자를 진행한다. 그렇다 보니, 은용의 손발이 되어 많은 일들을 처리한다.
남상일(최덕문)은 은퇴를 눈앞에 둔 검찰 수사계장이다. 주로 대형 금융범죄를 추적해 온 베테랑이지만, 특수부에서 황기석 부장검사와 발을 맞추는 와중에 직무에 대한 회의감을 느껴 무기력해진다. 비록 장태춘 검사가 별다른 경력이 없는 신입이긴 하지만, 어떻게든 불의에 맞서려는 모습에 예전에 활기찼던 본모습을 되찾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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