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젠의 상장폐지가 결정됐다. 애초에 큰 수익을 바라고 리스크가 큰 종목을 선택했던 만큼, 투자자들 스스로 현 상황을 자초했다는 의견이 대다수지만, 그래도 절망스러울 주주들을 생각하면 나 역시 가슴이 먹먹해진다. 신라젠에 투자한 개인투자자 수가 지난 2020년 연말기준 174,186명이며, 이들의 시총이 무려 8,016억원이니 실제 투자금은 훨씬 더 클거라 생각된다. 신라젠은 문은상 대표이사의 배임횡령으로 인해 지난 2020년 5월 4일부터 매매가 정지된 상태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아직 상장폐지가 최종적으로 확정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따라서 회사가 정말 의지를 가지고 있다면, 당장에 상폐가 되는 것만큼은 막을 수 있다. 물론 개선기간을 추가로 부여받는다고 해서 매매가 정상적으로 재개되기까지는 정말 쉽지 않은 일을 걸어야 된다. 뿐만 아니라 당장의 상폐를 피하더라도 또다시 1년 동안의 매매정지를 견뎌야 된다. 이번 신라젠의 상장폐지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동안 회사에 어떤 이슈가 있었는지 살펴봐야 된다.
신라젠 사건 총정리
미국의 과학자, David H. Kirn이 천연두의 백신인 우두 바이러스를 이용한 항암제를 착안했는데, 이를 통해 만든 치료제가 바로 펙사벡이다. David H. Kirn은 항암제 개발을 위한 자금을 수혈하기 위해 회사를 세우는데, 회사명은 인류 최초로 우두 바이러스를 만들어 천연두를 종식시킨 에드워드 제너(Edward Jenner)의 이름을 따 제네렉스(Jennerex)라고 지었다.
David H. Kirn의 아이디어에 주목한 동아대 치과의사 황태호는 2006년 3월, 동료의사들과 함께 제네렉스에 30억을 투자하고, 바이오 벤처회사를 동아대 차업지원센터에 설립한다. 이게 바로 신라젠이다. 신라젠의 회사명은 천연두와 관련된 설화인 처용가(處容歌)가 불려졌던 신라와 본사의 이름인 제네렉스를 혼합해 만들었다. 이후 신라젠은 제네렉스의 하청회사로서 함께 공동연구를 수행한다.
2014년 3월, 신라젠은 본사인 제네렉스를 300억에 인수한다. 이때 펙사벡 임상3상 성공시 1,300억원을 추가로 지급하겠다는 인센티브 계약을 함께 체결했기 때문에, 언론보도에는 1,600억원에 인수됐다고 알려졌다. (지금 와서야 드는 생각이지만, 펙사벡이 그렇게 좋은 치료제라면, David H. Kirn이 너무 싼 가격에 매도했다는 의심이 든다. 암튼 웩더독(wag the dog)이라 불리는 이런 사례가 현실에서는 의외로 자주 일어나긴 한다. 지난 2007년에 있었던 휠라코리아가 본사인 휠라를 인수한 사례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BW를 통해 회사를 장악한 문은상 대표이사
황태호 대표이사와 마찬가지로 치과의사였던 문은상 당시 신라젠 사외이사는 회사가 제네렉스 인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발행한 신주인수권부사채(BW) 350억원 어치를 페이퍼컴퍼니 '크레스트 컴퍼니'를 통해 대출을 받아 (무려) 무자본으로 취득한다. 이후 문은상 사외이사는 신주를 인수할 수 있는 권한을 행사해 총 1,000만주의 신라젠 주식을 취득해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제네렉스를 인수하는 과정 중에 황태호 대표이사는 해임된다. 이 부분은 다소 논란이 있는 부분인데, 굳이 깊이 이해할 필요는 없다.)
밸류인베스트코리아의 대주주 등극
정말 큰 문제는 밸류인베스트코리아(VIK)가 신라젠에 투자하면서부터 시작한다. VIK는 신라젠에 450억원을 투자해 최대주주로 떠오르는데, 당시 VIK의 대표가 바로 이철이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이철 대표는 VIK를 통한 7,000억대의 사기혐의 때문에, 지난 2018년 12월에 재구속된 후, 2019년 9월에 징역 12년형을 받았다. 이철 대표는 과거에 열렬한 노사모의 후원자였으며, 실제로 정치권과 상당히 많이 엮여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신라젠은 상장전과 상장초기에 최대주주와 경영진들이 발 벗고 나서, 회사홍보를 상당히 과하게 했다. 회사가 주주를 위해 주가를 부양시키는 것이 무슨 잘못일까 싶지만, 우리는 냉정하게 판단해야 된다. 주가 자체가 높다고 해서 절대 좋은 회사라 단정 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경영진들이 정말로 주주들을 위한다면, 당장의 주가보다는 회사가 장기적으로 존속할 수 있도록 건실한 회사를 만드는데 힘을 쏟아야 된다. (즉, 신라젠은 이때부터 이미 기업의 본질보다는 포장에 관심이 많았다고 볼 수 있다.)
2015년 11월, 앞서 언급한 7,000억원대의 사기혐의로 VIK의 이철 대표는 1차 구속되는데, 이후 2016년에 보석으로 풀려난다. 그리고 이 시기부터 신라젠의 기업설명회에는 많은 정치권 인사들이 함께 했다. (이 부분 역시 논란이 많을뿐더러 실체적인 진실을 밝히기 어렵기 때문에 이번 신라젠 사태를 파악하는데, 논외로 치자. 중립기어를 놓고 보면, 실제로 이들 정치인들이 정말 적극적으로 개입했을 수도 있지만, 반대로 정말 속았을 수도 있다.)
이후 신라젠은 2016년 12월, 기술성장기업 특례상장으로 코스닥에 상장한다. 개인적으로 특례성장기업은 대체로 투자를 거르는 편인데, 이유는 언제 망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재무상황이 형편없는 회사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거래소는 왜 이런 회사들을 기업공개하는지 의야할 수 있다. 이들 회사가 (잠재적 혹은) 실제로 보유하고 있는 높은 기술력 때문이다. 기술력을 갖춘 중소기업에게 대규모 자금을 공급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이 돈으로 재투자를 유도하는 것이 이런 특례상장을 추진하는 배경이다.
신라젠의 주가는 2016년 12월 6일, 시가 13,500원을 시작으로 약 1년뒤인 2017년 11월 21일에 무려 152,300원까지 상승한다. 이때의 시가총액은 무려 15조원에 달하며, 코스닥 시총 2위로 뛰어올랐다. 단, 이러한 급등은 최고가를 달성한 순간을 기점으로 추세가 무너졌는데, 급락의 시작은 경영진들이 보유하고 있던 주식을 매도하면서부터였다. 문은상 대표이사는 2017년 12월에 보유하고 있던 1,000만주 중에서 156만주를 장내매도했다. 이후 급락을 거듭한 주가는 거래가 정지된 2020년 5월 4일에는 급기야 종가 12,100원까지 떨어졌다.
2019년 8월전까지 문은상 대표이사는 10여 차례에 걸쳐 보유하고 있던 주식을 매도했지만, 주주들은 이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 매번 임상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를 둘러댔고, 주주들 입장에서도 손절을 하기엔 주가가 워낙 많이 급락해 손해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래에 투자하는 심정으로 자금이 임상에 보탬에 되길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주주들의 기대와 달리, 문은상 대표이사는 확보한 자금으로 자신의 부동산을 구매하는데 사용했다.
펙사벡의 임상실패
많은 투자자들이 욕심에 눈이 멀어 속았나 싶지만 절대 그렇게만 볼 순 없다. 당시만 해도 펙사벡이라는 치료제에 대한 믿음이 상당했다. 유전자 재조합으로 만든 백시니아 바이러스로 암세포를 사멸시키고, 면역세포가 자연스럽게 암세포를 공격할 수 있도록 설계된 펙사벡은 암세포 치료의 부작용을 대거 없앤다는 강점이 있었으며, (기존 방사선 치료는 엄청난 부작용을 동반한다.) 이론상으로만 보면 면역항암제 펙사벡은 부위를 가리지 않는 만능치료제로서의 가능성마저 엿보였다.
신라젠은 이러한 연구를 바탕으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펙사벡의 간암 임상3상을 진행했다. 그리고 지난 2019년 8월, 임상결과를 확인한 DMC(Independent Data Monitoring Commitee)가 효과가 거의 없다는 이유로 임상실험 중단을 권고했다. 당연히 주가는 하한가를 맞았고, 같은 달에 검찰은 신라젠을 압수수색하는데, 이유는 펙사벡 임상중단 권고를 공시하기 전에 경영진이 내부정보를 이용해서 주식을 장내매도해 시세차익을 거뒀다는 의혹 때문이었다.
2020년 5월, 문은상 대표이사의 배임횡령이 확정되면서, 신라젠은 거래정지 상태가 됐다. 최대주주의 배임횡령은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후 2차심사에서 기업심사위원회는 회사에 경영개선기간 1년을 부여했다. (2020년 11월 30일~2021년 11월 30일) 참고로 2021년 8월에 문은상 대표는 징역 5년형의 1심결과를 받았다.
기업심사위원회의 3대 요구사항
기업심사위원회(기심위)는 신라젠에 경영개선기간 동안 다음 3가지 사항을 선결조건으로 제시했다. ① 경영진 전면교체, ② 지배구조 개편, ③ 대규모 자본금 확보였다. 그리고 회사는 이를 나름 충실하게 이행했다. 일단 2021년 7월, 두 차례의 유상증자를 통해 엠투엔이 신라젠의 최대주주로 들어왔다. 참고로 엠투엔은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처남인 서홍민 회장이 이끌고 있으며, 대부업체로 유명한 리드코프를 보유하고 있다. (즉, 투자여력이 굉장히 좋은 편이다.)
신라젠은 제3자 배정의 유상증자를 통해 신주 1,875만주를 발행했고, 엠투엔은 총 두차례에 걸쳐 1,000억원을 투자해 지분 20.75%를 확보해 최대주주로 등극했다. 기심위가 최초에 제시한 선결조건에 따르면, 신규 최대주주의 지분이 최소 15%를 확보하는 것이었으니 그것보다 충분히 많이 투자했다.
문은상 대표이사의 보유지분은 유상증자전 5.15%(특수관계인 지분포함 7.38%)였는데, 아직까지도 계속 보유하고 있는 것 같다. (유상증자를 통해 발행주식수가 늘어나면서 공시대상에서 제외된 것 같다.) 문은상 대표이사의 뒤를 이었던 주상은, 김상원 대표이사는 사퇴하고, 장동택 대표이사가 취임했으니 경영진도 전면적으로 교체됐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심위는 기업가치가 유지될 가능성이 낮다는 결론을 내렸다.
신라젠의 전부인 펙사벡은 현재 간암 대신에 신장암으로 바꿔서 임상2상과 흑색종 임상1b, 2상을 함께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전반적인 신약 파이프라인이 되레 줄어들었고, 영업실적의 개선도가 너무 안좋았던 것이 문제같다. 기존 주주들도 중요하지만, 추가적인 피해가 나오지 않도록 거래소가 회사를 철저하게 검증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제 남은 순서는 3심에 해당하는 시장위원회의 심의다. 영업일 기준 20일 이내(2022년 2월 18일)에 열릴 예정이며, 이때 다시 한번 상장폐지 혹은 개선기간 부여가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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