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위메이드의 위믹스 코인 대량매도 논란을 지켜보면서 같은 사건을 두고, 포지션에 따라 이렇게나 입장차이가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리고 그동안 암호화폐를 가볍게 공부만 했지 실제 투자로 까진 이어지지 않았는데,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굉장한 흥미가 생겼다. 블록체인 기술과 암호화폐 경제시스템은 이제 사기나 환상을 걱정하는 단계를 넘어 어느 정도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단계에 이르렀기 때문에 마냥 모른 척할 수만은 없을 것 같다.
① 위메이드의 위믹스 코인 대량매도와 ② 위메이드 주주와 위믹스 코인홀더(=토큰홀더) 간에 펼쳐진 공방은 어찌보면 암호화폐가 제도권에 정착하는 과정간에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일이라 생각한다. 단지, 위메이드가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서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고 있을 뿐이다. (사실 새로운 비즈니스 생태계를 구축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퍼스트 무버라고 무조건 유리하다고는 할 수 없다. 실제로 검색엔진 시장은 라스트 무버(last mover)인 구글이 석권했다.)
사건의 개요
지난 2021년 1월 11일, 위메이드가 자사의 코인인 위믹스를 대량매도 했다는 의혹이 나오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주식시장은 대주주가 주식을 매수매도할 경우에는 공시의무가 있지만, 코인시장은 별도의 공시의무가 없다. (참고로 현행법에 따르면, 무형자산의 매수매도는 공시할 의무가 없다.) 물론 코인을 보유한 토큰홀더의 지갑을 확인해보면, 보유수량의 변화는 알 수가 있다.
위메이드는 백서를 통해 총 10억개의 코인을 발행했으며, 이중 10%는 상장초기에 민간판매로, 7%는 마케팅 비용으로, 9%는 구성원에 대한 보상(일종의 스톡옵션)으로, 나머지 74%는 생태계의 장기적인 성장을 위해 사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생태계의 장기적인 성장이라는 표현이 좀 애매할 수 있는데, 백서에는 파트너십 45%, 플랫폼 30%, 투자 15%, 커뮤니티 10%으로 비중이 명시되어 있다. 즉, 위메이드는 애초부터 나머지 74%의 일부를 매도해 추가적인 투자를 계획했던 것이다.
이미 1,000만개 이상이 매도됐으므로, 위메이드의 보유물량이 73% 라는 뉴스가 많이 나오고 있는데, 회사가 추가적으로 1분기 동안 매달 1,000만개의 위믹스 코인을 매도할 계획을 밝힌 만큼 보유물량은 좀 더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당연하지만 유통물량은 그만큼 늘어난다.) 10억개 중에 1,000만개면 대략 1%인 셈이니 절대 적은 물량은 아니다. 즉, 위믹스 코인의 시세는 당연히 고전할 것이다.
위믹스 대량매도가 문제가 되는 이유
아니 애초에 다 알려진 계획을 바탕으로, 회사가 자사코인을 매도한 것이 무슨 문제가 될까 싶지만, 생각보다 문제가 간단치 않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ICO(Initial Coin Offering)가 뭔지 알아야 된다. 아마 코인을 투자하지 않는 사람들은 생소할 수 있는데, 코인판 IPO라고 생각하면 된다. 기업공개와 마찬가지로 자금조달을 목적으로 코인을 공개한다고 생각하면 쉽다. ICO 간에 백서(white paper)를 발행하며, 적용된 블록체인의 기술력이나 향후 운영계획 등을 투자자에게 발표한다.
위메이드의 경우, 위메이드의 손자회사이자 위메이드트리의 자회사인 싱가폴 법인을 통해 ICO가 진행됐다. 이는 지난 2017년 9월 29일부로 한국에서는 ICO가 전면적으로 금지됐기 때문이며, 이후 2021년 10월 25일 위메이드는 위메이드트리를 흡수합병했다. (단, ICO를 진행했던 위메이드트리 싱가폴 법인은 여전히 개별회사로 남아 있으며, 위메이드의 자회사로 승격됐다.) 참고로 지난 2021년 가을쯤에 게임관련주가 들썩였는데, 이는 당시에 정부가 ICO를 합법화하는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위믹스 코인은 시가총액 200위권의 코인으로 안착하며, 공전의 히트를 쳤다. 기본적으로 시장에 유통되는 물량이 얼마 안되는 데다, 상장기업이 코인까지 상장한 경우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ICO를 통해 위믹스 코인에 투자한 투자자들은 대가로 코인을 받게 되는데, 코인은 주식과 달리 회사의 지배력에 어떠한 영향을 줄 수 없으며, 보상의 대가가 시세차익 밖에 없다는 점이다. 모든 문제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주주 vs 토큰홀더, 이해상충 문제발생
투자자 입장에서는 위험에 대한 보상체계가 합리적이어야 신뢰를 가지고 투자자금을 맡길 수 있다. 일반적으로 회사가 추가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서는 유상증자 혹은 전환사채(Convertible Bond)를 발행한다. 이 과정에서 주식수가 많아져 주당가치가 희석되므로 대주주, 개인주주할 것 없이 주주라면 모두가 희생한다.
그런데 상장회사가 ICO를 통해 추가자금을 조달한다고 생각해보자. 주주들은 어떠한 희생없이 자금을 모을 수 있다. 즉, 토큰홀더들의 쌈짓돈을 덜어내 주주들을 위해 사용하는 셈이 된다. 실제로 위메이드는 코인을 매도한 돈으로 플랫폼의 생태계를 강력하게 구축하겠다는 명목 하에 여러 회사들을 인수하거나 투자하고 있다. 올해 들어서 특히 공격적이다. 선데이토즈(애니팡)와 멋쟁이 사자처럼(실타래)에 전략적인 투자를 진행했고, 이외에도 레드폭스게임즈 등과도 위믹스에 온보딩(on boarding)하는 MOU 계약을 체결했다.
위메이드가 엄청난 돌풍을 일으켰던 이유는 자사의 신작인 '미르4 글로벌'을 통해 위믹스 코인을 합법적으로 벌 수 있는 P2E(Play to Earn) 모델을 성공적으로 안착시켰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게임을 하면 할수록 코인이 쌓인다는 것만큼 게이머들에게 좋은 소식이 있을까? 이 '미르4 글로벌' 내에서 사용되는 공식화폐가 바로 위믹스 코인이다. (흑철채굴 → 게임내 재화인 드레이코 → 위믹스 코인)
그런데 이 위믹스 코인이 단순히 '미르4 글로벌'뿐만 아니라 위메이드가 제공하는 플랫폼에 올라탄 모든 게임들에 적용된다면, 위믹스는 위메이드 플랫폼에서만큼은 기축통화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다. 다시 말하지만, 위메이드가 얘기하는 생태계 구축이라는 것은 더 많은 게임들이 위믹스를 공식화폐로 사용하도록 플랫폼에 안착시키는 것을 뜻한다. 회사의 공식적인 목표는 2022년 연말까지 100개의 게임을 플랫폼에 온보딩시키는 것이다.
다시 문제가 되는 부분으로 돌아가 보자. 이 위믹스의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는 당연히 엄청난 자금이 들어가는데, 위메이드가 보유하고 있는 위믹스 코인을 팔아 충당한다면, 이는 같은 투자자인 토큰홀더의 희생을 강요하게 된다. (극단적으로 말해 토큰홀더는 경영진과 주주들의 금고 혹은 저금통으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ICO를 통해 위믹스 코인에 투자한 투자자들이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시세차익 밖에 없다. 당연하지만, 위믹스 코인은 배당도 없다.
여론이 안좋아지면서, 위메이드의 장현국 대표는 지난 2022년 1월 13일 유튜브 알고란 채널을 통해 위믹스 매도와 관련된 입장표명을 했다. 궁금해서 해당 인터뷰를 끝까지 봤는데, 위믹스와 위메이드는 한몸이라는 식으로 퉁치는 것은 해명치고는 많이 추상적이지 않았나 싶다. 사실 위메이드 입장에서 보면, 이번 사태는 상당히 억울한 측면이 있다. 회사는 이 모든 일들을 합법적인 테두리 내에서 진행했기 때문이다.
다만, 별다른 예고없이 매도한 부분은 마치 카카오페이 경영진에게 느꼈던 도덕적 해이에 관련된 불만을 야기시킬 수 있다는 점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특히 코인은 아직 시장형성기 단계에 있기 때문에, 신뢰를 잃으면 단숨에 나락간다는 점을 조심해야 될 것 같다. 장현국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이번 위메이드의 위믹스 코인 대량매도는 시작에 불과하며, 훨씬 더 많은 물량이 시장에 나올 것이다.
결론적으로 위믹스 토큰홀더가 아닌 위메이드 주주입장에서는 이번 사태가 사실 표면적으로는 굉장히 좋은 호재이지만, 시장에서 신뢰를 잃을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건지 되레 급락하고 말았다. 이후 회사 측에서 2021년 4분기 실적발표 부터는 위믹스 코인물량에 대해서도 공시할 것이며, 토큰홀더에 대한 보상책으로 배당을 고민 중이라고 밝혔으므로, 앞으로 어떤 식으로 상황이 전개될지 좀 더 지켜봐야 될 것 같다.
개인적으로 장현국 대표가 유튜브 채널에 직접 출연해 시장에 오해가 될 수 있는 부분들을 적극적으로 소명하려는 모습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비록 위메이드의 오너는 아니지만, 시가총액 4조 5,918억원의 중견기업을 이끌어가는 대표로서는 굉장히 적극적이고 소탈한 모습이었다. (아이파크 붕괴라는 훨씬 더 큰 사고를 친 HDC현대산업개발의 대표이사가 성의없이 대응하던 모습보다는 훨씬 호감이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