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종목별로 너무 많은 악재가 쏟아져서 그런지, 이를 스터디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는 느낌이다. 특히, 아직 악재의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의 회사들은 왠지 모르지만 앞으로가 훨씬 더 불안하게 느껴진다. 그런 회사들로는 에코프로 그룹이 있다. 현재 에코프로 그룹은 공장 화재사고와 함께 최대주주, 계열사 임원들의 내부자거래 의혹에 휩싸인 상태다.
특히 내부자거래 의혹은 단순히 경영진들이 내부정보를 활용해 이익을 얻은 정도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현재 모든 상장사들의 화두는 ESG경영이다. 최근 한창 화제가 됐던 EU택소노미처럼 한번 기준에 미달된 기업은 기관이나 외국인들이 투자를 기피할 수밖에 없다. 상상해보자. 앞으로 연기금이 과연 에코프로에 추가로 투자할 수 있을까? 혹시라도 투자했다가 손실이라도 나면, 부도덕한 회사에 투자했다는 비난이 쏟아질 것이 뻔하기 때문에 보신주의가 만연한 공무원들이 리스크를 자진해서 감당할리가 없다.
발주회사들은 어떨까? SK이노베이션(=SK온)의 담당자는 앞으로 에코프로비엠과 선뜻 양극재 계약을 맺을 수 있을까?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회사는 반드시 내부에 다른 문제가 쌓여있을 확률이 높다. 따라서 추후 에코프로비엠은 HDC현대산업개발처럼 저가수주하지 않으면, 수주경쟁에서 불리할 가능성마저 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에코프로비엠의 양극재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점과 현재 2차배터리 시장 자체가 도입단계인 만큼, 에코프로비엠의 양극재 물량이 시장에서 꼭 필요하다는 점이다.
에코프로의 이동채 회장과 계열사 임원들의 내부자 거래와 관련된 내용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최대주주의 지배력이 약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는데, 이참에 에코프로 그룹의 지배구조를 제대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성장하는 회사인 만큼 당연히 여러가지 복잡한 이슈들은 당연히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지배구조만큼은 절대 양보할 수 없으므로, 꼭 숙지해야 된다.
에코프로 그룹 지배구조
지난 2016년 5월, 에코프로는 2차전지소재 사업부문을 물적분할해 에코프로비엠(BM)을 세웠으며, 분할된 에코프로비엠은 지난 2019년 3월에 상장됐다. 에코프로에 남아있던 환경 사업부문은 비교적 최근인 2021년 5월, 인적분할을 통해 에코프로에이치엔(HN)으로 분할됐으며, 남아있는 에코프로는 지주사 역할을 하게 됐다.
처음에는 최대주주인 이동채 회장이 당연히 에코프로에이치엔 역시 물적분할을 하고 싶었겠지만, 지난 에코프로비엠을 물적분할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비난에 직면한 적이 있기 때문에 어쩔 수없이 인적분할을 선택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분석을 끝내고 보니, 지난 에코프로에이치엔의 인적분할은 지배력 관점에서 생각하면 훨씬 영리했다고 봐도 될 것 같다. 따라서 분할과 관련된 이슈가 있는 많은 기업들에게 중요한 영감을 줄 수 있는 케이스가 될 것 같다.
에코프로, 에코프로에이치엔 지분스왑
에코프로의 인적분할을 통해 분할된 에코프로에이치엔의 주주구성은 에코프로의 기존 주주구성과 동일했다. 따라서 목표는 이동채 회장이 보유하고 있던 에코프로에이치엔 주식을 대가로 에코프로 주식을 확보하는 것이다. 당연히 에코프로에이치엔의 주식가치가 고평가되고, 동시에 에코프로의 가치가 저평가되면, 이동채 회장은 더 많은 에코프로 주식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1단계 : 에코프로에이치엔 무상증자
일단 에코프로에이치엔은 가치를 향상시켜야 됐다. 그래서 실시한 것이 바로 에코프로에이치엔의 파격적인 무상증자였다. 보통주 1주를 가지고 있는 주주들에게 무상으로 3주를 추가로 줬다. 참고로 무상증자는 회사가 자본항목에 있는 잉여현금을 자본금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주식을 추가로 발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회사에 현금이 상당히 여유있음을 의미한다.
물론 주주들 입장에서는 무상증자로 주식을 추가로 받는다 해도, 권리락 때문에 주당가격이 낮아지기 때문에 주식가치에는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무상증자를 실시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회사의 재무건전성이 굉장히 좋다는 신호임과 동시에 주가가 낮아진 상태에서 유통물량이 늘어나기 때문에 거래가 좀 더 활발해지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무상증자는 대표적인 주가부양책 중 하나로 손꼽힌다. 무상증자를 통해 에코프로에이치엔의 발행주식수는 기존 3,826,233주에서 15,304,932주까지 늘어났다.
2단계 : 에코프로 유상증자
반대로 에코프로는 가치를 떨어뜨리면 좋다. 그래서 에코프로는 유상증자를 통해 95,441원에 신주발행을 했다. 유상증자는 자본금을 외부에서 추가조달하는 과정에서 주식을 발행하는 것이기에 보통은 회사에 현금이 부족하다는 시그널로 인식된다. 물론 의미없는 유상증자를 하면, 주주들이 거세게 반발하기 때문에 에코프로의 지주회사 전환을 위해 유상증자를 통해 새롭게 발행될 신주는 추후 에코프로에이치엔 주식을 공개매수할 때 지분스왑 용도로 활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에코프로 1주 : 에코프로에이치엔 1주
= 95,441원 : 110,500원
= 1 : 1.15778334258862
3단계 : 에코프로에이치엔 공개매수
이후 에코프로는 에코프로에이치엔 주식을 110,500원에 공개매수했다. 에코프로에이치엔의 무상증자를 통해 주식을 대량 확보한 개인투자자들은 회사의 공개매수에 응했으며, 기존 대주주였던 이동채 회장과 친인척들, 이룸티앤씨 등도 공개매수가에 에코프로에이치엔 주식을 전량 넘기고 에코프로 주식을 받았다. 예를 들어 에코프로에이치엔 1주를 팔면, 에코프로 1주와 15,441원(=110,500원-95,441원)을 받는 식이다.
최종적으로 공개매수에 응한 에코프로에이치엔의 물량만큼 에코프로의 신주가 유상증자됐는데, 이 과정에서 5,274,285주의 에코프로 신주가 추가발행됐고, 결국 이동채 회장과 일가는 지분율을 거의 27~28%에 가까운 수준까지 확보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이전보다는 확실히 그룹의 지배력이 강화됐다고 할 수 있다. 에코프로는 에코프로에이치엔의 지분 31.4%를 확보해 지배력을 확보했으며, 지주회사로서 갖춰야 할 조건인 자회사 지분 30% 이상을 확보했다.
경영권 분쟁 vs 2세 승계
개인적으로 이동채 회장은 현재 어떤 식으로 2세 승계를 준비할지 고민 중이라고 생각한다. 1959년생이라 다소 이른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현재 후계자도 명확하지 않을뿐더러 승계전략도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동채 회장은 자녀가 둘 있는데, 1989년생인 장남(이승환)은 에코프로에서 신사업 기획팀장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1991년생인 둘째(이연수)는 에코프로의 계열사인 아이스퀘어벤처스에서 심사역으로 근무하고 있다.
이들이 보유하고 있는 지분은 에코프로 내 또 다른 지주회사인 이룸티앤씨와 에코프로에 흩어져 있는데, 비율은 거의 비슷하다. 요새는 장남이라고 해서 사업을 무조건 승계받는 분위기가 아니기 때문에 더 능력있는 자녀가 뒤를 이를 가능성이 높다. 예전 한진그룹 사례를 봐서 알듯이 남매라고 해서 경영권 다툼이 안일어나는 것은 전혀 아니니, 어느 순간부터는 이동채 회장도 승계구도를 안정화하기 위해 둘 중에 한명을 선택하거나 그룹을 둘로 나누는 방향을 고민하게 될 것이다. (근데 둘로 나누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2세 승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동채 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에코프로 지분이며, 지렛대로 활용될 회사는 이룸티앤씨다. 따라서 당분간은 에코프로에서 최대한 배당을 많이 받아 현금을 확보할 것이며, 에코프로 ICT도 상장을 시켜 이룸티앤씨가 구주매출을 통해 대규모 현금을 마련할 수 있게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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