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덕후인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 장르는 범죄물이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문화재가 주요 모티브(motive)로 활용되면서, 다양한 매력을 가진 도둑들이 모여 기발한 아이디어로 유물을 훔치는 영화는 재미가 없으래야 없을 수가 없겠구나 싶어 기대를 많이 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글쎄... 영화 '도굴'은 뭔가 어정쩡했다. 딱히 재밌는건 아닌데, 그렇다고 재미없지도 않았다. 아마도 케이퍼 무비(caper movie)의 가장 묘미인 주인공과 빌런(villain)들 간에 치열한 두뇌싸움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회심의 카드로 등장하는 반전마저 억지스러웠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마도 영화가 애초에 동화적 감성을 깔아두고 시작하는 판타지였다면, 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을텐데, 홍보할 때 리얼리티를 너무 강조한 탓에 되레 역효과가 난 것 같다.
영화 '도굴'이 내세우는 장르는 공식적으로 범죄오락물이다. 따라서 중간중간에 분위기를 가볍게 해주는 코미디가 버무려져 있긴 한데, 솔직히 유치하고 중2병스러웠다. 반면, 온 가족이 함께 보기에는 너무 잔인한 장면들이 있어, 내가 만약 부모라면 아이에게 시청을 허락할 것 같지 않다. (공식적으로 영화는 12세 관람가인데, 어떻게 낚싯바늘을 입에 물리고 꽉 버티라는 장면이 통과됐는지 이해가 안된다. 더불어 해당 장면을 굳이 잔인하게 표현하지 않았더라도, 영화를 몰입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기 때문에 불필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닝타임 114분이 그다지 지루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그래서 연휴나 주말에 킬링타임용으로 즐기기에는 꽤나 괜찮을 것 같다. 기본적으로 주요 출연진들이 검증된 배우들로 구성됐다. 이제훈, 조우진, 임원희 배우는 뭐 다들 믿고 보는 배우들이고, 최근 몇년사이에 주연급으로 떠오르고 있는 신혜선 배우의 연기 역시 무난하게 괜찮다. (개인적으로 딕션이 참 좋다고 생각한다.) 역사적인 모티브를 주요 내러티브로 차용한 만큼 해당 사건의 배경지식을 갖춘 상태에서 관람하면, 한층 더 깊이있는 이해를 더할 수 있을 것 같아 준비해봤다.
영화 도굴 속 역사 모티브 3가지
① 역사 모티브 1 : 황영사 9층석탑
주인공 이제훈이 가장 먼저 털었던 것이 바로 황영사 9층석탑에 있던 금동불상이다. 아마도 지난 1989년 7월에 분실했다 30여년 뒤인 2017년 3월에 돌아온 부여 무량사의 금동아미타여래좌상 도난사건을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영화에 나온 석탑의 외관을 고려해봤을 때, 제작진이 고려시대의 석탑을 기반으로 제작한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본래 석탑이라는 것이 거대한 돌을 깎아 통으로 이를 구현한 것이 아니라 층 단위로 조각해 쌓아 올리는 방식이라는 것도 알 수 있다.
보통 석탑 안에는 국토수호와 왕실의 안녕을 염원하며, 불상이나 사리장엄구, 불경 등을 간직해두는 경우가 많다. 이제훈이 석탑에서 도굴한 금동불상은 금동관음보살좌상을 본떠 만들었으며, 원가가 생각보다 비싼 1,000만원이나 들었기에 촬영기간 내내 굉장히 소중하게 보관했다는 후일담이 있다. 솔직히 대부분의 금동불상들이 서로 비슷하게 생겼다는 점을 감안해도 영화 속의 금동불상이 금동관음보살좌상과 상당히 비슷함을 알 수 있다.
② 역사 모티브 2 : 고구려 벽화
국사시간에 배웠던 내용을 돌이켜보면, 고구려 초기의 무덤양식은 돌무지무덤이고, 후기는 굴식돌방무덤이다. (영화에서는 봉토돌방식무덤으로 묘사된다.) 후기에 제작된 돌방무덤에는 자연스레 석벽이 세워질 수밖에 없었으며, 이 석벽에 벽화가 많이 그려져 있다. 무덤 안에 벽화를 그릴 때, 암반에 석회를 덧칠한 후에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암반의 색깔이 고르지 않은 탓에 아예 하얗게 덧칠해서 마치 스케치북처럼 하얗게 만든 것이 아닐까 싶다.
벽화는 오랜 시간동안 지하에 있었기 때문에 온도와 습도에 약하므로 표면에 안정제를 뿌린 뒤, 다이아몬드로 코팅한 실톱으로 자른다고 한다. 실톱으로 잘라낼 때 손상된 부분은 복원하는 과정에서 다시 살려내는 것이다. 영화에서 대담하게 벽화를 도굴하는 것은 영화적 상상력이 아니라 실제 있었던 일이다. 과거 고구려의 수도였던 국내성이 있었던 중국 지린시(集安)에 위치한 고구려 봉토무덤 2곳의 벽화가 지난 2000년 5월과 8월에 각각 도난당했다. 안타까운 점은 해당 무덤의 관리여부는 중국정부의 마음이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이다.
③ 역사적 모티브 3 : 전어도
가장 눈길에 갔던 유물은 전어도(傳御刀)였다. 영화에서는 조선판 엑스칼리버로서, 그 칼을 가지면 세상의 주인이 된다는 설화를 간직한 것으로 묘사된다. 전어도에 관해 전해지는 민담에 따르면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결정하고 진군을 명령했을 때, 손에 치켜들었던 검이라고 한다. 전어도 관련된 설화들 중에 상당히 재밌는 것이 많다.
나옹대사가 함흥지역을 돌아다니다 천자가 날 수 있는 묏자리를 발견했는데, 이를 당시만 해도 어린동승이었던 무학대사가 이성계의 아버지, 이자춘에게 얘기를 전했다. 놀란 이자춘이 해당 지역의 묏자리를 파보니, 칼자루에 용머리가 달린 황금빛 칼이 나왔고, 이를 이성계에게 줬다고 한다. (참고로 함흥은 이성계의 고향이며, 말년에 태종 이방원의 즉위를 못마땅하게 여겨 고향으로 돌아가 방문하는 차사들마다 모조리 활로 쏴 죽여 나온 사자성어 함흥차사(咸興差使)가 유래한 곳이다.)
이후 쿠데타에 성공한 이성계가 고려의 마지막 왕인 우왕을 죽이려 했을 때, 고려의 왕손들은 모두 겨드랑이에 비늘을 가지고 있는 용(辰)의 후손이라 일반적인 무기로는 해할 수 없지만, 이 전어도를 통해 시해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때 전어도는 박살났지만, 이후 이방원이 아버지 이성계를 위해 새로 만들어 바쳤다고 한다. (이 모조품 전어도가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모조품이라고는 하지만, 제작자가 무려 태종 이방원인 만큼 역사적 가치는 결코 뒤처지지 않다.)
조금 변주된 설화에 따르면, 이성계가 우왕을 살해하기 직전에 용을 상징하는 사진참사검(四辰斬邪劍)이 우왕을 위해 이성계의 전어도와 3일 밤낮을 싸우다 결국 패배했는데, 이때 전어도 역시 탈진했는지 금이 가며 부서졌다고 한다. 이후 사진참사검의 존재가 두려웠던 조선왕조에서는 용과 대척되는 동물인 호랑이를 상징하는 사인참사검(四寅斬邪劍)을 만들어 균형을 맞췄다고 한다. (사진참사검이나 사인참사검 모두 순수한 정기를 가지고 있어, 귀신을 쫓는다고 알려져 있으며, 각각 용의 해(辰年), 진월(辰月), 진일(辰日), 진시(辰時)와 호랑이의 해(寅年), 인월(寅月), 인일(寅日), 인시(寅時)에 제작할 수 있으니, 제작주기는 12년인 셈이다.)
이렇듯 이성계의 전어도와 관련된 내용은 현재 가공에 가까운 설화와 팩트에 가까운 역사가 혼재됐다. 영화에서는 한걸음 더 나아가, 전어도가 전설과 달리 실제로는 왕실의 보물로 전해져 오다, 선조가 임진왜란이 끝난 후 왜구에 의해 타버린 성종의 재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그 넋을 위로하기 위해 선릉에 함께 묻은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실제로 선릉은 성종의 묘이며, 임진왜란 때 왜구들에 의해 도굴당했다. 조선은 유교사회라 사치품을 왕릉에 묻지 않았는데, 왜구들이 왕릉이라 해서 기껏 팠는데,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자 열받아 성종의 시선을 태워버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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