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킹 리차드'는 오랜만에 보는 정말 괜찮은 작품이었다. 확실히 지난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될만했다. 그중에서도 생애 최초로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탄 윌 스미스(Will Smith)의 진정성 넘치는 연기는 가히 엄청났다. 아쉬운 점은 그가 시상식에서 벌인 커리어 최악의 실수 때문에 모든 감동이 무너졌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동네 양아치들에게 주먹질을 당해 힘들어하던 그가 현실에서는 도리어 주먹을 날려버리니, 관객의 입장에서는 이율배반적인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키우고 있는 모든 부모님들께 이 영화의 시청을 꼭 권하고 싶다. 영화에 등장하는 실존 테니스 레전드, 비너스 윌리엄스(Venus Williams)와 세레나 윌리엄스(Serena Williams)의 아버지, 리차드 윌리엄스(윌 스미스)처럼 아이들을 훈육해야 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올바른 부모가 되는 방법을 따로 가르치는 곳이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하는지 보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좋은 방법만 골라서 받아들이면 된다.
영화 킹 리차드 솔직후기
가장 인상적이었던 영화 속 장면은 아버지 리차드(윌 스미스)가 아이들에게 끝없는 믿음과 확신을 줬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훌륭한 동기부여가였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은 시합에서 아버지가 함께 지켜본다는 사실만으로도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존재감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그는 자녀들에게 헌신적이었으며, 흔들리는 내면을 최대한 감추기 위해 아이들 앞에서 만큼은 어떻게든 당당하려 연기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자만하지 않도록 겸손할 것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는 사자성어에서 알 수 있듯이, 유년시기에 어떤 경험을 했는지가 평생을 좌우한다. 리차드는 그가 겪고 있는 지독한 가난이 아이들에게 대물림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어려운 환경에서도 늘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예를 들어 야간에는 경비업무를 보며 생계를 꾸려가는 한편, 낮에는 아이들을 위해 테니스 코치를 자임해 연습을 계속 지원했다.
더불어 아이들에게 확실한 재능이 있었던 테니스에만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아이답게 성장할 수 있도록 학교생활에 충실히 할 것을 독려했다. 숙제를 끝내지 못했거나 시험성적이 안좋으면, 훈련에 참여하지 못하게 했을 정도로 신경을 많이 썼다. 이 부분을 절대 타협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족들과도 가끔 다툼을 벌였지만, 그의 진심을 이해한 가족들도 노력을 많이 했을거라 추측된다. 그래서 이들 자매가 테니스 밖에 할 줄 모르는 바보가 된 것이 아니라 지성미를 갖춘 운동선수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비너스 윌리엄스와 세레나 윌리엄스는 유년시절에 주니어 경기에 출전하지 않는 대신 다양한 과외활동에 참여하는데 주력했다. 따라서 이들 자매는 피 말리는 경쟁을 통한 성장이 아닌 자연스레 놀이와 같은 훈련을 통해 성장할 수 있었다. 너무 어린 나이부터 경쟁이라는 스트레스를 겪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아버지 리차드의 결단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던 대목이다.
뿐만 아니라 이로 인해 다른 경쟁자들에게 그들의 전력이 철저하게 숨겨졌기 때문에 등장과 동시에 곧바로 라이징 스타가 될 수 있었다. 체력훈련에 중점을 줬던 그녀들이 파워 테니스를 즐겼던 탓에, 이를 견제하기 위해 경쟁자들도 훈련의 방향을 체력향상으로 바꾼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이때를 계기로 테니스의 트렌드가 변했다고 평가하는 전문가들도 많다.
영화 '킹 리차드'는 언니, 비너스 윌리엄스의 성장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실제로 한살이 더 많은 비너스 윌리엄스가 좀 더 빠르게 프로의 무대에 데뷔했다. 영화에서 아버지가 언니 못지않게 테니스에 진심이었던 동생, 세레나 윌리엄스에게 훗날 위대한 선수가 될 것임을 암시하는 장면도 나오는데, 실제 현실을 반영한 듯해서 소름 돋기도 했다. 현실에서 세레나 윌리엄스는 언니의 성과를 뛰어넘었으며, 남녀 통틀어 역대 4명밖에 달성하지 못한 골든 그랜드 슬래머가 되어, 역사상 가장 뛰어난 플레이어 대접을 받고 있다.
참고로 테니스 4대 메이저 대회인 US오픈과 호주오픈(하드), 영국 윔블던(잔디), 프랑스 롤랑가로스(클레이)에서 우승하면, 그랜드 슬래머가 되는데, 여기에 올림픽까지 우승하면, 골든 그랜드 슬래머가 된다. 세레나 윌리엄스 하면 사실 라이벌이었던 마리아 샤라포바가 떠오른다. 그래서 후속작품이 나온다면, 자매가 아버지의 품을 떠나 어떤 식으로 성장하는 지를 그릴거라 예상했는데, 이때 마리아 샤라포바가 등장하지 않을까 상상했었다. (물론 현재는 윌 스미스가 사실상 판을 엎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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