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영화를 편식해서 보는 편은 아닌데, 확실히 당시의 감정을 많이 타게 되는 것 같다. 최근에 개인적으로 고민할 일들이 많아서 그런지, 무조건 즐겁고 신나는 영화들을 찾고 있다. 신나는 영화라면 역시나 케이퍼 무비다. 케이퍼 무비(caper movie)는 기본적으로 범죄영화의 하위장르인데, 영화 '도둑들'이나 '오션스'시리즈 같이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이 특징이다.
주인공이 마블의 영화 '어벤저스'처럼 다채로운 특기와 성격을 가진 캐릭터들을 하나하나 모아서, 이들과 함께 목표로 하는 막대한 현금이나 보석, 혹은 중요한 문화재 등을 훔치는 계획을 설계하고 실행하기 까지를 묘사한다. 관람객 입장에서는 평소 상상에서나 가능할법할 일을 영화에서 대신 보여주니 당연히 흥미진진할 수밖에 없다. 뭔가 일탈하는 느낌이 든달까? 법의 테두리 내에서 불법을 간접체험하는 것이다.
단단해 보이는 주인공과 주변 캐릭터들과의 팀워크는 영화가 진행되는 와중에 무조건 무너진다. 스토리에 위기와 시련을 부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등장하는 클리셰와도 같은 설정이다. 개인적으로는 감독이 이 클리셰를 어떤 식으로 창의적으로 잘 설득력 있게 연출했는지에 따라 영화의 퀄리티가 많이 갈린다고 생각한다. 최근 한국에서는 마치 흥행공식 중에 하나로 스타배우와 케이퍼 무비의 조합이 남발되고 있어, 어디서 본듯한 비슷한 작품들이 넘치게 됐다. 최근에 봤던 케이퍼 무비들 중에서 킬링타임 용으로 괜찮은 작품들을 한번 꼽아봤다.
킬링타임 용으로 딱인 케이퍼 무비 TOP 4
① 레드 노티스
앞으로 추천하는 케이퍼 무비들 중에 하나만 봐야 된다면, 무조건 레드 노티스(Red notice)다. 재미와 볼거리, 작품성 모두를 제대로 챙긴 작품이다. 주연배우로 무려 드웨인 존슨, 라이언 레이놀즈, 갤 가돗이 나온다. (연기논란이 없었던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이들이 모여 클레오파트라가 남긴 보석(알)을 훔치는 것이 목표인데, 스케일도 크고, 액션도 그럴듯하다. 넷플릭스에서 엄청나게 흥행하며, 현재 시리즈 2편과 3편의 제작이 결정된 상태다.
② 도굴
문화재를 도굴한다는 신박한 소재를 가지고 제작됐다. 고구려 벽화, 전어도 등과 같이 흥미로운 역사적인 소재들이 등장하는 탓에 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대체로 재밌게 관람할 수 있다. 다만, 이제훈의 연기가 연극처럼 과장돼서 살짝 오글거리며, 감독이 지하에서 도굴하는 장면을 연출할 때 빛을 너무 제한시켜서, 화면이 잘 보이지 않는 게 영화의 몰입을 방해한다. 뿐만 아니라 케이퍼 무비의 강점인 캐릭터쇼도 살짝 약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에 상당히 충실했기 때문에 전반적으로는 괜찮았던 것 같다.
③ 파이프라인
송유관의 기름을 중간에 도유(盜油)한다는 역시나 범상치 않은 소재를 가지고 제작됐다. 영화 '도굴'에 비해서는 훨씬 더 캐릭터들의 개성이 잘 표현됐다. 캐릭터 하나하나에 고민을 한 티가 많이 난다. 하지만 캐릭터에 비해 영화 전반의 서사는 상당히 약하다. 그래서 개연성과 당위성이 떨어져 스토리에 대한 몰입감이 떨어진다. 주인공인 서인국의 연기는 좋았지만, 빌런인 이수혁의 연기가 많이 어색하다.
④ 꾼
전형적인 한국형 케이퍼 무비의 공식을 따라간 영화다. 작품성만 보면 엉망이지만, 킬링타임용으로는 제격이다. 일단 스타배우들이 대거 등장하는 탓에 보는 맛이 있으며, 감독이 소소한 재미를 주기 위한 장치들을 많이 넣었다. (너무 많이 넣어서 살짝 조잡하게 느껴질 정도다.) 폰지사건으로 유명한 조희팔 사건을 모티브로 제작됐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명분을 가지고 있는 홍길동 같은 사기꾼(현빈)과 범죄자보다 나쁜 검사(유지태)와의 대결구도로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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