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나 영국과 같이 공인받은 백신을 개발한 국가들의 접종률이 높아짐에 따라 자연스레 다른 국가들에게도 백신공급이 이뤄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우방국이나 선진국들의 증여에 기댈 수밖에 없는 개발도상국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반가운 일이긴 하지만, 이마저도 3차접종인 부스터샷을 이유로 수급이 늦어지고 있는 형편입니다. 베트남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일단위 확진자가 15,000명 수준에 사망자수 역시 400여명에 달할 정도로 위기가 고조됐던 순간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중국을 대체하는 세계의 공장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베트남을 그냥 무너지게 둘수 없었던지 한국과 미국, 일본 등이 백신과 백신주사기, 기부금 등을 지원하면서, 상황이 조금씩 좋아지고 있습니다. 코로나 최대 피해지역이라 할 수 있는 호치민에 우선적으로 백신이 투입됐으며, 이제는 어느 정도 1차접종이 완료돼서, 일부는 2차접종을 시작한 상태입니다. 앞으로 베트남은 백신을 2회 접종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간에 차별이 강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2회접종을 마친 사람은 그린패스를 획득해서 통행의 자유를 얻을 테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매번 유효기간이 있는 음성확인서를 준비해야 이동이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호치민 시민들은 주요 백신이라 할 수 있는 화이자와 모더나, 아스트라제네카를 접종했습니다. 문제는 다른 지역에서는 이들 백신의 수급이 여전히 원활하지 않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중국백신인 시노팜을 접종해야 되는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베트남 역시 중국에 대한 반감과 불신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접종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실제로 호치민에서 중국백신의 접종을 거부하며 화내는 영상들이 페이스북을 통해 확산됐고, 어쩔 수 없이 접종한 사람들은 정말 거의 울기 직전의 참담한 모습을 하고 있는 사진들이 언론에 도배된 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베트남에서는 주요 백신에 대한 혹시 모를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전혀 없습니다. 아스트라제네카는 굉장히 좋은 백신으로 대접받고 있으며, 나이를 불문하고 인기가 매우 높아 많은 필수인력인 사무직 공무원들에게 우선적으로 투입됐습니다. 심지어 백신접종을 고민하는 사람들을 설득할 때, 농담반 진담반 '너 그러다 중국백신이나 베트남백신 맞아야 된다.'라고 충고할 정도입니다. 그리고 이 말은 점차 현실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앞서 언급한바와 같이, 호치민은 주요 백신들이 먼저 풀렸기에 많은 분들이 이들 백신의 접종에 성공했지만, 지방의 성(省)들까지는 백신이 원활하게 공급되고 있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정말 기약없는 봉쇄를 지속하고 있는데, 문제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사람들은 당장에 먹을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 중국백신이 도입되자 그야말로 말 그대로 없어서 접종을 못할 정도로 중국백신의 인기가 치솟았고, 어떻게든 접종을 하기 위해 여기저기 인맥을 총동원하는 촌극을 벌이고 있을 정도입니다.
차마 중국백신만큼은 절대 맞지 못하겠다고 버티던 저 역시 결국에는 접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부터 나오는 내용들은 절대 중국백신의 접종을 추천하는 내용이 아니며, 어쩔 수 없이 접종해야 되는 열악한 상황에 놓인 분들에게 참고용으로 활용되길 바랍니다. 대부분 백신을 접종하기 직전에 절박한 마음으로 조사했던 내용들이며, 최대한 객관적으로 알아보긴 했지만, 조사 전에 '시노팜을 접종해도 분명 괜찮을 거야.'라는 답을 이미 정해놓은 상태에서 이유를 찾은 것이므로, 어쩔 수 없는 자기기만(?)이 포함되었음을 함께 고려하길 바랍니다.
시노팜 접종에 관해 궁금했던 점
① 중국백신 맞아도 정말 안전할까요?
일단 그나마 위안이 되는 점은 베트남에서 접종을 하고 있는 시노팜(Sinopharm)이 WHO가 사용을 긴급승인한 백신이라는 점입니다. 현 시간부로 WHO가 긴급승인을 허락한 백신은 총 8개가 있는데, 이중에 중국백신은 크게 시노팜과 시노백(Sinovac)이 있습니다. 사실 이들은 백신의 이름이 아니며 백신을 개발한 회사의 이름입니다. (마치 화이자가 백신의 이름이 아니라 회사명인 것과 비슷합니다. 시노팜은 베로셀(Vero-Cell), 시노백은 코로나백(CoronaVac)이 백신의 정식명칭입니다.)
시노팜의 임상기간이 화이자나 모더나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았으며, 일부 임상실험에 따른 결과가 공식적으로 발표되지 않은 것 역시 사실로 보입니다. 하지만 화이자나 모더나 역시 기존에 출시됐던 백신들에 비해 임상기간이 짧았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다만, 최소한 임상결과만큼은 확실하게 공개했기에 좀 더 믿음직스럽습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세계 여러 보건당국이 2020년 연말에 백신사용을 긴급승인했기 때문에 임상기간을 짧아질 수 있었으며, 이 때문에 백신접종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혹시 모를 부작용에 대해 걱정하는 것은 어찌보면 굉장히 일리 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시노팜의 부작용은 상대적으로 적을 거라 예상됩니다. 중국 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부작용이 단 한건도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솔직히 믿고 거르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을 정도로 믿음이 가진 않습니다. 언론통제가 엄청나게 강한 중국이기에 접종 후기 등을 자유롭게 남길 수 없다는 점이 한몫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런 점을 고려하더라도, 시노팜의 심각한 부작용 사례는 많아 보이지 않습니다. 집요하게 부작용 사례를 찾아보니, 페루에서 진행했던 글로벌 임상때 64세 노인의 다리가 마비되는 현상이 발생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다만, 공식적으로 이 환자는 급성마비성질환인 길랑바레증후군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보이며, 원래 지병으로 당뇨병을 가지고 있어 합병증이 발생했을 가능성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고 합니다.)
백신 제작방식을 살펴보면, 시노팜은 전통적인 제작방식인 불활성화(inactivated) 방식을 사용해 안정성이 높다는 평가가 일부 있습니다. 불활성화 방식이란 이미 독성이 매우 약화된 바이러스를 인체에 투입해서 이를 통해 스스로 자가면역체계를 만들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불활성화라는 뜻이 한번에 안와닿을 수 있는데, 그냥 죽었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습니다. 그래서 불활성화 방식으로 제작된 백신을 사백신(死)이라 하며, 반대로 mRNA 방식으로 제작된 백신을 생백신(生)이라고 합니다.)
② 시노팜에 2가지 종류가 있다던데, 사실인가요?
시노팜의 백신은 2가지 종류가 있는데, 베이징 생물제품연구소(BIBP/Beijing Institute of Biological Products)에서 생산된 북경생물(北京生物)과 우한 생물제품연구소(WIBP/Wuhan Institute of Biological Products)에서 생산된 우한생물(武汉生物)이 있습니다. 특이할만한 점이 있다면, 북경생물은 WHO에서 사용을 긴급승인 받았지만, 우한생물은 아직 사용승인을 받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우한생물은 중국 보건당국의 허락을 받은 중국 내에서만 사용이 가능한 상태입니다.)
베로셀이 우한 생물제품연구소에서 생산된 우한생물이라는 루머가 있는데,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위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북경생물 역시 베로셀이라는 브랜드명을 달고 있습니다.) 베트남의 사이공제약은 지난 2021년 7월 시노팜 북경생물 500만 도즈를 수입할 예정이라는 기사를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있는 떠이닌까지 시노팜이 오게 된 이유는 호치민에서 접종을 거부한 사람들이 워낙 많다 보니, 해당 물량이 주변 성들에게 까지 떠넘겨졌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③ 시노팜이 과연 효과가 있을까요?
아쉽게도 시노팜의 효과는 주요 백신들에 비해 다소 떨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2차접종을 기준으로 주요 백신들의 예방효과가 95~99%에 달하지만, 시노팜은 대략 79% 전후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극단적으로 생각하면, 외출을 5번하면, 그중에 한번은 감염됐을 확률이 높다고 봐도 됩니다. (엄밀하게는 이렇게 계산하면 안됩니다.) 물론 어느 정도의 집단면역이 이뤄지게 되면, 감염확률 자체가 훨씬 더 떨어지게 되므로, 보건당국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백신 접종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할 것으로 보입니다.
④ 이후 한국에서 교차접종이 가능할까요?
또 다른 걱정은 일단 시노팜을 접종하게 되면, 이후에도 계속 시노팜을 접종해야만 되는지 여부였습니다. 만약 베트남에서 시노팜으로 1차접종을 했는데, 이후 한국에서 어떤 식으로도 추가접종이 어렵다면 굉장히 당황스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현재 한국에서는 시노팜에 대한 교차접종을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따라서 어떻게 해서든 베트남에서 2차까지 접종을 끝내야 될 것 같습니다.
다만, 3차 부스터샷이라던가 6개월 혹은 1년뒤에 있을 재접종 때는 그때의 상황을 봐야 될 것 같습니다. 솔직히 한국에 있는 가족과 지인들에게 부탁해 이와 관련해 질병관리청에 거의 10여 차례 가까이 문의했는데, 상담원마다 조금씩 얘기가 다를 정도로 아직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었습니다. 참고로 베트남에서는 기존에 1차를 시노팜으로 접종하면, 2차도 동일한 시노팜을 맞아야 되는 듯했는데, 현재는 다른 백신과의 교차접종을 허용해줄 듯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시노팜 접종 후기
사실 더 큰 문제는 과연 앞으로 주요백신들의 수급이 좋아질 수 있겠느냐의 문제입니다. 물론 미국 등이 베트남에게 백신을 추가적으로 공급하겠다고 공언하고 있긴 하지만, 지난 몇달간 집안에만 갇혀서 이미 인내력이 한계에 다다른 사람들이 그때까지 기다릴 수 있겠느냐를 고민해보면 정말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베트남 정부는 2021년 9월 들어서 정말 듣도보도 못했던 UAE백신과 쿠바백신의 사용마저 긴급승인한 상태이며, 쿠바백신의 경우, 이미 1,000만 도즈의 수입을 계약했다고 합니다. 또한 올해 2021년 4분기에는 베트남백신인 나노코박스마저 승인될 것이라는 예측이 있습니다. 이 순간부터는 당연히 모든 언론에서 나노코박스에 대한 용비어천가가 쏟아질게 불 보듯 뻔한기에, 다른 백신들의 수급은 훨씬 더 위축될 수밖에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저는 이들 백신보다는 최소한 WHO의 승인을 받은 중국백신이 낫겠다는 생각에 결국 지난 9월초에 접종했습니다. 대략 2주일 정도 지난 지금까지 중간에 경미한 두통과 접종을 했던 왼팔의 근육에 묵직한 통증을 느끼는 등 작은 부작용들이 있긴 했지만, 아직까지는 큰 부작용이 없는 상황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결코 시노팜 접종을 권유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밝히며, 어쩔 수 없는 상황 탓에 시노팜 접종을 고려하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추가 업데이트
시노팜으로 백신접종을 2차까지 모두 끝냈습니다. 1차접종을 마친 뒤, 대략 3주가 지난 뒤에 바로 2차접종을 했습니다. 역시나 큰 부작용은 없었지만, 평소보다 확실히 피곤했던 것 같습니다. 2차접종을 마치고 나니, 아래 오른쪽과 같이 소 슥코애(sổ sức khỏe)의 접종현황이 녹색으로 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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