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에코프로 그룹과 관련해서 모럴해저드(moral hazard)와 관련된 이슈가 연이어 터지고 있는데, 결론부터 얘기하면 이동채 회장과 최고경영진들이 모두 사퇴해 일선에서 물러나거나 극단적으로는 대주주 교체하는 것 외에는 회생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얼핏 보면 강경해 보일 수 있지만, 솔직히 이것 외에는 해법이 없어 보인다. 이유를 살펴보자.
공장화재로 인한 직원사망
지난 2022년 1월 21일, 충북 청주시 오창읍에 위치한 에코프로비엠의 양극제 제조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직원 1명이 사망하고, 3명이 다치는 사고가 일어났다. 이번 화재로 인해 양극재 생산은 당분간 중단될 예정이며, 이로 인해 수율에 어떤 악영향을 미치게 될지 누구하나 예상을 못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노동부는 해당 화재와 관련된 책임을 물어 에코프로비엠의 대표이사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혐의로 입건했다. 그나마도 운이 좋다고 해야 될지 모르겠지만, 만약 화재가 중대재해처벌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된 2022년 1월 27일 이후에 발생했다면, 훨씬 더 큰 고통을 감내했어야 됐을 것이다.
창업주의 내부자거래 혐의
지금처럼 ESG경영(환경, 사회, 지배구조)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진 시기에 도덕적 해이와 관련된 문제는 무조건 철퇴를 맞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대통령 선거를 앞둔 정권말에는 다음 정권에 책잡히면 안되니, 대부분의 공무원들이 각종 사안에 정무적 배려없이 원칙적인 초강력 대응을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곳은 손병두 이사장이 이끄는 한국거래소인데, 이미 이사장 스스로가 개인투자자들이 극단적으로 싫어하는 공매도 전면재개를 주장하는가 하면, 수십만명의 투자자들이 연루된 신라젠의 상폐를 과감하게 결정하기도 했다.
이번 에코프로 이동채 회장과 계열사 임직원들의 내부자거래 의혹에 대해서도 금융위원회는 주저없이 패스트트랙으로 해당 사건에 대응하고 있다. 원래대로라면 증권선물위원회의 의결을 묻는 단계를 거쳐야 되지만, 최고위급 임원들이 포함된 만큼 곧바로 검찰과 수사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현재 에코프로의 이동채 회장과 에코프로비엠의 핵심임원 4~5명은 에코프로비엠이 지난 2020년 2월 3일, SK이노베이션과의 2조 7,412억원 장기공급계약 체결을 공시하기 직전에 해당 미공개 정보를 활용해 조직적으로 대규모 거래를 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해당 거래간에는 내부자거래를 은폐하려는 목적이었는지 차명계좌(가족, 지인, 단골식당 주인의 계좌)가 동원됐으며, 거래 뒤에는 심지어 증거인멸을 시도했던 흔적마저 보인다고 알려졌다.
지난 2021년 9월에 이미 금융위원회 자본시장조사단이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 수사협력단과 함께 회사를 압수수색했기 때문에, 현시점에서는 언제든 확정된 결과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다. 회사는 일단 해당 사건을 임원들 개개인의 일탈이었으며, 회사에는 어떠한 손실을 가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뿐만 아니라 관련 사건 일체를 국내 최고 로펌인 김앤장에 의뢰해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개인투자자 입장에서는 이들이 정보의 비대칭성을 활용해 조직적으로 주주들의 이득을 강탈했기 때문에 해당 사안이 공정하지 않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일회성이라고는 하지만 김앤장에게 지불해야 될 어마어마한 수임료를 생각하면 속이 탈 것이다. 이 비용을 왜 회사의 성장이나 주주들을 위한 배당이 아닌 회장과 임원들을 보호하는데 써야 되는지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
뿐만 아니라 아무리 에코프로비엠의 양극재가 난다긴다 한들, 앞으로 SK이노베이션(=SK온)이 이들에게 공급물량을 맡길지도 불확실하다. 만약 에코프로비엠 측의 지배구조가 변하지 않은 상태에서 추후에도 계약관계가 계속 지속된다면, 당연히 한편에서는 양사간의 유착을 의심할 것이다. SK그룹은 ESG경영을 전면에서 외치는 기업이다. 당연히 에코프로비엠의 성장성이 의심될 수밖에 없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그동안 SK이노베이션과 맺었던 지난 계약들은 변함없이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설마 창업주가 내부자거래에 뛰어들었을까?
1959년생인 이동채 회장은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대구상고를 졸업한 뒤 바로 주택은행에 취업했으며, 은행을 다니면서 야간에 영남대를 다니며 경영학 학사과정을 끝냈다. 하지만 대졸 학력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재입사해야 한다는 규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은행을 그만두고 삼성으로 이직했다. 삼성에서의 일상적인 업무에 지쳐 퇴사후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산동회계법인 KPMG에 다니며 커리어를 쌓았다. 이후 창업을 통해 현재의 에코프로 그룹을 세웠으니, 정말 맨땅에 헤딩해 중견기업을 이뤄냈다.
그동안의 경력으로만 봐도 이동채 회장은 성격이 상당히 꼼꼼하면서도 도전을 대범하게 즐긴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지만, 에코프로 그룹은 대주주의 지배력이 생각보다 약한 편이다. 최근 몇년 사이에 2차전지 소재사업이 각광을 받으면서, 사세가 단숨에 거대해져서 그렇지, 굉장히 오랜기간 동안 적자를 견뎌왔다. 그러다 보니, 주가가 상승할 때마다 지분을 조금씩 내다 팔아 자본을 조달하거나 수익을 챙길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에코프로 그룹의 지주회사라 할 수 있는 에코프로의 지분구조를 보면 생각보다 훨씬 더 취약하다는 것이 느껴진다. 이동채 회장의 가족기업인 이룸티앤씨 지분과 자사주 등을 모두 포함해도 19.41% 밖에 안된다. (기준: 에코프로, 에코프로에이치엔 지분스왑 직전) 즉, 이것보다 높은 지분을 획득하면 에코프로비엠을 포함한 에코프로 그룹의 대부분을 단번에 집어삼킬 수 있는 모양새가 된다.
물론 에코프로의 시가총액이 1조 5,000억원에 달하니, 쉽진 않아 보인다. 산술적으로는 3,000억원만 있으면, 7조 1,000억원이 넘는 에코프로비엠을 지배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지분을 매집하는 과정에서 훨씬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해야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슬슬 2세 승계를 준비해야 되는 상황이라면 어떨까? 이동채 회장의 자녀들이 대주주인 이룸티앤씨는 에코프로의 지분이 겨우 3.74% 밖에 안된다. 이동채 회장의 지분 13.11%을 모두 증여한다고 치면, 막대한 증여세는 어떤 식으로 감당할 것인가?
아직 최종적인 발표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내부자거래 사건의 인과관계가 정확하진 않지만, 이동채 회장이 여러모로 현금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것쯤은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 이동채 회장은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할 것이 거의 확실해 보이지만, 일단은 중립기어를 놓고 사태를 지켜보자. 사실 에코프로비엠은 당장 몇년치의 수주를 모두 따놓은 상태라 당장에 발생할 호재가 없는 것이 문제다. 따라서 손절하지 않은 투자자들이 있다면, 혹시라도 경영권 분쟁이 발생하지 않는지 혹은 2세 승계가 어떻게 진행될지에 주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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