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귀공자'는 박훈정 감독의 작품이다. 감독의 지난 작품인 영화 '브이아이피', '낙원의 밤' 등과 달리 캐릭터에 힘을 상당히 뺏다. 이점이 정말 맘에 든다. 서사 역시 너무 비장하지도, 너무 가볍지만도 않아 가볍게 즐기기 딱이다. 마지막에 밝혀지는 뒤통수를 얼얼하게 치는 반전도 꽤나 세심하게 준비한 듯싶다. 스캔들을 이겨내고 영화에 출연한 김선호 배우의 맑눈광 캐릭터도 독특해서 그런지 인상적이었다.
개인적으로 근래 보기 드문 완성도 높은 웰메이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의 평점 역시 네이버 영화 8.01점, 다음 영화 7.7점으로 대체로 괜찮은 편이다. 하지만 요새 극장가 자체가 워낙 불황인지라 현재의 페이스만 보면, 흥행에는 실패할 것 같다.
참고로 귀공자라는 명칭 자체가 '마녀' 시리즈에 등장했던 캐릭터의 이름과 동일한 까닭에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실제로는 별개의 이야기다. 물론 일반인이라고 보기엔 지나칠 정도로 강한 캐릭터들이 등장하긴 하지만, 초인처럼 말도 안되는 수준은 아니다. 혹시라도 영화 '귀공자'를 보면서 초인물이 아닐까 착각했다면, 이는 전적으로 감독의 의도된 연출 때문이라고 보면 된다.
영화 '귀공자' 등장인물, 줄거리, 결말 총정리
① 마르코, 귀공자, 김선생
마르코(강태주)는 코피노다. (참고로 코피노는 코리안(Korean)과 필리피노(Filipino)의 약자다.) 아빠가 한국으로 도망쳐버린 탓에 엄마가 마르코를 홀로 키웠다. 엄마마저 아파서 병상에 누워버리자, 불법 복싱경기를 하거나 확률이 낮은 스포츠 경기에 배팅하는 등 밑바닥 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러다 아빠 한회장이 사실은 엄청난 부자이며, 건강에 문제가 생겨 오늘내일할 정도로 위급하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리고 엄마를 구하기 위해 한국행을 결심한다.
하지만 이는 모두 마르코의 심장이 필요했던 이복형 한인철 이사가 꾸며낸 일이었다. 마르코는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한인철 이사가 보낸 일당들에게 쫓기다 결국 붙잡혀 수술대에 오른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그동안 마르코 주변을 계속 얼쩡거리기만 하던 귀공자가 그를 구출한다. 귀공자의 목적 역시 돈이었다. 실제로 귀공자는 한인철 이사에게 무려 천만달러를 요구해 받아내기도 한다.
한인철 이사가 귀공자도 죽이려 하자, 결국 귀공자가 본색을 드러내고 모두를 역관광 한다. 그리고 사실 마르코가 한회장의 핏줄이 아니며, 이는 귀공자가 한인철 이사에게 돈을 뜯어내기 위해 꾸민 공작이었음을 밝힌다. (이 부분이 허무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기발하다고 느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마르코 역을 맡은 강태주 배우가 극 초반부를 치열하게 잘 이끌어줬기 때문에 서사에 대한 몰입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귀공자(김선호)의 정체는 초중반까지 드러나지 않는다. 그저 의미 없이 웃는 맑눈광 같은 캐릭터성과 해결사로서의 엄청난 실력만 부각될 뿐이다. 사실 각혈을 빈번히 하던 귀공자는 스스로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심장이 안좋은 한회장이 버려진 아들을 통해 생명연장을 계획하고 있다는 사실에 역했던지, 마르코를 한회장의 아들인 척 정황을 조작한다. 아마도 본인 역시 코피노인 까닭에 코피노들을 부당하게 대하는 한회장 일가에 원한이 생겼을 것이다.
결국 모든 작전이 성공하자, 그가 받은 천만달러 중 일부를 김선생에게 줘서 코피노 지원센터를 새로 짓는데 도움을 준다. 쿠키를 통해 귀공자가 애초에 전혀 아프지 않았음이 밝혀진다. 각혈은 그저 오랫동안 피우던 담배를 끊었기 때문에 생긴 반작용 정도로 보인다. (즉, 아이러니하게도 건강은 더 좋아지고 있었다.) 애초에 귀공자 캐릭터가 워낙 쿨하고 멋있는 탓에 좋은 시나리오만 발굴되면, '귀공자2'도 기대해 볼 만하다. 그만큼 김선호 배우가 이번 작품에서는 연기를 독보적으로 잘했다.
김선생(이기영)은 코피노 지원센터를 운영하며, 마르코와 오랜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아픈 엄마를 위해 한국으로 도망간 아빠를 찾고 있는 마르코를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다. 그리고 결국 마르코의 아빠 한회장을 찾아낸다. 물론 앞서 언급했듯이, 이는 또 다른 코피노인 귀공자의 제안을 수락했기 때문이다. 결국 귀공자의 탁월한 실력을 믿었기에 마르코가 별다른 위험에 처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② 한회장, 한인철, 한가영, 윤주
한회장(최정우)은 호경재단을 일군 사람이다. 수많은 대학과 병원을 소유했다고 하니 사실상 재벌이라고 보면 된다. 현재는 심장에 문제가 생겨서 죽을 날이 얼마 안남은 상황이다. 정신이 혼미했을 때 새 아내와 그녀의 딸인 한가영에게 전재산을 물려준다는 유언을 남긴 것이 모든 서사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말을 할 수 없기에 그가 정말 필리핀에 두고 온 아들이 그리웠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한가영이 이 집안 남자들은 죄다 잔인하다고 말한 것으로 봐서는 그저 심장이 필요했을 가능성이 높다.
한인철(김강우) 이사는 잔인하다. 아마도 한회장의 젊었을 때 모습을 묘사한 게 아닐까 싶다. 한인철 이사는 자신이 물려받아야 될 재산이 모두 배다른 동생에게 돌아가는 것을 막기 위해 어떻게든 한회장의 생명을 연장시킬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귀공자에게 당해 모든 계획이 틀어졌고, 목숨마저 잃었다. 그의 잔인함이 지나칠 정도로 자세하게 묘사되는데, 이는 박훈정 감독의 특이한 연출습관 때문이다. 딱히 캐릭터성이 강화되지도 않고, 서사에 어떠한 영향도 못미치기에 의미 없다고 생각한다.
한가영(정라엘)은 한인철 이사의 배다른 동생이다. 교복을 입은 것으로 봤을 때 고등학생 정도로 보인다. 생각하는 방식이 잔인하고, 총기마저 서슴없이 쏠 정도로 평범하진 않다. 마르코를 죽일 목적으로 윤주를 고용했으며, 플랜B 차원에서 총기를 준비했다는 것 자체가 소름 끼치긴 하다. (결론적으로 한인철 이사와 한가영 모두 소시오패스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모든 유산을 차지하고, 경쟁자인 오빠마저 제거했으니, 누가 봐도 그녀가 최종승리자다.
윤주(고아라)는 한가영이 고용한 해결사다. 동시에 변호사이기도 해 한인철 이사를 도와 한회장의 숨겨진 아들을 필리핀에서 찾아내는 역할도 맡았다. 이중첩자였다는 사실이 밝혀짐과 동시에 귀공자에게 제거된다. 솔직히 '귀공자'의 일부 캐릭터들이 제대로 된 매력을 선보이기도 전에 퇴장해 아쉬웠는데, 그중에 하나가 바로 윤주다. 그녀의 캐릭터성이 워낙 좋기 때문에 잘만 살리면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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