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다른 기대없이 본 영화였는데, 의외로 굉장히 만족스러운 경우가 종종 있다. 영화 '청년경찰'이 딱 그런 예인 것 같다. 요새 뉴스를 보면 가슴이 답답해지는 사건사고들이 너무 많다. 정직이나 공정, 배려 등과 같은 가치들이 무시되는 현실과 마주할 때면 왠지 모를 불안감과 먹먹함을 느끼게 되는데, 이 영화를 보며 잠시나마 시원함과 희망을 느꼈다.
영화 청년경찰 명대사
사실 영화에 등장하는 두 경찰대 학생들이 처음부터 경찰로서 소명의식을 가졌다거나 특별한 계기가 있어 사건에 뛰어든 것은 아니다. 단지 눈앞에서 범죄를 목격했고, 이를 경찰에 신고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를 들며 해결하지 않는 어른들의 모습에 분개하며, 경찰대에서 퇴학당할 것을 각오하고 직접 뛰어든 것이다. '경찰은 시민이 위기에 처했을 때 가장 먼저 응답하는 사람'이라는 학교에서 배운 철학을 순수하게 실천하는 모습에서 너무 고마웠고, 심지어 눈물도 조금 났다.
영화에서 대기업 회장의 손자가 실종됐다는 이유로 자신이 관할하는 서의 모든 인원을 투입시키는 경찰서장의 모습과 크리티컬 아워(critical hour) 보다 중요한 것이 서장의 지시라는 실종수사팀 팀장의 모습을 보며, 마치 사건에 크고 작은 것이 있는 것 같이 어른들이 행동하는 것 같아, 괜스레 극중의 21살 청년들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이 영화의 미덕은 역시나 아직 세상에 때묻지 않은 청년들의 순수한 모습을 공감이 되도록 보여줬다는 것이다. 사실 영화가 다루고 있는 범죄사건들은 조선족과 관련된 미성년자 납치, 난자공장, 난자매매 등과 같이 더없이 무겁고 심각하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서준과 강하늘의 케미가 너무 좋아서인지, 두 사람의 모습만 보면 영화 '청년경찰'이 마치 코미디처럼 느껴질 정도로 굉장히 영리하게 제작됐다.
제일 처음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신입생 훈련의 마지막 과정에서 실시된 법화산 등정이었다. 발이 접질린 강희열(강하늘)을 박기준(박서준)이 엎고 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과정을 그냥 감동적으로 그렸다면, 정말 뻔한 클리셰가 됐을 테지만, 과감하게 한번 비틀었다. 교관인 이주희 경위(박하선)가 나머지 훈련생들을 향해 '싹 다 엎어져! 경찰은 시민이 위기에 처했을 때 가장 먼저 응답하는 사람이다. 근데 자기동기가 다쳤는데, 혼자 살겠다고 앞만보고 뛰는 놈들이 무슨 경찰이 돼? 니들은 시간안에 들어왔어도 다 실패다.'라며 일갈하는데, 정말 속이 다 시원했다.
영화의 본격적인 스토리는 양성일 교수(성동일)가 경찰대 2년차가 된 박서준과 강희열에게 크리티컬 아워를 알려주며 시작된다. 크리티컬 아워는 실종 혹은 납치사건에서 실질적으로 피해자를 구할 수 있는 시간을 의미하는데, 특히 성인여성의 경우, 보통 7시간으로 잡는다. 통계학으로 이 7시간 동안 피해여성의 70%가 사망한다고 하니, 최대한 서두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참고로 어린이가 실종된 경우에는 크리티컬 아워를 대략 72시간으로 본다.)
그래서 범죄장면을 목격한 박서준은 신고시간 10분을 단축하기 위해, 근처에 있던 강남경찰서로 직접 이동해 실종수사팀에 신고했으며, 이 와중에 처음 한일이 바로 7시간의 알람을 맞춘 것이었다. 남은 시간이 점점 줄어가면서, 관객들 역시 초조해진다. 박서준과 강하늘은 경찰대에서 배운 수사의 3가지 방법(피해자, 물품, 현장)을 최대한 활용해, 하는 데까진 최대한 해보자는 마음으로 수사를 시작한다. (참고로 박기준은 지난 시험에서 수사의 3가지 방법으로 열정, 진념, 진심을 적었는데, 시험에서는 비록 오답이었을지 몰라도, 현장에서는 정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범죄조직에게 쫓기던 자신들이 직접 지구대에 신고를 해도 신분증이 없으면 신고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현실에 반감이 들었던 박기준은 '사람 목숨보다 절차가 중요해요?'라고 외쳤고, 이에 나름 경력이 많아 보이던 중년의 경찰경사는 '절차가 있으닌까 사람목숨도 구할 수 있는 거야!'라고 맞받아 친다.
마지막으로 모든 사건이 해결되고, 무단으로 사건을 해결한 박서준과 강하늘을 위한 징계위원회가 열린다. 이곳에서 담당교수인 성동일이 얘기한다. '학교의 징계가 두려워서 위기에 처한 시민을 방치했다면, 그게 더 불명예스럽고, 진정한 퇴학감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도 한때는 용광로처럼 뜨거웠지 않습니까? 혈기가 넘쳐서 나쁜 놈들을 보면, 징계를 받던 안받던 잡아서 두들겨 패고.. 그런 생각을 하면 우리가 애들을 잘 가르쳤구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요즘 애들처럼 이기적이고 얍삽하지 않고, 타인을 위해서라면 밤새도록 뛰고 달리고 헌신하는 그런 애들로 잘 키웠다는 생각이 드닌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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