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항저우 아시안 게임의 롤러스케이트 부문에 출전한 정철원 선수가 간발의 차이로 은메달을 차지했다. 얼핏 보면 은메달 수상 역시 대단한 게 아닐까 싶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아쉬운 점이 많다. 개인적으로 이번 해프닝은 비단 운동선수에게만 적용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목표를 향해 열심히 뛰고 있는 사람들에게 많은 교훈이 될 거라 믿는다.
중국에서 펼쳐진 이번 2022년 항저우 아시안 게임은 개최까지 여러모로 우여곡절이 많았다. 원래는 올해 2023년이 아닌 2022년에 펼쳐졌어야 했지만, 중국이 제로 코로나를 외치며, 고강도 방역정책을 실행하는 바람에 대규모 관중들이 동원되는 스포츠 대회들은 모두 연기됐다. 그래서 이 시기에 맞춰 대회 출전을 준비했던 선수들은 1년여간 다시 훈련에 돌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어렵게 열린 대회였고, 원래도 한중일이 주로 경쟁하는 대회였던 만큼 별다른 이변 없이 끝나는 줄 알았다.
정철원 롤러스케이트 은메달 교훈
2023년 10월 2일에 펼쳐진 롤러스케이트 3,000m 계주 결승전에는 정철원, 최광호, 최인호 선수가 출전했다. 한국 대표팀은 마지막 바퀴를 돌 무렵부터 선두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정철원 선수가 마지막 주자로 나섰다. 에이스로 손꼽히고 있던 선수가 별다른 실수 없이 1등을 유지했었기에, 모두들 우승을 예감했었다. 그랬기에 정철원 선수 역시 마지막 순간에 손을 활짝 벌리는 세리머니를 했던 것이다.
하지만 대만 대표팀의 마지막 주자인 황위린은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 정철원의 뒤에서 기를 쓰고 달려오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자주 봤던 날내밀기를 시도한 것이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한국 대표팀의 기록은 4분 5초 702, 대만 대표팀의 기록은 4분 5초 692였던 것이다. 불과 0.01초 차이로 메달의 색깔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정철원의 운명 역시 바뀌게 됐다.
운동선수의 병역면제 특혜
운동선수들은 국제대회 성적에 따라 병역면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과 같이 굵직한 스포츠 대회가 펼쳐질 때마다 스타선수들의 병역문제는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곤 한다. 선수들 입장에서는 기량이 절정에 이르는 20대에 공백기를 18개월, 무려 1년 6개월이나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당연히 국제대회 입상은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중요한 이벤트가 할 수 있다. 실제로 병역이 면제되면, 기하급수적인 몸값상승과 함께 물리적인 선수생명 역시 연장되는 편이다.
혹시 면제로이드는 말을 들어봤나? 병역면제라는 강력한 동기부여 때문에 평소보다 훨씬 더 큰 실력을 발휘한다는 뜻이다. 그만큼 선수들은 병역면제 특혜가 절박하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을 보유하고 있는 소속팀은 더 절박하다. 병역만 면제되면 이들과 더 오랜 기간을 계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수들이 국제대회에 참여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에서 손흥민이 금메달을 따고 병역면제 혜택을 받자, 소속팀 토트넘은 축제 분위기였다.
항저우 아시안게임에는 파리 생제르맹이 이제 막 부상에서 회복한 이강인을 보내주기도 했다. 참고로 3연속 금메달을 노리고 있던 한국 축구 대표팀은 우승을 차지했으며, 경기에 출전했던 모든 선수들이 병역면제 혜택을 받았다. 엄밀하게 말해, 금메달을 딴다고 해서 군복무가 완전히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예술체육요원으로서 약 4주간의 군사훈련을 받은 뒤, 정부가 인정한 기관에서 544시간 동안 봉사활동을 해야 된다. 선수생활을 하는 동시에 해야 되기 때문에 생각보다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정철원 선수는 병역면제 혜택을 0.01초 차이로 놓치게 됐다. 심지어 같은 팀 선수인 최인호 선수마저 병역면제 혜택을 놓쳤다는 점에서 엄청난 비극이라 할 수 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정병희 선수와 최광호 선수는 각각 10,000m와 1,000m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문제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모든 걸 잊고, 다음 대회를 노리면 되지 않겠나 싶겠지만, 2026년 아이치-나고야 아시안 게임에서는 롤러스케이트 부문이 정식 종목에서 제외될 예정이라고 한다.
어찌 보면 신이 마지막 순간에 자만한 사람에게 벌을 내린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정말 기구했던 것 같다. 애초부터 정철원 선수가 무개념 선수라고 보기에는 더욱 아쉬운 부분들이 있다. 바로 전날인 10월 1일에 펼쳐진 1,000m 결승전에서는 본인이 되레 날내밀기를 시도했을 정도로 금메달이 간절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날내밀기로 정철원을 이겼던 대만팀의 황위린 선수는 무려 그들이 세리머니를 하고 있을 때 나는 계속 싸우고 있었다는 소감을 밝히며, 대만에서 엄청난 이슈가 됐다. 아이러니한 것은 불과 며칠 뒤인 2023년 10월 13일에 펼쳐진 대만 전국체전 1,000m에서 본인이 세리머니를 하다가 우승을 놓쳤던 촌극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불과 0.03초 차이였다. 황위린은 1분 27초 202, 황위린을 간발의 차이로 제친 자오쯔정은 1분 27초 172였다. 그 누구도 방심할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아마도 이번 해프닝은 순간의 방심이 단순한 실패를 넘어 엄청난 재난으로 다가온 케이스로 기억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는 사람을 볼 때 얼마나 집요한지를 가장 중요하게 살펴본다. 집요함은 성실함과는 다르다. 절박함을 기반으로 한 집요함은 열정이라고 표현되기도 하지만, 나는 한없는 몰입이라고 생각한다. 마무리가 되는 그 순간까지 집중력을 유지하는 것 역시도 몰입의 일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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