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지방선거를 통해 자치단체장을 선출한다. 그중에서 눈길이 가장 많이 가는 곳은 아무래도 서울시장 선거가 아닐까 싶다. 지난 2017년에 개봉한 영화 '특별시민'은 헌정사상 최초로 3선에 도전하는 변종구(최민식) 서울시장에 관한 이야기다. 실제 현실에서는 박원순, 오세훈 서울시장이 3선에 이미 성공했지만, 영화가 제작되던 당시만 해도 두분 모두 재선이었기 때문에, 3선에 도전한다는 이야기로 영화의 설정을 잡은 것 같다. 참고로 올해 선거에서 오세훈 시장이 당선된다면, 헌정사상 최초로 4선에 성공하는 것이다.
영화 '특별시민'은 현실에서 사용되고 있는 실제 지명이나 명칭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등장인물들 역시 실존인물을 모티브로 따온 경우가 많다. 변종구 시장은 공장노동자와 변호사 출신이라는 점에서 이재명 대통령 후보와 비슷하고, 라이벌 양진주(라미란) 후보는 엘리트 출신에 여성운동가라는 점이 심상정 대통령 후보와 한명숙 전 국무총리와 닮아있다. (물론 공식적인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한 정치인이 이상하리 만치 다양한 작품들에서 소재로 활용되는 듯한 느낌적인 느낌이 든다.)
영화 특별시민 평점
정치를 본격적인 소재로 삼은 만큼 영화에 대한 호불호는 많이 갈리는 편이다. 평소 정치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 입장에서는 이렇게 현실감 있는 영화가 그동안 있었나 싶었을 정도로 재밌겠지만, 반대로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당선을 위해 가족들마저 헌신짝 버리듯 쉽게 내다 버리는 정치인의 모습에 환멸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네티즌 평점은 극단적으로 갈리는 양상이며, 종합평점은 네이버 영화 7.7점, 다음 영화 6.4점을 기록하고 있다.
다만, 실제 현실에 있을 법한 선거전략을 다룬다는 점만큼은 확실히 돋보인다. 특히 변종구 캠프의 박경(심은경) 청년혁신위원장이 다른 캠프의 선거전략가들과 겨루는 과정을 상당히 흥미진진하게 그려냈다. 예를 들어 편집된 영상을 의도적으로 흘린 뒤, 상대방 캠프에서 공격하면, 도리어 이를 정치공작이라며 역공하는 방식이다. 물론 선거전략이라는 것이 이런 식으로 뒤통수치는 건가 싶어 뭔가 씁쓸한 느낌이 들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어쨌든 이 정도로 선거전략이 구체적으로 묘사된 영화로는 최근에 개봉한 영화 '킹메이커'가 있는데, 시대적인 차이가 있는 만큼 어떤 식으로 선거전략이 변화됐는지 비교해보는 것도 꿀잼이 될 수 있다. 확실히 예전에는 정치에 관한 영화나 드라마가 정치인 그 자체에 초점을 맞췄다면, 어느 순간부터는 그들의 참모라 할 수 있는 선거전략가에 관해서도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것 같다. 확실히 이야기가 풍성해졌고, 갈등의 양상이 상당히 복잡해지는 듯한 느낌이다.
영화 특별시민 출연진, 결말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는 내내 엄청난 긴장감과 몰입감을 느꼈는데, 이는 배우들의 열연 때문이라 생각된다. 특히 변종구 시장을 연기한 최민식 배우는 진짜 정치인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야말로 무자비한 싱크로율을 보여줬다. 선인지 악인지 구분할 수 없는 정치인들 특유의 모호한 모습이 정말 실감 났다고나 할까? 사실 최민식이라는 배우를 평가하는 것 자체가 우습지만, 이제는 얼굴에 있는 주름마저도 연기처럼 느껴질 정도다.
인상적인 장면들이 참 많았지만, 영화의 말미에 변종구 시장이 자신의 운전기사(진선규)에게 쌈을 싸주는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첫번째 쌈을 미쳐 다 소화도 못시킨 상태에서, 두번째 쌈을 연신 들이밀며, 아무 말도 못하게 입을 막고, 자신도 크게 쌈을 싸 먹는 장면은 많은 것을 시사하는 것 같다. 맛있는 것을 계속 줄테니 아무것도 말하지 말라는 뜻이 아닐까?
사실 박경(심은경)이라는 캐릭터 자체는 설정이 좀 어수선한 감이 없지 않아 있다. '소통을 안하면, 고통이 온다'는 교과서 같은 소리를 충고랍시고 하질 않나 불의를 못참는 모습이지만, 실제로는 불의에 가담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살짝 뜬금없다는 생각도 든다. 그나마 심은경의 연기가 대체로 괜찮았기에, 스토리에 몰입하는데 방해될 정도는 아니었다. 변종구 캠프의 심혁수 선거대책본부장으로 열연한 곽도원 배우 역시 연기가 좋았다. 이미지 때문에 그런지 정치인이나 검사같이 강한 역할들을 자주 맡는데, 늘 찰떡같이 소화해내는 것 같다.
제일 흥미로운 캐릭터를 하나만 꼽으라면, 정치부 기자 정제이(문소리)를 선택할 것 같다. 정의감이 투철하면서 저널리즘을 가진 기자처럼 등장하지만, 실제 그녀의 방식은 비열한 정치인들의 방식과 다를 바가 없다. 뿐만 아니라 분위기에 따라 자기편을 서슴없이 바꿀 수 있는 처세술도 가지고 있다. 뭐랄까.. 실제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이런 캐릭터를 자주 보게 되는데, 그래서 그런지, 박경에 비해 훨씬 현실감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밋밋해질 수 있는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포장해낸 것은 전적으로 문소리라는 배우가 가진 힘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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