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역사와 경제, 정치를 좋아하는 천상 문과체질이다. 현재도 (비록 적성에는 안맞지만) 회계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으니, 말 다했다. 그런 나는 고등학생일 당시 언어, 사회탐구, 외국어는 어찌저찌 1등급과 2등급을 오갔지만, 수리와 과학탐구는 고민이 정말 많았다. 그나마 과탐 수능성적은 대입에 반영을 안하는 학교들이 많아 괜찮았지만, 수리는 어떻게든 반드시 해내야 됐다. 그러다 만난 과외 선생님이 사실상 내 인생을 바꿔줬다.
한국 수험공부 방식, 내가 생각하는 필승법
학교나 학원의 선생님들과 달리 개념을 너무 쉽게 설명해주는 과외 선생님을 너무도 존경했기에 지도해주신 데로 순순히 따라갔다. 물론 수학 자체가 지루하고 재미없는 것은 어쩔 수 없었기에 노력을 쏟아붓는데 한계가 있었고, 결국 수능에서도 1등급을 받지 못했다. 당시의 나는 나 스스로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내 첫사랑과도 같은 선생님이었던 것 같다. 그 선생님은 과연 어떤 식으로 수학을 가르쳤을까?
공식을 증명
과외 첫날, 선생님은 고등학교 2학년인 내 앞에 중1 교과서를 가져왔다. 그리고 거기에 나온 공식들을 아주 세세하게 증명했다. 하나의 공식을 증명하고 나서는, 내게 그 공식을 다시 한번 증명하도록 했다. 이후 그 공식을 적용할 수 있는 문제를 딱 하나만 풀어보고, 다음 공식으로 넘어갔다. 그렇게 거의 2달여간에 걸쳐 중1~고3 교과서에 나온 모든 공식들을 한번씩 증명했다. 당시의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냥 묵묵히 공식들을 증명해갈 뿐이었다.
이때 나는 모든 공식들이 제각기 다른 사연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교과서에 쓰인 공식은 단 한줄에 불과하지만, 그 한줄로 압축되기까지의 우여곡절은 어마어마했던 것이다. 더불어 공식들은 서로 연관성이 강해 마치 가족이나 친척들과 같이 관계가 유기적으로 얽혀있다는 것도 깨닫게 됐다. 중1부터 고3까지 나온 모든 단원들과 공식들을 한번 쭉 돌파하고 나서 선생님이 해준 것은 비슷한 영역들을 하나로 묶어준 것이다. 예를 들어 확률과 통계는 한팀으로, 지수와 로그는 다른 한팀으로 이런 식으로 그룹핑한 것이다.
인덱싱(Indexing)
그때 처음 내 머릿속에 수학에 관한 인덱스가 생겼다. 자연스레 문제를 읽는 와중에 '이건 어떤 단원의 문제닌까, 대략 ⓐ나 ⓑ공식을 적용하겠네.'라고 떠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출제자가 왜 이 문제를 냈는지를 유추하면서, 최종적으로 어떤 공식을 선택할지 결정했다. 즉, 문제를 읽는 와중에 적용할 공식들을 나열함과 동시에 출제자의 의도를 예측해 문제를 다 읽었을 때쯤엔 적용할 공식이 나와야 되는 것이다. (이 프로세스는 모든 시험에 통용됐는데, 이후 내가 치른 모든 시험, 예를 들어 토익이나 아이엘츠, 회계사 자격증 등에 적용했다.)
잡소리를 길게 했는데, 공부의 본질은 일단 ㉮ 끝까지 한번 빨리 공부해보는 것과 이후 ㉯ 모든 내용을 머릿속에 체계적으로 집어넣어, ㉰ 시험문제를 푸는데 빠르게 적용시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즉, 빨리 적용하기 위해서는 모든 공식들이 도서관의 책들처럼 넘버링이 잘 돼있어야 된다.) 여기까지가 현재 한국의 수험공부 방식이다. 당연히 전혀 창의적이지 않다. 그래서 내 인생에서 제일 힘들었던 시험을 꼽으라면, 바로 GMAT이었다.
GMAT Math 헷갈리는 보기, 완전 쉽게 정리
최종적으로 딱 700점을 획득하긴 했지만, 아직도 Verbal은 그냥 너무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믿는지라, 솔직히 감히 평가조차 못하겠다. (진심이다.) 단, Math는 만점인 51점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깨달은 게 있으니 꼭 공유하고 싶은 게 있다. 기본적으로 GMAT Math는 수능과 결이 다르다. 물론 우리에게 익숙한 정답을 도출하는 문제인 PS(Problem Solving)도 있지만, DS(Data Sufficiency)는 문제 자체가 과연 정확한 게 맞는지 고민하는 것이 포인트라 훨씬 복잡하다.
즉, 애초에 출제오류가 있는 문제를 공식적으로 출제해, 이를 구분하는 능력이 있는지 체크하는 것이다. 알다시피 MBA 과정은 변화하는 복잡한 환경 속에서 유연하면서도 합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의사결정능력을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렇기에 아예 말도 안되는 문제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DS를 풀다 보면, 기존 한국형 교육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감정이 느껴질 것이다. 쉬운 문제 하나를 예로 들어보자.
If n is a member of the set {33, 36, 38, 39, 41, 42}, what is the value of n?
(1) n is even.
(2) n is a multiple of 3.
앞서 언급했다시피, 애초에 DS의 경우 (1), (2)과 같은 조건들이 없으면, 문제가 불완전한 경우도 있다. 따라서 DS문제를 접하면, 당연히 해석부터 정확하게 해야 된다. 아래와 같이 한국어로 해석하면, 이해가 훨씬 쉽다.
만약 n이 집합 {33, 36, 38, 39, 41, 42} 중에 하나라면, n의 값은?
(1) n은 짝수다.
(2) n은 3의 배수다.
문제에 대해 우리가 고르는 정답은 아래 보기들 중에 하나다. 만약 (1)이 문제에 포함되면, n의 값은 36, 38, 42가 되고, (2)이 포함되면, n의 값은 33, 36, 39, 42가 된다. 즉, n의 값을 하나로 추정할 수 없다. 교집합의 경우, 36, 42이므로 역시나 답을 도출할 수 없다. 즉, 결과적으로 정답은 ⓔ가 된다.
ⓐ Statement (1) ALONE is sufficient, but statement (2) alone is not sufficient.
ⓑ Statement (2) ALONE is sufficient, but statement (1) alone is not sufficient.
ⓒ BOTH statements (1) and (2) TOGETHER are sufficient, but NEITHER statement ALONE is sufficient.
ⓓ EACH statement ALONE is sufficient.
ⓔ Statements (1) and (2) TOGETHER are NOT sufficient.
뭔 소린가 싶겠지만, 보기를 정확히 해석하면, 아래와 같다. 뭔가 쉬운 듯 복잡한 듯 싶을 것이다. 우리가 흔하게 접해왔던 시험은 해답을 얼마나 빠르게 구하는지를 확인하는데 방점을 찍고 있다. 개인적으로 GMAT Math 공부를 아주 어렸을 때부터 시작하면, 수학을 넘어 인생 전반에 걸쳐 수없이 많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거라 확신한다. 지엽적인 지식을 묻는 것이 아닌 정말 깊이 있는 사고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삶이라는 게 정답이 없는 문제가 아니던가?
ⓐ 1번 정보만 추가하면, 답을 도출할 수 있다. (=2번 정보는 추가해도 답을 도출할 수 없다.)
ⓑ 2번 정보만 추가하면, 답을 도출할 수 있다. (=1번 정보는 추가해도 답을 도출할 수 없다.)
ⓒ 1번과 2번 정보 모두 추가하면, 답을 도출할 수 있다. (=하나라도 빠지면, 답을 도출할 수 없다.)
ⓓ 1번 정보만 있거나 2번 정보만 있어도 답을 도출할 수 있다. (=각 정보가 독립적으로 답을 도출할 수 있다.)
ⓔ 1번과 2번 정보 모두 있어도, 답을 도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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