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설강화'가 역사왜곡 논란에 휩싸였다. 단 이틀만에 '설강화'의 방영금지와 폐지에 관한 청와대 국민청원에 무려 3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동의했다. 무슨 장면이 문제 됐을까 싶어, 현재까지 방영된 1~2화를 봤는데, 솔직히 아직까지는 '글쎄?!'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왜곡을 문제삼고 있는 사람들은 드라마가 민주화를 폄하하고, 안기부를 미화했다고 하는데, 나는 왜 오히려 그 반대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정말 역사왜곡 됐나?
일단 드라마의 시대배경을 정확히 알 필요가 있다. 1987년은 전두환 대통령이 연임(11대, 12대)을 마무리하던 시점이었으며, 오는 1988년에는 대통령 선거를 앞둔 상황이었다. 전두환 정권의 손발이었던 애민당(여당) 사무총장 남태일(박성웅)과 국가안전기획부장(안기부장) 은창수(허준호)는 북풍을 일으키기 위해, 북한과 비밀회담을 열어 야당의 자문위원 납치를 의뢰했다.
전두환 정권때 발생했던 북풍이 부끄럽게도 한국이 북한에 사주해서 발생했던 공작이었다는 점과 육군내 사조직인 하나회가 모티브가 된 동심회가 어떤 식으로 유치하게 충성경쟁을 했는지 잘 묘사했다. 심지어 아내들의 모임에서 보여준 온갖 꼴값(?) 떠는 모습은 당시 허세 가득한 권력층의 모습을 풍자하고 있으며, 특히 진지하게 식칼을 들고 '성심'이라 외치는 장면은 정말 블랙코미디의 극치를 보여줬다. (유현미 작가의 이전 작품인 드라마 '스카이 캐슬'이 어쩌다 한번 운좋게 대박난 작품이 아니었나 보다.)
1987년 6월에는 6월 민주화 항쟁이 일어났으며, 이후 대통령을 우리 손으로 직접 뽑을 수 있는 직선제가 도입됐다. 기숙사 207호 여학생들은 남파간첩인 임수호(정해인)가 시위하다 다친거라 착각해 도와주는데, 그녀들을 절대 비난할 수 없는 것이, 당시 안기부는 실제로 민주화를 위해 시위하는 학생들을 간첩으로 몰아붙여 무리하게 잡아들였기 때문이다. 여주인공인 은영로(지수) 역시 자신의 오빠가 시위하다 군대에 징집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정해인이 비슷한 상황에 처했다고 착각한 것이다. (이 착각이 설강화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설정이다.)
즉, 안기부가 평소 조작이나 공작이 아닌 정말 간첩을 잡는데만 집중했다면, 여학생들이 오해하지 않았을테고, 이번만큼은 진짜 간첩을 잡는 중이었다고 억울해할 필요도 없었다. 드라마에선 안기부가 저지른 과오를 드라마의 중요한 모티브로 활용하고 있다. 물론 안기부의 역할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당시 남파된 간첩들 중 일부는 실제 시위대 무리에 섞여 들어갔다고 주장한다. 이 부분 역시 아예 틀렸다고는 할 수 없으므로, 안기부에 관해서는 순기능이 아예 1도 없었다기보다는 공(功)보다 과(過)가 압도적으로 컸다고 판단하면 된다.
그렇다고 아예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려되는 부분은 분명히 있다. 일단 이후의 스토리가 문제다. 언젠가는 지수가 정해인이 남파공작원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되는데, 그때의 감정이 문제다. 정해인과 헤어져도 문제고, 안헤어져도 문제가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안헤어지고 정해인에 동조하면 북한을 따르는 모양새가 되고, 어쩔 수 없이 헤어지면 마치 안기부 때문에 이런 식으로 탄압받았다는 것처럼 묘사된다. 작가가 어떤 식으로 풀어나갈지 굉장히 궁금하긴 한데, 굳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정말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제작진은 정해인이 안기부에게 쫓기는 장면에서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를 배경음악으로 사용한 것이다. 즉, 남파공작원과 민주화를 외치는 시위대를 아예 동일시 여기는 듯한 뉘앙스였다. 역사적으로 남파간첩이 실제 시위대에 잠입했다 하더라도, 99%의 대다수 운동권 청년들은 순수하게 민주사회를 꿈꾸며, 독재에 저항하기 위해 용기내 시위했으며, 그중에서 굉장히 많은 청춘들이 안기부에 끌려가 무고한 희생을 당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거센 바람이 불어와서 어머님의 눈물이
가슴속에 사무쳐 우는 갈라진 이 세상에
민중의 넋이 주인 되는 참 세상 자유 위하여
시퍼렇게 쑥물 들어도 강물 저어 가리라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샛바람에 떨지 마라
창살 아래 네가 묶인 곳 살아서 만나리라
민주화 정신이 담겨 있는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라는 음악 자체를 신성시 여기거나 숭배하자는 말이 아니다. 당시에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들이 많으니 인간된 도리로서 최소한의 공감을 하자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은 어떤 식의 해명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제작진이 무조건 해당 부분의 배경음악을 교체해야 된다. 참고로 가수 박기영이 KBS '불후의 명곡'에서 이 노래를 불렀는데, 꼭 한번 들어보길 추천한다.
지수의 연기논란
여주인공으로 캐스팅된 지수에 대한 연기논란이 많은데, 사실 이 정도면 그렇게 못한 편은 아니다. 오히려 사랑에 빠진 여대생의 모습을 상당히 실감나게 잘 표현했다. 분명 대사가 잘 안들리는 부분이 있고, 특히 초반 도입부의 연기는 마치 연극같이 과장된 것이 사실이지만, 전반적으로 괜찮아 보인다. 최소한 수지, 윤아, 혜리, 유이 정도는 돼 보이며, 재능이 아예 없어 보이진 않았다. 다만, 정말 가수에서 배우로 완벽하게 커리어 전환에 성공한 임시완, 이지은, 서인국 정도가 되기 위해서는 (당연하지만) 본인이 얼마나 노력하냐가 중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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